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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벨라 Sep 26. 2024

나만의 마들렌 조각을 만나게 된다면

소래포구에서 만난 망둥이

 지난 5월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새우젓을 사러 소래포구에 갔다. 살아있는 생물과 봄철 나들이객들로 시장은 활기찼다. 새우젓과 함께 은갈치와 알을 품은 주꾸미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어시장에나 와야 볼 수 있는 반 건조 우럭 포를 발견했다. 제사 때 쓰려고 우럭 포 값을 흥정하기 시작했는데, 한쪽 귀퉁이에 바짝 마른 망둥이가 작은 채반 위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큰 것 작은 것 크기가 제각각이긴 했지만, 망둥이가 틀림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우럭 포보다도 망둥이 포에 관심을 보이자, 사장님은 우럭 포 세 마리를 사면 망둥이 포 한 무더기를 덤으로 주신다고 했다. 적정 가격에 흥정을 마치고 덤으로 받은 망둥이는 모두 내 몫으로 집에 가져왔다.



우습게도 그날 저녁 반찬으로 망둥이를 쪄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옛날처럼 밥솥에 넣어 찌지 않고 혹시 날지 모를 비린내가 걱정되어 찜 솥에 단독으로 넣고 쪘다. 저녁 메뉴로 각종 야채에 고춧가루를 넣고 단짠 양념에 볶아낸 먹음직스러운 알배기 주꾸미볶음도 있었고, 기름을 적게 두르고 노릇하게 앞뒤로 구워낸 도톰한 갈치 소금구이도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엔 그저 갓 쪄낸 김이 솔솔 나는 망둥이 포만 보였다. 작은 망둥이는 뼈까지 씹어먹기도 하지만, 처음 먹어보는 가족들을 위해 뼈를 발라 밥 위에 올려주었다. 미심쩍은 얼굴로 먹어보겠다면서 도전하던 딸과 아들의 표정이 묘했다. “한 번 더 줄까?”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남편도 다르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내 느낌 그대로 느끼게 하는 데 실패했다. 망둥이찜을 혼자 독차지하고 뜯고 있는데, 망둥이 포만의 특유한 냄새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고향 바다는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어 동네를 곡선으로 감싸고 있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논이 되어 쌀을 생산한다) 신기하게도 구역마다 사는 생물의 종류가 각기 달랐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A 구역(고두리)에는 파래 등 바다식물과 농게 같은 작은 생물이 살았다. 집에서 가장 먼 B 구역(안고잔)은 어업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살아가는 분들을 위한 굴밭이 넓게 펼쳐졌다. 바위가 많고 청정구역이라서 굴의 생육조건이 좋아 최상의 맛을 내는 굴을 채취했다. 이곳의 굴은 어리굴젓을 담아 놨을 때 그 맛이 일품이다. 그 유명한 서산 어리굴젓을 만들어 내는 굴밭 중의 하나였다.  C 구역(가랑골)은 바위가 별로 없고 넓은 갯벌로 이루어져 있어서 수평선 위 노을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바다 바로 앞 육지엔 아름드리 아카시아가 쭉쭉 뻗어 있어 봄철은 향기롭고 여름엔 그늘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구역이다. 이곳에선 바지락과 박하지, 고동, 작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D 구역(쇼리), 이곳은 작은 갯 고동(바다 다슬기)을 잡을 수 있고 간혹 몇 분의 어부들이 배를 정박해 놓고 밀물 때 배를 타고 멀리 나가 갑오징어나 물고기를 잡아 오는 구역이다. 특히 모래가 고아서 아이들이 해수욕을 즐기러 많이 갔다.



 우린 종종 대나무 막대기 하나씩 들고 D 구역(쇼리)에 놀러 갔다.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로 뛰어 들어가 수영한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주로 땅을 짚고 헤엄을 치는 수준이지만 즐기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참을 놀다가 썰물이 거의 빠져나갔을 즈음, 마을에서 파 놓은 커다란 물웅덩이를 중심으로 대나무 막대기를 챙겨 든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웅덩이의 물속에 대나무를 낚싯대처럼 꽂는다. 슬슬 입질이 온다. 이때다! 막대기를 뒤쪽으로 힘껏 젖힌다. 갯벌에 망둥이가 떨어진다. 재빠르게 뛰어가 그릇에 주워 담는다. 먹이를 매달지도 않은 그저 대나무 막대기일 뿐인데 망둥이들이 따라 올라온다. 잡은 망둥이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적은 양이라도 포를 떠서 소금을 뿌려 햇빛에 말린다. 꾸덕꾸덕하게 마른 망둥이는 밥반찬으로 아주 훌륭했다. 특별한 요리법이 필요 없었다. 밥 지을 때 그릇에 담아 말린 망둥이를 넣고 찌면 적당히 쫀득쫀득 씹히는 맛이 좋은 망둥이 포를 맛볼 수 있었다. 한 마리씩 통째로 들고 뜯어 먹으면 이게 숨은 밥도둑이다.


추억의 음식은 단순히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각과 후각으로 기억을 찾아가게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레몬 향이 곁들어진 마들렌 한 조각으로 과거 전체를 떠올린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것을 향기로 끌어내는 현상을 ‘마들렌 효과’ 혹은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소래포구에서 작은 채반에 담긴 망둥이를 만나고 어릴 때 먹던 것처럼 망둥이찜을 했다. 한 마리를 통째로 들고 먹다가 그 맛과 향기에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향기를 매개로 과거의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다. 그 시절 전체가 떠오르면서 보고 싶고 그리운 얼굴이 생각나고 그때의 날씨와 그때의 감정까지 섬세하게 떠올랐다. 인생을 살면서 마들렌 조각이 몰고 오는 수많은 기억 또 기억. 그 기억들은 내가 걸어온 모습들이다.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나만의 마들렌 한 조각을 만나게 된다면 지나치지 말고 기억을 소환해 봐야 한다. 좋은 추억이 많다는 것은 튼튼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세계가 음식과 관련이 있을 때 우리는 음식을 통해 깊은 위로를 받게 된다. 그 위로는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에너지가 된다.


#망둥이 #마들렌 #소래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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