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갈이를 기다리며
평온함으로 짙게 깔린
언 땅에도
이제 서서히 호미를 갖다 댄다
꽁꽁 언 흙더미에
듬뿍 패인 고랑의 실핏줄이 터진다
아프다는 말도 없이
반창고 하나 붙여가며
생채기가 난 곳에
얼른 또 다른 흙더미를 붓고 만다
시금치는 한쪽 옆에서
아직도 푸름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데
말라비틀어진 파는
꼬부라진 허리로
애써 여윈 다리를 지탱하며 버티고 섰다
살아내는 방식이 다르듯
한겨울을 지내는 동안
어느 것 하나 아프지 않았을까
친구는
여린 수도 파이프에 옷을 입혀 놓았고
여름내 햇빛을 막아주던 캠핑 의자도
구석진 한자리 맡아놓고 앉았다
모두들 한겨울을 지켜내고 있다
동네 누군가가 세워둔 봉을 뽑아갔다
울타리를 쳐 놓은 두꺼운 막대기를
겁도 없이 불쑥 뽑아갔다
텃밭을 지키던 고양이도
한겨울 내내
더 이상 똥을 갈겨놓진 않는다
그들도 새로 시작할 때다
밭갈이를 위해
울타리도 다시 만들고
고양이가 와서 쉬어가도록
의자도 내고 천막도 치고
봄날을 맞을 시간이다
이월에는 손길이 바쁘겠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