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첫눈이 올 거라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창문을 열어 본 순간, 예상보다 훨씬 진한 풍경에 잠시 말을 잃었다.
첫눈치곤… 정말 많이 내리고 있었다.
요즘은 뉴스 볼 여유도 없을 만큼 바쁘게 지내던 터라,
그저 무심코 밖을 내려다봤을 뿐인데
퇴근길을 맞추기라도 한 듯, 이미 엄청난 눈이 쌓여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문정희 시인의 시 낭독이 스쳤다.
차라리 눈 속에 묻혀 감금되고 싶다던 그 구절.
그 말이 내 마음 깊숙이 와 닿았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어느 겨울날, 눈이 소복하게 쌓인 양수리를 걸으며
세미원 길을 따라 천천히 걷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온도,
발밑에서 사르르 부서지던 눈의 느낌까지.
그 여운들은 꽤 오랫동안 나를 붙잡아 두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제는 눈이 조금 겁이 난다.
예전엔 감성 같던 눈길이,
지금은 ‘미끄러지면 어떡하지’ 하는 현실적인 걱정으로 먼저 찾아오는 걸 보면
참 많이 변해버린 것 같다.
그날의 양수리 풍경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오랫동안 내 프로필을 채웠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 모습이 현재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어느새 과거의 장면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첫눈이 이렇게 유난스레 쏟아지는 날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살짝 겹쳐 보인다.
첫눈치곤 과하게 내린 오늘의 눈은
어쩌면 잊고 있던 시간들을 조용히 불러내려는
겨울의 작은 장난 같은지도 모르겠다.
녹아버리기 전, 이 풍경을 마음 깊숙이 한 번 더 간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