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길을 걷다
추운 날 궁궐을 냅다 뛰어본 적 있는가? 예약된 11시를 맞추느라 헐떡였다. 겉옷을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하면서도 손은 시려 주머니에서 빠져나올 줄 모른다. 이럴 때 손난로가 필요한데, 장갑이 필요한데. 챙기지 못한 것들로 마음이 쓰였다.
야, 뛰어.
부용지에 눈이 내렸으면 좋았으련만. 사실 제일 기대하고 갔던 곳이다. 사시사철 예쁘고 아름답다지만 예약이 쉽지 않고 오기가 쉽지 않아 사람들이 덜 붐비는 겨울을 택했다. 이왕지사 이리된 거 눈이라도 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에 부풀었는데 날이 너무 맑고 깨끗하다.
춥다. 살얼음이었던 땅이 아침 햇살에 녹고 있다.
후원의 첫 중심지 부용정과 주합루, 그리고 주합루 오른쪽에 위치한 것이 영화당이다. 주합루는 학문과 교육을 담당하던 곳으로 1층은 규장각으로 왕실 도서관이었다. 옆 영화당은 왕이 입회하는 과거가 치러진 곳이기도 하다.
주합루를 들어가는 어수문은 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문으로 임금이 드나들고 높이가 낮은 양옆 두 문으로 신하들이 고개를 숙이며 드나들었다 한다.
영화당 뜰에 구부려 앉아 무예시험을 보았다 한다. 공간이 다시 좁아 보인다 했더니 궁궐 온실이 있는 담을 넘은 곳까지 사용했다 한다. 현판은 영조가 썼다고 한다.
영화당 앞에도 600년 넘은 나무가 있다. 깎이고 파이고 생채기가 난 것을 보호하고 구조하고 약을 주면서까지 다듬은 나무들이 올곧게 하늘 향해 궁궐을 지키고 서 있다.
예전엔 이 문을 통과했는데 지금은 들어갈 수 없게 막아놓았다. 문 위 돌을 보면 금이 간 것을 볼 수 있다. 늙지 않는다는 문인데 조선시대 왕이나 모든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을 본다면 불로하길 바랐던 마음도 족히 이해는 된다.
불로문 옆으로 애련지를 드나든다. 애련지는 한여름 연꽃이 예쁘게 피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애련지에 지어진 애련정은 숙종 때 지어졌다고 한다.
기오헌은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할 때 독서를 하려고 지은 서재다. 寄傲軒은 오만함을 맡긴다는 뜻으로 현실의 팍팍한 무게를 내려놓고 자연과 더불어 애련지의 연꽃을 바라보며 자연과 함께 여유를 누려보는 듯하다.
오기헌 위 뒤쪽으로 연결되는 문으로 드나들었던 것 같다. 다섯 계단 돌계단을 오르면 아래로 살짝 내려다보는 풍경이 근사하게 보이겠다.
관纜(닻줄ㅡ뱃놀이)정은 관람지에 있는 정자로 뱃놀이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정자 구조가 여느 것보다 특이하다. 부채꼴 모양의 선형으로 기와지붕을 한 형식이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야 관람정이 새겨진 현판이 보인다. 뱃놀이하던 관람지에 살얼음이 얼었다.
존덕정은 후원에서 가장 멋있는 곳 중 하나다.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나 손님을 맞이할 때 사용했던 정자라 하니 사시사철 가히 예쁜 절경을 함께 누렸으리라 생각한다.
존덕정 서쪽 약간 위에 있는 폄우사는 특이하게 정자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있다. 왕이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우쳐 반성하라는 일종의 마음을 다시 고쳐 잡는 곳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한다.
40분 정도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개인플레이로 후원 일대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면서 역시 겨울의 예쁜 모습은 없지만 군데군데 남아 있는 가을 끝자락의 붉은 단풍을 애처로이 바라만 보았다.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운 날씨가 아니라 다행이었고 그나마 쾌청한 날씨라 마음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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