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루떡
어머니 댁에 갈 때마다 종종 방문하는 짜장면집 있다. 그날도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려고 어머니를 모시고 그 집에 들렀다. ‘앗, 없어졌네. 언제 바뀌었지?’ 간판이 고깃집으로 돼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가게를 바라보며 난감하게 서 있었다. 그러자 가게 문을 열고 나와 “잘 부탁드립니다. OO 고깃집입니다.”하며 팥시루떡을 한 팩 건넨다. “아,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들를게요.” 하며 발길을 돌렸다. 평소에 떡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어머님이 당신은 안 드신다며 가져가란다. 집에 돌아와 냉동실에 넣으려다가 두툼하고 촉촉한 게 혹시 무가 들어간 무시루떡이 아닐까? 궁금한 마음에 조금 뜯어 먹어봤다.
‘무시루떡 맞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제사를 일 년에 열 번 정도 지냈다. 엄마는 제사 때마다 시루에 떡을 하셨다. 그만큼 떡이 흔했다. 시루떡은 보통 잘 굳는다. 하룻밤만 지나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시루떡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떨어졌다. 찜솥에 데운다 해도 시루에 갓 쪄낸 떡하고는 그 맛의 차이가 컸다. 그래서인지 떡을 멀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무시루떡’, 무가 듬뿍 들어간 무시루떡은 촉촉해서 하루가 지나도 맛의 변함이 적었다. 엄마는 단맛과 짠맛이 적절했던 도톰한 떡을 정육면체로 썰어주셨는데 한 개를 먹고 나면 더 먹고 싶어 아쉬웠다. 무시루떡을 좋아했던 아이들을 위해 다른 때도 무를 썰어 넣고 떡을 하실 만도 했을 텐데 엄마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무시루떡을 하신 것 같다. 그 이유를 짐작해 보면 팥 자체도 다른 곡류나 콩류에 비해 당분 비율이 높아 세균이 쉽게 번식할 수 있는데 거기에 더해 수분함량이 높은 무가 들어가면서 더욱 쉽게 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 시루떡은 멥쌀가루에 무를 섞어 시루에 쪄내는 떡이다. 가을 무는 인삼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무의 단맛과 응축된 영양이 찬 바람이 부는 가을에 최고점을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때가 됐을 때만 시루떡에 무를 넣었다. 실제 무는 비타민 C와 다이아스테이스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소화를 돕는 대표적인 채소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는 ‘흰 무는 만성 설사와 목구멍에 질환이 생겨 음식을 내려보내지 못하는 것을 치료한다’고 하여 소화기 관련 질환에 좋은 식품임을 알려 준다. 그런 무가 들어간 붉은팥 무시루떡은 제사상이나 고사상에 반드시 올리는 음식이다. 물론 제례음식뿐만 아니라 요즘은 이사, 개업 등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진다.
팥은 하루 전에 물에 불린다. 불린 팥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소금을 약간 넣어 삶는다. 절구에 넣어 곱지 않게 빻아 팥고물을 만들어 놓는다. 무는 채를 썰어 소금과 알룰로스 가루를 뿌려 한두 시간 절여놓는다. 무의 물기를 짜서 멥쌀가루와 버무린다. 찜솥에 베 보자기를 깔고 팥고물을 한켜 펴준다. 그 위에, 멥쌀가루에 버무린 무를 듬뿍 얹고 팥고물을 덮는다. 찜솥에 넣어 강불로 끓이면서 중불로 줄여 뜸을 들인다.
시루에 떡을 찌던 엄마 모습을 떠올리며 언니에게 찜솥에 찌는 무시루떡 레시피를 알아냈다. 특별한 재료 없이 멥쌀가루와 가을무, 팥의 조합만으로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을 낼 수 있다고 알려준다. 엄마의 음식은 늘 한결같았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받았던 밥상,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대신 맞아주었던 간식들, 특별한 날 먹었던 무시루떡까지도. 그 한결같음은 안정감이었다. 그 맛이 주던 위안과 따스함을 생각했을 때, 엄마의 부재 후 엄마와 관련된 음식은 모두 귀한 것이 됐다. 동네 개업 떡을 받은 때처럼 뜻밖의 순간에 엄마의 특별한 음식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리운 기억이 조각조각 떠오른다. 그러면서 그 귀한 음식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음식은 엄마가 내 삶에 함께했다는 흔적을 말해준다. 그 흔적을 하나하나 더듬어 기억하고 기록해 놓고 싶다. 엄마의 음식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 인생이 나의 인생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