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박물관 전시ㅡ거장의 비밀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문학의 거장들을 만나러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가을 한낮, 독서모임의 무리들이 박물관 입구로 들어선다. 예매한 표를 받으러 안내데스크로 갔더니 어느 모임에서 왔느냐 묻는다. 보통 5장을 한꺼번에 구매하는 사람들이 없어서일까, 이건 독서모임에서 반드시 와야 하는 곳임을 우리가 증명해 준 것이었다.
이번 전시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삶과 문학적 여정,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조전의 순간들을 조명해 부산박물관에서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전시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부터 뒤늦게 진가를 인정받은 작가들까지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전시는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과 유서 깊은 도서관, 개인 소장가들의 특별한 협력으로 마련되었고 처음 공개되는 자료를 포함해 137점의 귀중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몇십 년 만에 찾은 부산박물관은 옛 그대로다. 일요일인데도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리저리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기를 서너 번 하다 겨우 한 대 찾은 곳에 빡빡한 주차를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옛날 보았던 곳이 아닌 것 같다. 분명 회랑을 지나진 않았는데 오늘에서야 회랑이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놓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는 것 같다.
초상화와 원고, 초판본은 작가들의 삶과 시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다. 그 속에는 작가들의 고뇌와 숨은 이야기, 독자와 호흡했던 시대의 흔적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삶과 글, 초상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드러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전한다.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문학가가 많을 거라 여겼지만 모르고 있는 문학가가 훨씬 더 많았다. 접하지 않은 작가의 삶에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자 안내하시는 분이 너무 그림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하신다. 아~~ 그러면 글자가 안 보이는데, 이 또한 낭패다.
작가들의 성공 여정은 시대마다 다르며 출판 환경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이름을 알렸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의 치열한 노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책, 원고, 초상화, 편지 속에 남은 작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 흔적을 살펴보라 권한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전시관을 둘러보며 메모도 하고 사진도 찍고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며 다시 이 책을 찾아 읽어보자 말하기도 했다. 사실 모르는 작가들이 너무 많아 짧은 독서편력에 반성도 하면서 새로운 다짐도 하면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일부 작가들은 정치적, 도덕적, 사회적 검열과 차별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했다. 성별과 인종, 성적 지향은 출판을 막는 또 다른 장애물이었으며 때로는 정체를 숨겨야 했던 것이 작가로서 살아남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한 차별 속에서 끝내 성취를 이룬 작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지 레밍은 바이비도스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교사로 일하기 위해 트리니다드로 이주했으며 1950년 영국으로 건너와 작가 샘 셀본과 같은 배를 타고 영국에 도착했다. 영국에 정착한 뒤 레밍은 BBC 식민지 방송국에서 방송활동을 하며 <카리브해의 목소리>에 참여했다. 6편의 장편소설을 썼으며 자전적 성격이 강한 첫 소설 <내 피부의 성안에서ㅡ1953>는 식민지 권력이 카리브해 사람들을 어떻게 억압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작가들은 세상을 바꾸고자 펜을 들었고, 글은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며 기성 체제에 도전한 작가들과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작가들도 많았다. 그들은 시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인종과 성평등과 성적 지향 등 다양한 권리를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가을 한낮, 따뜻한 가을바람을 쐬며 뜻있는 마음들과 함께 수다 떨기 좋고 즐기기 좋은 시간을 함께 누리며 몰랐던, 그리고 유명한 작가들의 궤적을 찬찬히 따라가며 그들의 삶과 작가의 투쟁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