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뒤 책상에 앉은 아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푹 빠져 있었다. 붓을 쥔 손끝에서 피어나는 색채들, 자유롭게 흐르는 선들 속에서 아이는 온전한 자신을 만나고 있었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아이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 이 재능을 더 발전시켜주고 싶다는 것.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엄마는 최고의 입시미술 선생님을 찾았고, 정물화와 크로키 기법이 담긴 세밀한 수업계획표를 아이 앞에 내밀었다. “이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단다.”
그 순간,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즐거웠던 그림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한 행복은 누군가 정해준 커리큘럼이 되었고, 여가는 의무가 되었다. 좋아서 하던 일이 해야만 하는 일로 바뀌는 순간, 그 모든 즐거움은 스트레스로 전환되었다. 아이는 미술그룹과외를 거부했다.
엄마는 당황했다. 분명 아이를 위한 일이었는데, 아이를 더 행복하게 해 주려던 일이었는데. 사랑의 이름으로 놓친 것은 무엇일까? 서둘러 그룹과외를 철회했다.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은 대부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엄마의 걱정과 아이의 자유, 그 사이의 온도 차이에서
엄마는 아이가 미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았고, 그 즐거움을 더 크고 깊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조금 더 기술적으로 도와주고, 전문적인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미술은 단순히 여가였고, 취미의 시간이었다. 전문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의견은 아직 아이 안에서 싹트지 않았다.
아이의 입장에서, 사춘기 자녀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키면서 진로를 탐색하게 하려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시간과 자율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아이 스스로 “이걸 더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심화학습의 기회를 함께 논의할 수 있다. 아이가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그에 따른 수업이 전적으로 아이의 요구에 따라 진행될 때, 비로소 진짜 배움이 시작된다.
그렇게 될 때 아이는 자기가 세운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을 느낀다. 혹은 도전에 따른 실패를 겪게 되더라도, 이를 극복하며 얻는 회복력이 학업 역량의 큰 밑거름이 된다.
바로 이것이 자기주도적 학습의 근본이다. 그래야 결정의 무게를 견디는 힘이 생긴다.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선행이 아니라 아이의 결정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반드시 아이의 요구 범주 안에 머물러야 한다.
자기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도 학습의 중요한 과정이며, 경험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자율성이 보장되고 책임의식을 가진 아이는, 선택의 실수가 있을 때에도 자기회복력이 뒷받침되어 발전적인 방향으로 재설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지혜로운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지, 아이와의 충분한 대화를 거절하는 것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가장 큰 벽을 세워두는 일이 된다.
트러블이 긍정적인 효과로, 성장의 화력으로 소비되는 에너지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로와 학업에 있어 즐거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되, 아이의 자율성과 자유로운 선택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의 꿈과 비전은 나날이 꽃 피워가도록…
사춘기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최고의 선생님도, 최고의 학원도 아니다.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도전과 실패의 경험에 박수쳐주는 일이다.
엄마의 걱정과 두려움을 아이의 발목에 달아놓지 않는 일이다. 아이의 의견과 필요를 먼저 충분히 탐색할 자유와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 일어서며, 스스로 날개를 펼치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