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언어

by 무연


20년이 넘는 날들 동안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저를 바닥 끝까지 깊고 깊은 우울 속에 밀어 넣었다가도 며칠을 자지 않아도, 먹지 않아도 마치 진짜로 날아갈 것 같은, 감당하지 못할 감정 기복의 폭주 속에 시달렸습니다. “네가 이래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에 대하여 끊임없이 타인을 의심하고, 괴롭히고, 겁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화가 나고 폭발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몸 곳곳에 지울 수 없는 자해를 하기도 하였고, 끝내는 그것들이 한데 모여 자살이라는 마지막 선택지 앞에 나를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쾌락과 자극을 어떻게든 끌어모으기 위해 30분 만에 소주 4병을 매일 같이 비워내며 하루하루를 버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아파할 사건 사고에 미소를 올리며 나를 자극해줄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 헤맸습니다.


이런 제가 일상을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요? 아니오, 그렇지 못했습니다.


일본과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힘들게 얻은 일터에서 저는 단 두 달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긴 시간 그 작은 주방에 갇혀있는 것이 너무 지겨웠습니다. 단지 그 이유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다음, 그 다음, 또 그 다음, 찾는 일마다 길면 6개월, 짧으면 3시간.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버티는 힘이 줄었습니다. 그때마다 술을 찾았고, 늘어가는 건 왼팔의 흉터뿐이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 역시 그런 제 행동을 이해하거나 받아주진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저의 나약함을 탓했고, 저는 철저히 고립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나 자신조차 나를 혐오하고 경멸하는 현실. 그것이 저의 세상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2022년 겨울, 서울의 모 대학병원 정신의학과에서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진단과 함께, 뇌에서 쾌락과 자극을 담당하는 도파민이 선천적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지난 20년간, 내가 왜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했고, 남을 끈질기게 괴롭혔으며, 폭발적인 감정으로 잦은 자해와 자살 시도를 해왔는지, 또 보통의 쾌락과 자극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아 지난한 지루함과 허무, 공허를 느꼈는지. 20년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병명을 읊어주며 시원하게 원인을 밝혀주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오히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올라왔습니다. 그 감정들은 한동안 저를 지배했고,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진단명을 알았다고 해서, 미스터리가 풀렸다고 해서,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저는 병원에서 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며 그것은 저에게 위로가 아닌,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버거운 현실 앞에 내가 마주한 고통의 실체를 더 또렷하게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지옥? 지옥이었을까요? 저의 삶은. 잘 모르겠습니다. 지옥을 가보지 않아서.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살아 있었고,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벌을 받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는 겁니다.


버틴 겁니다. 웃기게도 그 수탄 시간을 지나 저는 지금 죽지 않고 이 자리에 앉아 책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언제 변화할지 모르는 감정과 파도처럼 덮치는 무한한 허무와 그것을 채워줄 알코올의 자극과 피를 부르는 자해 충동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 나만의 생존방식으로, 그렇게 버티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살아남기 위해 끝끝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살고 싶다는 말 대신, 죽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 언어 안엔 물론 무너짐도 있겠고, 침묵도 있겠고, 피가 낭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버텨보려고 합니다. 살아서 좀 더 말해야겠습니다. 아프다고. 있는 힘껏, 그렇게 좀 더 버둥거려볼까 합니다.





“내 언어는 위로가 아니다.

다만, 이 고통 속에서도 나라는 생명이 아직 살아 있다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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