유치원생들만의 찐 우정

유치원생들이 만든 기적같은 이야기

by 진솔soul

입학식 후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 온 학부모가 있었다.

" 선생님께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 아... 네...교실로 갈까요?"

엄마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따라오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뭔가 많이 긴장한 듯 날 경계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잔뜩 낯을 가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긴장을 풀어주려 씨익 웃으며 아이를 보는데

아이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삭발을 한 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순간 아이가 혹시 무슨 병이 있나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는 자리에 앉아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해주셨다.

" 선생님, 사실 은혁이는 작년 유치원에 다니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원형탈모가 오기 시작했어요. 원형탈모가 심해 지금은 머리를 아예 삭발을 한 상황이고요.

작년에 원형탈모가 너무 심해 유치원을 그만 두고 집에서 저랑 있었는데

올해는 유치원을 가야 할 것 같아서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막상 유치원에 가려니 친구들이 삭발한 것을 놀릴까 걱정이 돼요.

유치원에서도 모자를 계속 쓰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

" 아. 네. 물론이지요. 제가 친구들에게도 잘 설명하고, 은혁이도 유치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께요. "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도 백혈병, 암과 같은 큰 병이 아니라고 하니, 왠지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다만 은혁이와 같은 반 아이들을 어떻게 잘 지내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특히나 은혁이의 모습을 보며 '대머리, 빡빡이 등' 으로 놀릴까 걱정이 되었다.

사실 유치원생 아이들은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보이는 대로 직설적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뚱뚱한 아이를 보면 돼지 또는 뚱뚱해 라고 말하는 것이다.


참고로 유치원에서 자녀가 친구들이 놀린다고 하소연을 한다면, 잘 살펴봐야 한다.

아이들 중 친구의 모습을 보고 놀리려는 의도를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꾸밈없이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며 말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뚱뚱한 것을 뚱뚱하다고 말하고

못생겼다고 느끼면 못생겼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돌려 말하거나 꾸미면서 말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 시선에서 친구를 놀리는 나쁜 아이로 쉽게 판단해버리면 안된다.

물론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대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말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줘야 한다.


고민을 하다 다음 날 반 아이들에게 은혁이를 소개했다.

" 오늘 선생님이 한 친구를 소개하려고 해요. 이 친구가 누구인지 맞춰보세요.

나는 남자친구예요. "

아이들은 남자친구를 찾아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친구들을 탐색했다.

" 나는 회색 옷을 입고 있어요."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아이들이 " 나 아니야?" 하며 기분 좋은 듯 웃었다.

" 나는 모자를 썼어요."

아이들은 은혁이를 가리키며 찾았다고 좋아했다.

" 맞아. 저 친구 이름은 이은혁이예요.

그런데 은혁이는 모자를 쓰고 있네. 왜 그럴까요?"

" 머리를 빡빡 깍아서요."

역시나 한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자, 아이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은혁이가 귀까지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 혹시 너희들 중에서도 머리를 빡빡 깍아본 적 있는 친구 있어요?"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 아빠가 덥다고 머리 빡빡 깍아준 적 있어요."

" 아. 그렇구나. 민수도 머리 빡빡 깎은 적 있구나. 혹시 또 다른 친구는요?"

그러자 아이들은 진짜 인지 가짜 인지 너도 나도 빡빡이로 깍은 적이 있다며 이야기를 했다.

내내 굳어있던 은혁이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 우리 친구들도 빡빡 깍아 본 친구가 많구나.

그런데 은혁이는 더워서 머리를 깍은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서 머리를 깎았대요.

아마도 은혁이가 속상하거나, 걱정되는 일이 많았나봐요.

그런데 이렇게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도와주고, 멋지다고 말해줘서 은혁이가 기분이 좋아지고, 많이 웃으면 낫는다고 해요.

우리 반 친구들이 은혁이를 낫게 해 줄 수 있도 있고, 더 아프게 할 수도 있어요.

너희들은 은혁이한테 어떻게 해주고 싶어요? "


" 은혁이 낫게 해주고 싶어요."


우리는 은혁이를 위해 조심해야 할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삭발경험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눠서 그런지 특별히 삭발에 대해 편견없이

바라봐 주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은혁이를 낫게 해줄 수 있다는 말에 은혁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 은혁아, 많이 웃어! 그래야 너 낫잖아."

아이들의 관심과 친절 덕분에 다행히 은혁이는 유치원에 잘 적응하였다.

그리고 성훈이라는 단짝친구도 생겼다.

은혁이는 자기 표현하기를 쑥스러워하는 점잖은 친구였다.

성훈이도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는데

둘이 함께 놀이할 때는 둘 다 킥킥 웃으며 수다쟁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훈이가 모자를 쓰고 유치원에 왔다.

자세히 보니, 머리도 짧게 삭발을 했다.


" 선생님, 저도 은혁이처럼 모자쓰고 왔어요."


성훈이 어머니에게 연락이 와 이야기를 들어보니,

혼자 모자를 쓰고 있는 은혁이가 외로울 것 같아서 본인도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모자를 쓰고 유치원에 가겠다고 했단다.


" 아. 어쩜 저런 생각을 했을까? "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두 아이의 우정이 부러울 만큼 멋져보였다.


다음 날부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반 아이들이 한 두 명씩 모자를 쓰고 유치원에 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모자를 안 쓴 아이가 혼자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모두 다 모자를 쓰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몇 명의 아이들만 모자를 썼다.


모자쓰는 것이 더 이상 낯설고,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나와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하거나

이상하다고 여기는 어른들 세상


오히려 아이들은 나와 다름을 더 쉽게 인정하고

다름을 바뀌지 않는 결론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들 세상은 표현이 서툴뿐이지, 어른들보다 훨씬 수용적인 것이다.


반 아이들이 보여 준 기적같은 우정 덕분에

진짜 기적이 일어났다.

1년동안 원형탈모 부위에서 나지 않았던 은혁이의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은혁이와 반 아이들을 통해 또 다시 배운다.

"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안에 있다. " 는 것을.


















keyword
이전 05화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