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를 네가 알렸다

영화 '천주정'

by wanderer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폭력적인 상황에 연루된다. 이유는 네 명 모두 다른 것이지만, 그들의 죄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선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영화 속의 이 이야기들을 가십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보면서 출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각 에피소드들이 모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기시감은 그런 사건 사고를 다루는 모습들과 관련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 뉴스에 대서특필 될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부랴부랴 발등에 불이 떨어질까 피했고, 수건 돌리기를 하듯이 다른 이에게 책임을 옮겼다. 그런데 그렇게 수건 돌리기가 끝난 자리에 술래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하릴없이 앉아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마다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나는 '희망'이 한 번도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다가온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론 내가 뭔가를 '희망'했을 때 기대했던 것들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엔 턱없이 부족한 노력에 기대는 요행이었다. 그런 요행이 아닌 '희망'은 대개 사소한 티끌 같은 모습이었다. 작은 정보, '일말의 가능성'이 내가 본 희망의 모습이었다. 무언가를 희망할 때에 그에 거는 기대는 사소한 정보들에 의존한다. 나는 사람들이 살면서 '삶' 자체에 거는 희망은 '그래도 먹고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희망 없는 사회를 표현하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가 끝나고 들었던 생각도 그런 것이었다. '내가 저런 상황 속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볼 수 있을까?'


따하이는 광산 판매에 대한 배당금을 회사 사장인 자오 셩리에게 요구한다. 그의 행동은 거침없지만,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도, 그렇다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 부분이 흥미로웠다. 마을 사람들은 배당금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들이 왜 침묵을 하는가에 대해 알 수는 없었다. 단지, 따하이는 배당금을 원했고, 사장과 촌장은 그를 무시했으며 마을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는 것만 보였다. 무협 영화의 느낌을 살려서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따하이의 행동은 무협 영화의 협객들과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였다. 마을 사람들 간에 서로 짜고 치는 일이었든, 그것이 아니었든 따하이에게 되돌아갈 길은 없었다. 멸시와 조롱 속에서 그가 택한 것은 일을 내는 것이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조우산은 고향에 돌아오지만, 다시 길을 떠난다. 샤오위와 샤오후이는 돈 때문에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돈을 찾아 떠돈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각자의 손에서 발생하는 폭력들을 묶어내는 것은 제목이었다. '천주정'이라는 뜻을 몰랐다면, 개별적인 에피소드처럼 넘어갔을 이야기들은 제목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지아 장커 감독은 결국에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영화는 체제 변화를 통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이 놓친 것들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는 돈 때문에, 돈을 위해서 놓치고 있던 것이 뭐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개인의 폭력과 그로 인한 일탈은 사회의 문제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는지, 폭력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운명'이라 착각하고 살아가던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A Touch of Sin, 天注定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흔들림 없이, 거리를 벌려서 등장인물들을 보여준다. 널찍한 화면과 등장인물의 간극은 자연스레 그 배경까지 포함해 보게끔 만든다. 한 개인의 폭력 사태로 좁아졌던 시야는 카메라와 인물의 거리만큼 확장된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내내 어딘가 불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던 주제 의식은 결코 저들만의 것이 아니었고, 외려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있었다. 끊임없는 폭력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은 그것이 타인을 향하는 폭력이든, 자기 자신을 향하는 폭력이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가능한 일이다. 당장에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건들은 우리의 역사가 되지 못한 채 흩어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일갈처럼 무겁게 이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 있을까. 영화 속에서 샤오위가 구경하는 경극의 배우는 그 대사를 강하게 세 번 내뱉는다. 그 절절한 외침과 정적, 그 말로 뿜어져 나오는 중압감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외침이 영화 속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어떤 집단에게, 특정한 국가에게 바르게 닿았으면 한다. 적어도 많은 사람에게 이곳에서 태어난 것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만드는 것은 현상에 비해 턱없이 작은 희망사항이지만, 같이 살아가기 위해선 해야 한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천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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