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태와 오이 볶음
남편이 감태를 처음 맛본 건 우리 친정 집에서였다. 워낙 독특한 생김새 때문인지 식감이 머리카락 씹는 것 같아서 먹기가 꺼려졌는데, 들기름을 발라 소금을 적당량 뿌려 바삭하게 구워낸 감태의 그 독특한 맛과 향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면서 계속 찾게 되었단다. 엄마가 살아계실 땐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었는데 돌아가신 후론 그게 쉽지 않았다.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어렵게 만날 때면 엄청나게 반가워한다. 하얀 접시에 정갈하게 담겨있는 감태는 이제 장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란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처음 맛본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이토록 깊은 것을 보며 찡한 마음이 들었다.
주말 아침, 어쩌다 보니 남편과 소박하지만 즐거운 루틴을 만들게 됐다.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긴다. 이후 특별한 계획이 없는 아주 보통의 하루에는 가까운 재래시장에 들러 살아 움직이는 시장 구경을 즐긴다. 특히 시장에서 갓 구운 즉석 김은 우리 집 밥상의 단골 메뉴다.
얼마 전, 항상 가던 가게가 문을 닫아 아쉬운 마음에 근처 마트에 들렀다. 그때 "앗, 감태다"라는 남편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서산 처가에서 먹던 감태가 생각났는지, 익숙한 브랜드에서 나온 감태 조미김을 보며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던 것. 기대에 찬 남편은 망설임 없이 카트에 감태를 담아왔다. 집에 돌아와 봉지를 뜯었을 때, 남편은 살짝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엥? 그냥 파래김 같네” 익숙한 감태의 질감, 형태, 향과 다른 모습에 실망한 모습이다.
감태는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랗고 길이가 아주 긴 초록색 녹조류다. 12월에서 3월 사이 추운 겨울에만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자란다고 한다. 채취부터 세척, 건조까지 모든 과정이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만 비로소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다. 성장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양식이 쉽지 않았기에 흔하게 볼 수 없는 먹거리였다. 서산지역에서는 서해안의 청정지역인 가로림만의 갯벌에서 채취한 감태가 유명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남해 해양연구소에서 개발한 양식 기술을 통해 재배하고 있어 조금은 대중화되었다.
감태의 정식 명칭은 ‘가시파래’이지만, 우리에겐 감태라는 이름이 훨씬 친숙하다. 쌉싸름하면서도 깊은 바다 향을 품고 있어, 한 번 맛보면 잊기 힘든 독특한 매력이 있다.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가 풍부해 그 자체로 겨울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인셈이다.
남편이 감태를 처음 맛본 건 우리 친정 집에서였다. 워낙 독특한 생김새 때문인지 식감이 머리카락 씹는 것 같아서 먹기가 꺼려졌는데, 들기름을 발라 소금을 적당량 뿌려 바삭하게 구워낸 감태의 그 독특한 맛과 향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면서 계속 찾게 되었단다. 엄마가 살아계실 땐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었는데 돌아가신 후론 그게 쉽지 않았다.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어렵게 만날 때면 엄청나게 반가워한다. 하얀 접시에 정갈하게 담겨있는 감태는 이제 장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란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처음 맛본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이토록 깊은 것을 보며 찡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감태를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내게도 시집와서 처음 맛본 후 종종 먹고 싶고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오이 볶음'이다. 오이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무침이나 냉국, 오이소박이 정도만 있다고 생각한 나에게 오이 볶음은 낯선 요리였다. 처음 시댁 밥상에서 만난 그 음식을 조심스럽게 한입 먹었을 때의 놀라움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꼬들꼬들 아작아작한 식감에 눈이 커졌다 소금에 절여 물기를 꽉 짠 오이를 센 불에 볶아낸 때문인지, 씹을 때마다 나는 경쾌한 소리와 독특한 식감이 내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오이 볶음의 핵심 과정은 소금에 절인 오이의 물기를 얼마나 완벽하게 짜내는가에 달려있다. 이 과정이 오이 볶음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시아버님은 그야말로 오이 물기 짜기의 달인이셨다. 꼼꼼한 시어머니께서도 믿고 맡길 정도로 빈틈이 없으셨다. 그 후는 어머니의 몫이다. 센불에 향과 색을 살려 빠르게 볶아내신다. 선명한 초록빛을 담고 아작아작 경쾌한 소리를 부르는 오이볶음은 눈과 입이 함께 즐거워지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더 이상 오이 볶음을 만들지 않으신다. 야채 짜는 기계가 나왔지만 아버님만큼 물기를 완벽하게 짜내지는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아버님과 환상의 콤비로 만들어내던 음식이었기에 이제는 그 손맛을 온전히 낼 수 없어 멀리하게 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감태를 마주할 때마다 장모님을 떠올리듯, 나 또한 어쩌다 오이 볶음을 만나면 시아버님이 생각난다.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맛을 보지만, 아쉽게도 그 맛은 내 기억의 맛하고는 달랐다.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강하게 다가올때가 있다. 보통은 어릴 때 먹던 음식이 떠오르면 적극적으로 찾아 먹거나 직접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결혼하며 새롭게 만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그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남편이 감태를, 내가 오이 볶음을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 맛에 대한 순수한 선호도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큰게 아닐까? 접해보지 못한 음식을 만난다. 그 음식에 정을 붙인다. 어렵게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먹을 수 있던 음식이, 그 음식을 만들어주던 사람의 부재로 먹기 힘들어졌을 때, 그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선다. 그때부터 음식은 사람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된다.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그 너머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마음의 중심엔 진한 그리움이 있다. 그리움이 깃든 음식은 우리 삶 속에서 종종 추억을 건네는 따뜻한 온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