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낙산사 길

뚜벅이 여행의 진수

by 어린왕자
낙산사 해수관음상



낙산사는 화재로 인해 많은 것을 소실했던 아픔이 서린 곳이다. 강원도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사찰인 낙산사는 괸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낙산(오봉산)에 있으며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부속 건물로 의상대, 홍련암이 있으며 이들은 관동팔경의 빼어난 곳 중 하나다.

해수관음상, 의상대, 홍련암은 낙산사의 3대 랜드마크다.



의상대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낙산사를 지은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의상이 낙산사를 지을 당시 이곳에 머무르면서 참선하였던 곳으로 의상대라 불렸다 한다.

의상대


의상대를 마주하는 곳에 일송정 푸른 솔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 있고 의상대 뒤 홍련암을 향해 보는 곳에도 한 그루 우뚝 서서 동해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육각으로 지어진 아담한 크기의 의상대를 보호하고 있는 듯 수려하고 웅장하다.


낙산사는 2005년 양양 산불로 인해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낙산사 승려와 신도들이 산불의 피해를 줄여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진화를 위해 출동한 소방차마저도 불에 탈 정도였다고 한다.

이 화재로 보물 479호로 지정되었던 낙산사 동종이 녹아 소실되면서 보물에서 해제되었다. 종루가 불타면서 그대로 종을 덮어버려 화덕에 들어간 꼴이 되었다 한다.


의상대에서 위를 바라보면 해수관음상의 모습이 보인다. 의상대를 지나 바다를 품어 안은 홍련암으로 향한다.

홍련암


홍련암은 낙산사 북동쪽 바닷가에 자리한 낙산사 부속 암자다.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의상대사가 낙산사와 함께 지은 건물이다.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어 관음굴이라고도 한다. 의상대사가 해안 석굴 속으로 들어간 후 자취를 감춘 파랑새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 석굴 입구에서 7일 밤낮으로 기도하다가 붉은 연꽃(홍련) 속에 나타난 관음보살을 보고 세운 암자라고 한다.

홍련암을 세웠다는 내력을 읽으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신비하기도 신기하기도 한 이곳 홍련암을 예전에 밟을 땐 전혀 알지 못하고 왔다 간 곳인데 이런 깊은 내력을 가진 암자를 몰라본 것에 대한 미안함에 부끄러웠다.


홍련암은 파랑새가 들어갔다는 석굴 위에 지어졌으며 절벽 위에 세워진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주변에 아름다운 소나무와 독특한 해안지형이 자리하는 등 동해안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유하고 있어 자연, 경관 가치가 뛰어나다. 의상대사, 원효대사, 범일국사와 관련한 영험한 이야기가 얽혀 있으며 시문에 등장하는 등 역사, 문화 가치가 높아 의상대와 함께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2005년 양양 산불 당시 주지인 정념 금곡 스님과 사대부중의 기도원력으로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홍련암을 내려오며 목어와 마주한다. 풍경소리를 들으려 사람이 없는 틈을 기다리기란 쉽지 않다. 지나는 사람들이 일부러 고개 돌려 피해 주긴 하지만 그들의 배려마저도 너무 많은 인파에 묻혀버린다. 겨우 사진 하나 건지고 낙산사로 향한다.


낙산사 보타전 앞 누각에 잠시 앉아 동해바다를 내려다본다. 따뜻한 차도 무료로 대접하고 앉아 쉴 수 있는 배려도 충분히 베푼다. 의상대를 거쳐 홍련암을 거쳐 낙산사 원통보전에 이르니 고단한 몸을 누이고 싶다.


해수관음상 오르는 길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길에 해수관음상공중사리탑이 모셔져 있다. 2005년 산불 화재로 복원 수리하던 중 사리탑 위쪽 원형 사리공 안에서 사리장엄구 일괄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사리탑은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내용과 사리장엄구 안에 있던 발원문을 통해 조성 배경이 알려졌다.


동종은 누구나 칠 수 있다. 몸 던지며 건강을 빌어본다. 꼬마 녀석이 살포시 던져주고 간 경쾌한 종소리가 온 경내에 울려 퍼진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해수관음상 머리에 까치 한 마리 앉았다. 날갯짓하는 비상을 꿈꾸며 날갯짓하는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다. 몇 분을 기다려도 까치는 요지부동이다. 뭐라 한 마디 않는 뒷짐 진 해수관음상의 위엄을 까치는 알고 있지만 한 번만 날아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은 알 리 없다.


원통문 지나는 길에 가을이 앉았다. 해지는 어스름길에 노을이 비치고 보살님들의 소원이 겹겹이 쌓여 운치를 더한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정한 몸짓으로 하늘을 향하고 티끌 하나 없는 정갈한 마음을 쓸고 닦으며 성심을 다해 하루를 기도한다.


낙산사에 달빛이 내린다.


낙산사 7층석탑은 탑신석 아래에 탑신석과 비슷한 두께의 석재가 끼워져 있고 다른 탑신석에 비해 두께가 얇은 것이 특징이다.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조성되었고 조선 세조 13년에 중창하면서 7층으로 다시 쌓았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여의보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낙산사 담장


담장은 경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고유어인 담과 한자어인 장이 합쳐진 말이다. 낙산사 담장은 기와와 흙을 섞어 쌓은 와편 담장이다. 조선 세조가 1467년 낙산사를 고쳐지을 때 처음 만들었다. 담장은 원통보전과 7층석탑을 둘러싸고 있으며 담장 안쪽은 기와, 바깥쪽은 막돌로 쌓아 안과 밖을 구분하였다. 담장 아래는 큰 돌을 쌓아 습기를 예방하였다.

담벼락은 암키와, 강회, 진흙을 차례로 다져 수평으로 줄을 맞춰 쌓았으며, 그 사이에 둥근 화강석을 규칙적으로 배치해 벽면을 꾸몄다. 담장 위에는 기와를 얹어놓아 담장보호와 장식효과를 동시에 고려하였다고 전한다.


낙산사 사천왕상은 조선 말기에 김주성이 조성했으며 1914년에 문을 고치면서 사천왕상을 개금 하였다. 1988년에 문을 고치고, 2010년에 문을 다시 고치면서 사천왕상 개금을 다시 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과 2005년 산불에도 해를 입지 않았다. 사천왕문 앞에 있는 큰 벚나무 두 그루가 산불을 막아 화재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낙산사 전체를 둘러보고 관람하려면 족히 두세 시간은 넘게 투자해야 한다. 오전 일찍 영랑호를 거쳐 울산바위를 보고 청간정에서 머무른 후 낙산사까지 하루 온종일을 걷고 걸었더니 다리 아픈 건 둘째고 배가 너무 고프다. 낙산사를 나와 저녁 동명항의 어둠을 구경하고 회를 떠서 등대해변 앞 물회를 사 삼선들의 화려한 저녁 파티를 즐기려 한다.

뚜벅이 여행의 진수를 보여 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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