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의 사표이신 주세붕의 초상이 모셔진 무산사

조선의 참된 선비의 고장 ㅡ함안

by 어린왕자


함안 무산사는 조선시대 유학자 주세붕(1495~1554)의 초상과 유품을 모신 사당이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건립한 주세붕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숙종 24년(1698)에 건립했다. 1919년 사당 옆에 무산서당이 세워졌으나 6.25 때 불탔고 현재의 무산서당은 그 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무산사는 사찰이 아니다. 대체로는 '사'로 끝나는 이름이 사찰, 절로 알고 있지만 여기서 무산사는 무산서당이다. 무산사의 무산서당은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지만 상주 주 씨 집성촌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으며 경남 유형문화대 제143호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사실은 무산사의 백일홍 나무가 예쁘다 했다. 이른 아침부터 출사 하시는 분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연신 예쁜 꽃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곳이다. 무산사의 제기능보다 꽃의 기능이 더할 나위 없이 한몫을 하는 곳이다. 아무렴 어떠리, 겸사겸사해서 달려간 곳이다. 이왕이면 서원 탐사도 하고 꽃구경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작년에 제때에 와서 예쁘게 핀 백일홍의 자태를 봤다. 올해는 8월의 중순쯤에 갔으니 꽃이 한 번 지고 다시 핀 즈음이라 덜 예뻤다. 항상 예쁜 시기를 맞추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난 8월 초가 절정이었다고 안내하시는 분이 귀띔해 주셨다.

올해는 꽃보다 서원 탐방이 우선이었다. 주세붕의 초상을 보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작년 여름 영주의 소수서원을 탐방했는데 그곳에서 주세붕의 초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주세붕의 초상은 호랑이 가죽을 덮은 의자 위에 관복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에서 위엄을 느낀다. 풍만한 얼굴 인상과 큼직한 눈과 코, 짙은 눈썹은 마치 무인 같다. 관복의 형태는 당시 복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ㅡ함안군 무신사 홍보 자료



전날 내린 비로 서원의 분위기는 말끔했다. 다행히 방문객이 붐비지 않은 이른 시간이라 안내하시는 분께 초상을 보고 싶다 했더니 굳게 닫힌 문을 손수 열어주셨다. 항상 열려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고 보고 싶어 하는 방문객이 있으면 때에 따라 열어주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으니.


무산사에는 敬이란 현판과 돌에 새긴 비석도 있다. 敬자의 의미는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잡념을 버리는 것(主一無適)을 뜻하며 내면으로 집중과 외면으로 엄숙한 태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근사록(近思錄)에 "수양(修養)은 모름지기 경(敬)으로써 하여야 하고, 진학(進學)은 치지(致知)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소수서원 앞 죽계천에도 주세붕이 새긴 경자바위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1457년 단종복위사건에 따른 정축지변으로 선비와 순흥주민들이 학살된 후 이곳에서 밤마다 귀신 울음소리가 들리므로 주세붕선생이 바위에 경자를 새겨 붉은 칠을 한 뒤 위혼제를 드리니 그때부터 원혼들의 울음이 그쳤다고 한다.

주세붕의 후임으로 풍기군수가 된 이황은 백운동서원에 들러 "사람이 할 일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며 감탄하였고 벼슬을 버리고 도산서원을 세워 후학에 전념했다고 전한다.

ㅡ정축지변(丁丑之變) ㅡ1457년 정축년에 순흥에 유배된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단종 복위 운동 거사가 실패하면서 세조에 의해 순흥부 주민이 학살된 사건을 말한다. ㅡ함안 무산사 자료


무산사의 백일홍은 어디에서 셔터를 눌러도 예쁘다. 인생샷을 찍는 분들이 많아 그들을 피해 다니느라 애를 먹었지만 이른 아침의 무산사는 절경이었다.

작년 가을 소수서원과 죽계천


keyword
이전 07화성리학자 한훤당 김굉필의 후손들이 세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