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니 자존심도 드세진다
책을 읽다가 문득, 괜스레 심란해지면서 텁텁한 공기를 가르는 탄식이 입안에서 쏟아졌다. 거실을 나와 한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흔들며 앞베란다로 향한다. 말라비틀어져가는 화초들이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하고선 축 늘어졌다. 물 주기를 소홀히 해서 금방 죽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손을 뻗어 구원하기도 힘들다.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어렵지 않은데 쉬이 지나칠 때가 많다.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 한 번만 부어주면 근사하게 여름을 나는데 그 쉬운 일을 모른 채 해 버렸다. 무관심이 생활화된 듯하다. 그 와중에 이름도 모르는 식물에서 꽃이 피었다. 한여름에도 부단히 꽃을 피우는 노력도 만만치는 않은데 무관심 속에서도 잘 크고 있다 어떤 것들은. 내 맘도 답답해 시원한 물줄기가 필요하다.
십수 년을 한결같이 일한 도서관을 내가 박차고 나왔다. 자존심을 내세운 것에 홀가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찝찝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쎄빠지게 일 하고 마지막을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 못한 것에 대한 맘이 허하고 허했다. 나는 꼭 그렇게 해야 했으며 도서관은 내게 그렇게까지 밖에 할 수 없었나 되뇌어보았다. 십수 년을 함께 일하고 의논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여태껏 한 번도 인상하지 않은 강의료 때문에 나는 돈 때문에 내 자존심을 세우고 말았다.
코로나가 끝나고 수강료를 인상하면서 강의료를 조정해 달라 건의했었다. 아무리 아이들이 좋아서 시작한 수업이고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 이어온 수업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수강료를 인상했는데 강의료가 동결되었다는 얘기는 도서관의 수입만 늘어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도서관이 영리를 취하는 목적이 아니고서는 강사의 입장에서 제고해봐야 할 필요는 반드시 있다.
이건 아니지 않나.
수강하는 아이들이 늘수록 강의하는 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했다. 그것은 강의료다. 수강료를 인상했는데도 인상 전의 강의료를 받는다는 건 애써 몇 년을 더 버텨온 나에게 더 이상의 배려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면 내가 수강료를 올려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이들한테는 수강료를 올려 받았는데 나의 강의료는 십수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다면 강사는 무엇을 일해야 하는가. 그에 맞는 충분한 대우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난 허망한 세월을 산 느낌이 들었다. 강의료 인상의 제고가 없다기에 그래서 박차고 나왔다. 십 년을 한결같이 그랬고 1년 여의 기간 동안 나를 위한 대우는 미지근했다.
밥줄 끊어지는 곤란한 먹고사는 일이니 마음이 다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끌려다니기 싫었던 것도 있었다. 내가 요구하지 않으니 굳이 인생해 줄 리 없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가 해주리라 그들도 믿었던 것이다. 서로 당황했다.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고 그들의 요구대로 끌려가기 싫었다. 또 다른 데를 찾아보면 된다 여겼다. 그래도 된다 여겼다. 비어버린 두 시간을 다시 채우는 일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쉬운 게 없다지만 내겐 다소 쉬운 일일 거라 여겼다.
나이 드니 괜한 자존심만 드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