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잠시 멈춘 듯 고요했다.
가을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가장 선명한 그림을 남겼다.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온도가 바뀌었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문틈으로 빠져나가고, 안쪽의 따뜻한 공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창가 자리.
오래된 나무 프레임의 창 너머에는 분주했던 지난날의 의자와 비닐 텐트로 덮인 미니텐드가 햇살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계절의 마지막 장면을 천천히 넘기고 있는 풍경처럼.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스콘을 트레이 위에 담았다. 트레이 위에 놓인 검은 머그잔과 바삭한 페이스트리 한 봉지가 작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오래 묵혀둔 마음속의 먼지를 털어내듯, 뜨거운 김이 조용히 올라왔다.
커피 잔을 감싸 쥐는 순간, 그동안 나도 몰래 쌓아두었던 긴장들이 스르륵 풀리는 기분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면, 저 멀리 저수지의 물결이 흔들리고 텅 빈 테라스가 햇살에 비쳐 반짝였다. 비어 있는 의자와 테이블은 지난 계절 분주했던 시간은 어데 가고 고요했다.
사람들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마지막 낙엽만이,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스콘을 한 입 베어 입에 넣는 순간 생각보다 고소했고, 씹을수록 은근한 단맛이 퍼졌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요즘 나는 ‘달콤함’이라는 감정을 무심코 지나치고 있었다는 걸.
늘 해야 할 일 속에서, 잠시 마음을 정리하게 해 준다.
다음 계획 속에서, 나를 위한 사소한 기쁨들은 자꾸만 밀려나곤 했다.
오늘의 이 작은 빵 한 조각이 그런 나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 “이렇게 멈춰도 괜찮아.”
나는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창밖의 그림자를 따라갔다. 나뭇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이 유리창에 부딪혀 눈이 부시다. 그 빛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모든 말을 대신해 주는 풍경. 그 안에서 나는 조용히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요즘의 나는, 나를 얼마나 돌보고 있었지?”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누구와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익숙한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듯한 이 여백 속에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가장 선명하게 마주하게 된다.
오늘의 나는 그 여백 속에서 잠시 멈추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다시 정렬되는 기분이었다.
문을 나서기 전, 나는 창밖의 테라스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햇살이 의자 위에 가만히 내려앉아 있었다.
여름 같으면 호시탐탐 자리를 기다렸는데 계절탓으로 아무도 앉지 않은 자리인데도 이상하게 따뜻해 보였다.
그 풍경이 하나의 문장처럼 마음에 남았다.
멈춤에도 온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온도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는 것.
카페에서의 짧은 오후.
큰 사건도 없었고 특별한 만남도 없었지만,
나는 그 시간 동안 오랜만에 나 자신에게 다정해질 수 있었다.
오지랖 그만하고 나를 돌아보기로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