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구니서당
여행 중 간판을 보고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긴 한데 구니서당은 구미가 확 당겼다. 일말의 정보도 없이 들어간 곳이다. 여행은 오히려 생각하지 않은 것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창녕 구니서당은 조선초 성리학자 한훤당 김굉필의 후손들이 조상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서당은 현재의 초등학교 수준의 사설 교육기관이다. 구니서당은 고종 3년(1886년)에 김굉필의 둘째 아들인 언상공을 비롯하여 4명의 위패를 모시고 서원으로 문을 열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고 전한다.
구니서당은 지붕의 내림마루를 2단으로 쌓은 것과 용마루 끝에 귀신 얼굴을 그린 장식 기와가 독특하다. 지금의 정당은 1916년에 규모를 넓혀 지은 것으로 경내에는 사당, 동재, 서재, 문루, 관리사 등이 있다.
구니서당은 애초 여행 계획에 없었던 곳이다. 사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여행길에 지나다가 규모가 큰 서원 같은 건물이 보여 차를 세우고 들어갔던 곳이다. 으레 기와 건물은 향교 아니면 서원으로 생각하기 십상이기에 선뜻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외진 곳에 있는 제법 큰 건물이라 적잖이 놀랐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출입문은 닫혀 있고 그 옆으로 보이는 곳에 출입문 같은 대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다.
입구 오른쪽으로 보이는 두 건물은 예전 관리인들이 사용했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텅텅 비어 있다. 분명 잘 사는 후손들이 있을 텐데 거의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관리만 제대로 된다면 훌륭한 사적지의 위용을 뽐낼 수 있을 텐데 비어져 있는 걸 보니 왠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구니서당으로 오르는 문루는 잠겨 있다.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풀밭에서 예기치 않게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서워 돌아나가고도 싶고 한편으론 서당 구경도 하고 싶고 마음이 여러 갈래로 움직였다.
중앙으로 구니서원 정당이 보이고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중앙으로 이르는 길은 블록으로 다니기 편한 길인데 양 옆으로 풀이 자라 있어 밟고 다니기 힘들다. 벌레가 튀어 오를 것 같아서 앉아서 쉬고 싶다거나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 넓은 곳을 왜 이리 방치해 두고 있을까. 잘 사는 후손들이 있을 텐데 별 관심 없이 방치하고 있는 듯해 맘이 아팠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현사가 나온다. 사현사는 네 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한쪽 문이 열려 있어 사당 안을 들여다보던 일행이 어서 와 봐라며 손짓한다. 내부의 특별한 공간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이런 게 얻어걸린 행운이며 여행의 묘미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른 서원에선 사당 문이 닫혀 있어 한 번도 사당 내부를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너무 신기한 것을 본 황홀감에 입을 쩍 벌리고 소리 없는 감탄을 연발했다.
몸을 살짝 기울여 문을 닫아 주고 옆 사우로 향한다.
사우는 선조 혹은 선현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 두고 수차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다. 명칭은 곳에 따라 향현사, 향사로도 불리고 있다.
건물 외부는 오래되지 않아 깔끔하고 정갈한데 이 또한 바닥의 풀처럼 관리하지 않으면 한낱 스러져가는 건물에 지나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구니서당을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이렇게 넓은 규모의 서당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관리가 되지 않은 것에 씁쓸해하며 높은 권력을 가졌어도 세월이 지나면 퇴색해가고 마는 것을.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어도 후손들이 바라봐주지 않으면 잡초 속에 묻히고 말 수도 있겠다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한여름 잡초는 너무 쉽게 빨리 자란다. 학덕이 깊었던 선비들의 정신이 잡초 속에 묻혀 덮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