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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고 사는 것들에 대하여

그것이 낭만임을 알아간다

by 어린왕자


잃어버리고 사는 것들이 많다. 젊으면 젊은 대로 나이 들면 나이 든 대로. 그럼에도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들에 대한 추억은 스미듯이 젖는다. 고마움이든 연민이든 그것들이 삶에 있어서 영원한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것도 분명 있다.

나이 들면서 삶에 조금 여유가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후회했던 일부터 잘했던 일, 감사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보기도 하며 또 다른 인생의 후반부를 엮어나간다.

그럼에도 아직 인생은 길다.


젊었을 때는 젊음이 좋았고 또한 살기 바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1순위가 못 되고 밀려나 항상 동경의 대상으로 남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 키우는 일이 젤 우선이었고, 직장을 구하면서 직장 일에도 나름 최선을 다하려 악을 쓰고 버텨냈다.

그러다 한 해 두 해 지나고 아이가 커가면서 마음 한편 한결 여유가 생겼다. 애써 발버둥 쳐도 안 되는 일도 많았고, 잘 되지 않은 일에 내 의지가 아닌 걸 알고는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냥 맘 편했던 것도 아니었다. 드러내지 않고 삼키는 법도 알아갔다.

나이가 든다는 건 좀 더 너그러워진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물어왔다.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망설인다는 건 돌아가고 싶은 때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며 굳이 다시 가 보고 싶은 마음도 없기도 해서다. 지난날을 후회한다기보다 지금이 좋다. 나이 들면서 새롭게 배우는 것도 많고 겪어보지 못했던 즐거운 일도 많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산을 오를 때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 예전의 목표였다면 요즘엔 산을 오르면서 즐기는 것이 목표다. 정상에 언제쯤 다다를까 걱정하지 않는다. 오르다 지치면 다시 되돌아와도 좋다는 마음이다. 물론 오르다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오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지만 마음이 너그러워진 건 사실이다. 시간을 촉박하게 잡지도 않는다.

나이가 든다는 건 평온을 느낀다는 것이다.


ㅡㅡ살아오면서 수많은 타협을 했다. 그러나 내 일에서만큼은 그런 기억이 없다. 나는 매니저 없이 일을 한다. 그래서 힘들 때도 많지만 일에서만큼은 오롯이 내 고집대로 당당하게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사랑하고 이해하지만 쉽게 타협하지 않는 어른. 지금 가수로서 내가 원하는 모습이다.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 ㅡㅡ최백호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중> p103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날을 돌아보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분명 계산을 하게 된다. 조금도 반성할 것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대로 있고 내 아이들이 잘 커가고 있고 큰돈을 버는 직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밥벌이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이 커다랗고 거대한 지구 속에서 한 번쯤 길을 잃고 헤매어본 사람들일 테니까.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나이가 든다는 건 지금에 고마움을 안다는 것이다.





ㅡㅡ낭만에 대하여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ㅡㅡㅡ최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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