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다시 쓰는 시작

by 바람에 실린 편지


브런치 작가 10주년을 맞아 서촌을 찾았다.

작년의 성수동 분위기보다 한가하였다. 아침 공기가 조금은 서늘했고, 하늘은 높고 투명했다. 가을이 제법 깊어졌음을 피부로 느꼈다. 유난히 은행잎이 쌓인 가로수를 보니 오랜만에 마음을 느긋하게 했다. 천천히 걷기 좋은 날, 천천히 생각하기 좋은 날이었다.

서촌의 한 공간에서 열린 행사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낯선 이들이지만, 모두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게 편안했다. 각자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써내려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 틈에서 나도 오래된 꿈을 조심스레 꺼내보았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미뤄두었던 ‘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많았고, 써야 했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는데, 나는 자주 멈췄다. 완벽하지 않아서, 시간이 없어서, 누가 볼까 두려워서. 오늘은 그런 내게 변명을 멈추라고 말해주는 날 같았다.

작가들의 예쁜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서점에서 본듯한 책도 보였다. 단정한 문장과 진심 어린 고백이 담긴 책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들의 시간이, 고민이,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으며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괜히 가슴이 먹먹하고, 오래된 감정들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한쪽에는 즉석 글을 써보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망설이다가 자리에 앉아 나도 몇 줄 써보았다. 가을날 서촌에서, 조용히 내 마음을 꺼내 놓았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였지만 오랜만에 '나답다'고 느껴지는 글이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나를 위로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궁금한 부분도 물어보고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바람이 더 차가워졌다. 초겨울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공기였다. 괜히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그런 날엔 따뜻한 게 간절해진다. 몸도, 마음도.

문득, 잔치국수가 생각났다.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다짐하는 날엔 꼭 그런 따뜻한 음식이 떠오른다.

오래전, 누군가의 응원과 함께 먹었던 그 국수처럼. 국물 한 숟가락에 녹아있던 말들이, 위로처럼 다가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도 오늘, 잔치국수 국물이 정겹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해본다.

다시 써야겠다고. 동기부여를 받았다.

자주 멈춰도 괜찮으니, 또 쓰겠다고. 마음이 센치해지는 이 가을 끝자락에서, 나는 아주 조용하게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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