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는 관광객에게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하다

by 어린왕자




올 여름 휴가는 포항이다. 지난해 무더위 속에 대구를 두세 번 왕복한 것은 순전히 서원이나 유적지 탐방이 큰 목적이기도 했다. 물론 서원도 보고 유명한 곳의 백일홍도 구경할 이유도 있었지만 꽃이 예쁠 때의 시기를 놓치지 않기란 실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번 여행도 여행지에서 잠자는 것을 원하지 않아 당일치기로 이틀 정도를 계획하고 동선을 잡았다. 역시나 서원 탐방을 빼놓을 순 없다.

입추가 지나면서 저녁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나는 일찌감치 긴 옷을 꺼내 차가운 밤공기를 차단했다. 계절의 순리는 거스를 수 없음을 실로 절감한다. 덥다 덥다 울부짖어도 가을은 오고 시원한 바람은 불어오게 돼 있다. 여름은 무더위에 걷는 게 힘들다 보니 서원 여행은 늘 같이 가는 사람들에게 힘듦으로 다가온다. 지난 월요일은 제법 바람이 불고 뙤약볕이 아니라 너무 다행스러운 날이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 한 포트 내려 호미곶으로 향하는 길목에 오천서원을 젤 먼저 들르기로 했다. 집에서 7시쯤 출발해 두 시간 남짓 소요되는 거리나 멀다면 먼 곳이다. 젤 먼저 들르는 곳이라 마음은 들떴다. 여러 블로그를 찾아보고 월요일임에도 휴무가 아님을 확인했다. 서원이 위치한 곳은 워낙 시골길이라 마을 입구에 비석이 새겨진 이정표를 놓치고 말았고 똑같은 곳을 한 바퀴 두르고서야 좁은 마을길을 들어섰다. 또 다른 좁은 오르막길에 나지막이 앉은 간판 하나가 화살표 방황을 가리키며 좁다란 길목을 안내한다. 마주 보고 내려오는 차가 있으면 낭패다. 누가 뒷걸음으로 차를 돌려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쯤 서원 앞으로 넓은 주차장이 보인다. 근래에 주차장 바닥 공사를 한 듯 시멘트 바닥이다. 그런데 차 안에서 아무리 쳐다봐도 서원의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있는 고려시대 문신인 정습명(?~1151)과 정몽주(1337~1392)의 위패를 모셔 놓은 서원인 오천서원은 광해군으로부터 1613년 사액을 받았으며 1740년 영조 때는 고려 말의 문신 정사도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인 정철을 추가로 배향했다고 한다. 포은 정몽주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러면 뭐 하나, 문이 닫힌 걸.

차에서 내려 인근의 주택지가 있는 곳으로 향하니 동네 어르신 한 분이 강아지를 끌어안고 나를 보신다. 강아지를 싫어할지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무서움을 주지 않기 위한 나름의 배려라고 여겼다. 그래서 혹 이 서원은 문을 열지 않느냐 물었더니 항상 잠겨 있다고 하신다.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곳에선 연중무휴라고 소개했는데? 이런 무례함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서원 정문 옆에 붙은 안내판에 새겨진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도 신호조차 가지 않는다. 요즘은 신호도 가지 않게 하는 방법도 있다던데 지방 유산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이런 방법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정말이지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포항시는 나같이 멀리서 온 관광객이든 가까이 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든 누구나 관람할 수 있게 조치를 해 놓아야 한다. 이래서는 결코 안 된다. 누구를 위한 문화유산이란 말인가. 이 따위로 문화유산을 관리한단 말인가.

문화유산은 문화유산답게 누구에게나 보여 줄 정당한 이유가 있고 누구나 봐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 길까지 가서 여행의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관리하시는 분이 전화라도 받아야 하는 건 기본 예의지 않은가. 제대로 둘러보지 못해 속상하고 속상하다.

월요일 휴무인 서원이 많다지만 열려 있는 서원도 있다. 주중에도 닫힌 서원도 많아 헛걸음하고 되돌아온 적도 많다. 이곳 포항 오천서원은 분명 연중무휴라고 공지해 놓은 걸 보고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내가 잘못 알았다면, 월요일이 휴무라면 관광객을 위해 올바른 정보로 바꿔놓아야 한다. 지자체에서 분명 다시 점검을 해야 할 일이다. 여행객들의 기억 속에 그 지역 이미지가 나쁘게 인식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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