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지극히 술꾼은 아닙니다
이 지독한 막걸리 사랑을 어이하리
지난번 한 잔 하고 남은 술병이
얌전하게 앉아 있다
냉장고 문을 열면 방긋 웃어 준다
밉살스럽다
봉하마을 갔다 사 온 막걸리는
이미 초가 된 상태다
초가 된 막걸리도
흔들어 마시면 술이 된다
내 아버지도 그렇게 마셨던 막걸리다
초든 막걸리든
흔들고 섞고 부대끼며 산 날들이
그리 한순간 변하지 않듯
잘난 놈도 못난 놈도
뜨겁던 태양 아래 똑같은 하루를 산다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
초가 된 막걸리가
잘난 놈 못난 놈 가리지 않고 먹이고 있다
나는 혹여 초를 마셔도
막걸리라 부른다
흔들어 차마 하수구로 버리지 못한다
엄마 기제를 지내고 남은
막걸리 한 병을 오빠란 놈이 다 마셔버린다
그놈도 막걸리를 좋아한다
나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하지만
다른 놈이 뜯어말린다
운전해야 한다고
그 못된 놈이 막걸리 한 잔 들이키며
집에 가자 부추긴다
부추전은 아직 남았는데
내 좋아하는 막걸리 한 잔 마시지 못했는데
집에 와서 초가 된 막걸리를 부어마셨다
낭만 따윈 없다
#어린왕자도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