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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한 마리 잡을래?

화투의 재발견

by 어린왕자


어찌 지내는지 전화조차도
가끔 하지 않는 사이지만
잘 지내냐 안부도 묻지 않는 사이지만
참 오래도록 만나고 있다
비결은 뭔지 모른다
그저 무심함이 답인 듯하다
매월 한 번 만나
익숙한 듯 생소한 듯
한바탕 웃고 나면 또 무심한 사이가 돼도
같은 차를 타고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방을 쓰면서
이십 년을 만났다
같은 듯 다른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기도 하고
토라질 듯하면서도 아스라이
꿋꿋하게 지탱하고 있는 그녀들
일박 이일 경주에서
겹벚꽃 휘날리는 거리를
웃음 한껏 날리고 왔다

돼지 한 마리 잡을래?

음주가무에 능하지 않고
주색잡기에 능하지 않고
술 마시는 분위기는 즐기고
화투 짝 맞추기 정도는 할 줄 아니
경주 일박 이일에서 우리는
판을 벌였다
고스톱으로 시작해서
지갑을 주섬주섬 열게 되고
여섯 친구가 모두 하는 게 아니니
모두 다 할 수 있는 잡기를 택했다
이름하여 돼지 잡기
돼지가 나올 때까지
화투 패를 뒤집다
판돈을 먹는 것
운이 좋으면 첫 판에 나온다
대박!
온 방안이 떠나도록 웃음꽃을 피우고
막판까지 돼지가 안 나올 때가 있다
쫄깃쫄깃 긴장감이 더한다
인원 수가 정해진 게 아닌
인원 수 모두가 참여해서 좋은
돼지 잡는 일
한 판에 이백 원씩 놓고
우아하게 긁으모으며
괴성을 지르다 보면
늦은 밤
꿈에서도 돼지가 보인다

여섯 친구들의 여행길에
또 하나를 배웠다
다0소 가서 화투패 하나 사야겠다
여행 필수품 화투놀이가 내게는 신문물이다

돼지 잡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경주여행#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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