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 1부. 4.

1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하지 마라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상처들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하지 마라


"어떤 사람은 한 순간에 평생을 다 써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타인에게 주고, 그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한평생을 다 사용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울렸던 말이다. 한순간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 누군가의 가슴에 깊게 박히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어떤 약을 발라도 아물지 않았다. 그 못은 내 안에 박힌 채로, 나는 오랜 시간 피 흘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 못을 뽑는 일, 아니 스스로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어머니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두 장면이 떠오른다. 새벽부터 일어나 보온 도시락 통 안에 밥을 담는 뒷모습, 그리고 마당에서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는 뒷모습이다. 두 장면 모두 뒷모습이라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이 되던 시절부터 의도적으로 내 얼굴을 외면하셨고, 그 무언의 뒷모습은 거부와 냉정함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매일 아침 어머니가 싸주신 나물 반찬과 된장국이 담긴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풀 내음이 퍼지는 골목을 지나 학교로 향했다. 그 시간은 고요하고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은 매일 전쟁터를 지나듯 피폐했다. 왜냐하면 나의 아침은 보통의 아침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를 깨울 때마다 소리쳤다.


“머리 검은 짐승은 데려다 기르는 게 아닌데, 내가 뭔 죄를 지어 이 고생을 하냐.”


이 말은 마치 가정 안에 울려 퍼지는 총성처럼, 내 안에 공포와 죄책감을 동시에 각인시켰다. 심리학자 Bowlby는 ‘애착의 안전기반(Secure base)’ 이론을 통해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선 일관된 정서적 반응과 예측 가능한 돌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반복된 따뜻한 음식과 차가운 언어 속에서 애착의 혼란(disorganized attachment)을 겪어야 했다. 사랑과 혐오가 동시에 존재하는 양육 환경은 아이에게 ‘나는 나쁜 아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감정을 억제하며 그 당시를 지나왔다. 어른이 되고서야 어머니의 감정적 표현이 어쩌면 할아버지를 향한 무언의 저항이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이였던 나는 당시엔 그 맥락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고, 어머니의 ‘투사된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존재가 되어 매일 자존감과 자기애가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는 맏며느리가 아니었지만 모든 일들을 도맡아야 했다. 그래서 가부장제의 구조 속에서 그녀가 떠맡은 수많은 노동과 감정적 책임이 결국 정서적, 언어적 폭력으로 흘러 내게 들어왔다. 나는 뒤늦게 시작한 공부열로 새벽 5시까지 공부하다 잠이 들었기 때문에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어머니의 욕설 섞인 호출로 겨우 깨어날 때가 많았다. 어머니의 욕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절대 욕하지 말아야지.'라고 되뇌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 어머니가 왜 욕을 하셨는지 이해하게 됐다. 당시 어머니의 해소하지 못한 감정의 파편들이 욕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서 깨달았다. 어머니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진 가부장적 시스템 안의‘감정적 하중 노동자’였다. 아버지는 착한 아들이자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친인척들 부양과 시댁과 공동체 안의 복잡한 역할까지 떠맡았고, 이것을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전가했다.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의 고통이 폭력적으로 나를 덮쳐오곤 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역할 전가(role transference) 현상으로 원래 남편이나 시부모에게 표현해야 할 분노가 약자인 아이에게 전이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머리 검은 짐승은 데려다 기르는 게 아닌데, 내가 뭔 죄를 지어 이 고생을 하냐.’로 시작된 폭력적인 말들로 매일 아침 소리치셨다. 그 말은 할아버지의 방과 내 방 사이, 복도를 타고 크게 울렸다. 이러한 말들은 나에게 ‘나는 원하지 않는 존재’라는 낙인(낙인 이론: labeling theory)을 심리적으로 각인시켰다. 그 감정은 이후 자존감 결손, 버림받음에 대한 불안, 감정조절 어려움 등의 형태로 가슴 깊이 남았다. 그리고 가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 잠에서 깰 때가 있는데 그때 형성된 신경계의 과잉 각성 상태(hypervigilance)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중에서야 어머니가 그런 말을 나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그건 할아버지를 향한 정서적 저항과 무언의 힘 과시, 즉 가부장적 억압에 맞선 우회적 분노의 표출이기도 했다.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이중의 상처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가족인데 그 정도는 이해해야 하지 않나?”, “어머니가 불쌍하잖아, 그 시절엔 다 그랬어.” 이런 말들은 겉으로는 연민이나 이해를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피해자의 감정을 무효화하는 말이다. 정서학적으로 이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라고 하며, 특히 어린 시절 상처를 드러내는 사람에게 “그 정도는 별일 아니다.”, “그래도 사랑하셨을 거야.”와 같은 반응을 보여 2차 피해(secondary victimization)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말들로 인해 고통을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은 다시 침묵하게 되고, 또다시 죄책감을 안게 된다. 어린 시절 겪은 고통을 회고하는 일이 용기를 요하는 이유는 진짜 상처를 꺼냈을 때 이해받지 못할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들을 뱉는 사람들에게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삶이 힘들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상처를 줄 권리가 되진 않는다. 지금도 가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용히 무너진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말들로 스스로를 설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 감정은 이유가 있고, 내 아픔은 기억될 자격이 있으며, 충분히 아파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매일 글을 쓴다.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여러 며느리들 중에서도 중간 며느리였지만, 맏며느리처럼 모든 일들을 떠맡아야 했다. 그중 하나가 버려진 불쌍한 아이를 거둔 의무로 나를 어쩔 수 없이 거둔 일이었다. 대 식구들의 책임들을 어쩔 수 없이 떠맡은 어머니는 가족 시스템 내에서 감정의 배출구를 찾지 못했고, 그 분노가 상대적으로 더 약자인 나에게 전이되었다. 이는 구조적 삼각화(triangulation)라고도 불리며, 두 사람(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에 제삼자(아이)를 끌어들여 감정의 균형을 맞추려는 가족 역동의 대표적인 양상이다. 이 구조는 제삼자인 아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심리적 무게를 부여한다. 아버지는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실질적인 가정 운영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넘겼고, 어머니는 그 역할을 감당하느라 끊임없이 ‘자기 억압적 돌봄’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노동력의 한 축으로 성장했고, 아이로서 보호받아야 할 시기를 '기능적 어른'으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이런 어린시절의 경험은 나의 자아 형성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환경은 역기능적 가족체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역할 전치’(role reversal)의 전형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동은 이후 성인기가 되어도 종종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하고, 자기감정을 억압하는 공의존자로 성장하게 된다.


어머니와 그 안에 속한 여성 어른들은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일했다. 농업과 축산업, 가사노동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속에서 아이들도 ‘옛 농경 사회 식 노동 인구’처럼 포함되어 잡일을 도맡았다. 상추 한 장을 씻더라도 수십 명의 식구 분량이니 몇 시간은 헹궈야 했고, 식사를 마치면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또 몇 시간이나 닦고 말려야 했다. 음식은 반드시 예쁜 그릇에 소담하게 담아야 했다.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를 ‘반찬통 금지 규칙’ 아래 늘 한정식처럼 정갈히 차려내야 했다. 그 정성은 돌봄이라기보다, 누군가를 위한 전시처럼 느껴졌다.


과잉된 가사노동과 비합리적 규칙은 여성 어른들에게 지속적인 심리적 압박을 주었다. 그 아래에서 나는 노동과 돌봄을 오가는 중간자적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 새벽에는 할아버지의 축산과 농업을 돕고, 낮에는 어머니들의 가사를 거들고, 농장일과과 농업을 도우며 힘을 썼다. 밤에는 어린 동생들의 숙제를 돕는 등 하루를 ‘작은 어른’으로 마감해야 했다. 가족 공동체 안의 남성 어른들은 예외 없이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웠다. 여성들이 허리를 굽히며 일하는 동안, 남성들은 거실에서 춥다며 창문을 닫고, 둘러앉아 담배 연기로 방 안을 너구리굴처럼 만들었다. 그 너구리굴 안에 아이들을 무릎 꿇게 하고 한참 동안 훈계하며 남성 어른이라는 감투를 마음껏 발휘했다. 그리고 접시를 닦던 여성 어른들에게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을 외쳐 커피 잔을 건네받고는 식후의 여유를 즐겼다. 그 여유는 여성들과 여자아이들의 수고를 전제로 한, 특권적인 휴식이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어린 마음에 스스로 물었다. 왜 어른 여자들은 하나같이 '돈 벌면 절대 시집가지 마라.'라고 말했을까? 결혼이라는 제도가 마치 여성의 자유를 빼앗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나는 크면 결혼 안 할 거야. 저 세계엔 들어가지 않을 거야.' 라고 다짐했다. 그건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구조적 억압을 체험해 배운 생존 본능이었다. 이처럼 성 역할에 따른 억압 구조를 어릴 때부터 목격하고 체득한 아이는 이후에도 관계 속에서 ‘돌봄은 의무이자 고통’이라는 왜곡된 신념을 갖기 쉬워진다. 이는 훗날 공의존 성향의 토대가 된다. 자신을 돌보기보다 타인의 요구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타인의 감정에 대한 책임까지 스스로 짊어지려는 과잉 책임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실, 남성 어른들이 바깥일을 더 많이 한 것도 아니었다. 자급자족 농업과 대형 농장을 병행하던 우리는 남녀 모두 같은 강도로 일했다. 오히려 여성들의 일이 더 많았다. 농사와 축산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작고 반복적인 손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일하다 보면 근력이 붙었다. 어린 나도 초등학생 무렵부터 20 kg 사료 두 포대쯤은 거뜬히 날랐고, 닭도 양손에 열 마리씩 쥐고 한 번에 스무 마리를 한번에 옮겼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처음엔 믿지 못했지만, 몇 해 전 어머니께서 직접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 주시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가 경험한 처참한 환경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벅찼던 그 무게는 내 몸에 ‘생활형 근육’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마음은 점점 더 작아지고, 무뎌지고, 굳어졌다. 그건 성장이 아니라, 적응이라는 이름의 생존 방식으로 몸에 남았다. 몸이 커지는 만큼, 마음은 더 작아졌다.



반복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그녀의 차가운 뒷모습은 마치 정서적 미로처럼 나를 가뒀다. 그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사랑과 거절이 동시에 존재하는 환경에 놓여 있었고, 그 모순적인 환경은 내 안에 혼란형 애착(disorganized attachment)을 형성했다. 이는 Bowlby의 애착이론에 따라, 보호자에게서 일관되지 않은 정서 반응을 경험한 아동이 겪는 심리적 혼란을 말한다. 따뜻한 돌봄과 냉정한 외면이 동시에 주어질 때, 아이는 어느 쪽도 안전기반으로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혼란형 애착은 성인기의 관계에서도 반복되며, ‘혼란 속 사랑’, ‘상처받는 돌봄’, ‘받기 위해 견디는 관계’ 같은 형태로 이어진다. 나는 30대 중반까지도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스스로를 ‘감사’라는 이름으로 가스라이팅해 왔다. ‘용서하라’, ‘감사하라’는 말은 종종 도덕적 정당화라는 외피를 입고 감정을 억압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도덕적 정당화로 내면의 감정이 무시되면, 자기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 자체가 위축된다. 그리고 결국 자기 보호를 포기하게 되는 심리적 무기력이 형성된다.


좋은 기억만 기억하고 꺼내려고 할수록 진짜 아픈 기억은 더 깊은 곳에 묻혔다. 그 억누름은 결국 무의식의 그림자가 되어 나를 오랫동안 짓눌렀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repression)의 기전과도 닿아 있다. 의식에 오르지 못한 감정은 무의식에 자리 잡고 지속적으로 자아의 기능을 방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깨닫게 된 사건들을 만나게 됐다. 그 사건들은 오랫동안 감사하고,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고 믿어왔던 어머니를 진심으로 미워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그 미움을 마침내 인정한 그 순간에 비로소 진짜 용서와 회복의 출발점에 설 수 있었다. 이는 진정한 회복의 심리학적 조건 중 하나인 '감정의 수용과 명명(emotion acceptance & labeling)'을 실천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이 자각은 시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촉발되었다. 어린 시절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진짜 가족이 갖고 싶었던 나는 남자친구들을 만나면서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가족 공동체를 이룰 만한 분들인지 생각하고, 기도하며 신중하게 선택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선택하고 보니 시부모님은 나의 어머니와 원가족들과 놀랍도록 닮은 분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인간은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트라우마를 무의식적으로 반복 재현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 무의식적 반복은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의 감정과 기억이 현재의 선택을 지배하는 것이다. 나는 원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며, 시부모님들과 10여 년을 함께했다. 여자 친구 시절부터 자발적으로 시집살이를 자처했고,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감정을 숱하게 겪으면서 결국 어린시절 어머니를 향한 내 진짜 감정과 시어머니를 향한 진짜 감정을 직면했다. 이러한 과정은 전이(counter-transference)의 일종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과거의 인물이 현재 관계의 인물에게 투사되는 현상 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고통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미움에 대한 자각은 내 안의 감정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도록 극한의 벼랑 끝에 나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르지 않겠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되었다. 이는 억압의 감옥에서 스스로를 끌어낸 주체적 각성의 순간이자, 심리적 회복의 문을 여는 의식적 전환의 지점이었다. 내겐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내가 나를 치유하기로 결심하게 된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자기 파괴적인 선택을 했던 순간


어머니의 사랑은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것처럼 극단적이었다. 그녀의 감정은 언제나 한쪽 끝에 머물러 있었고, 덕분에 나는 감정의 중간 지대를 배우지 못한 채, 경계 위를 걷듯 눈치를 살피며 자라야 했다. 애착이론의 대표적 연구자인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는 ‘낯선 상황 실험(Strange Situation, 1978)’을 통해 양가애착(ambivalent attachment) 유형을 밝혀냈다. 그녀는 “양육자의 반응이 일관되지 않으면 아이는 극도로 불안정해지고, 사랑받기 위해 과도하게 순응하는 행동을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당시의 나는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골라 수행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따뜻한 반응이 좋아서 더 많이, 더 과하게,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애를 썼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떤 날은 그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감정을 겪어야 했다. 이 시기에 각인된 믿음은 바로 ‘조건부 사랑’이다.


애착이론에 따르면, 이런 양가감정 속에서 자란 아이는 사랑을 ‘언제든 박탈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이 주어야 하며, 때로는 자신을 해쳐서라도 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믿게 된다. 이것은 자기 파괴적 돌봄(self-sacrificial care)의 시작이자, 훗날 공의존적 관계에 쉽게 이끌리는 심리적 토대가 된다. 중학생이 되던 14살(만 12세) 무렵, 어머니는 도시락을 건네며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오늘 네 아빠한테 전화해서 꼭 돈 달라고 해. 너 팬티 사려고 만 원 썼으니까 그거랑 합쳐서 꼭 받아서 나 줘. 빨리 약속해.”


그 말은 내가 중학교이던 시절 동안 지속됐다. 반복된 어머니의 요구로 나는 점차 ‘돈을 받아내는 존재’로 기능했고 그때부터 매일 돈 걱정을 안고 살았다. 내 존재 자체가 ‘부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돈에 대한 열등감과 수치심의 뿌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돈을 줄 때까지 끈질기게 시도하라고 지시하셨다. 나는 전화를 걸고 또 걸었지만,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알았다.”는 말만 남긴 채 한 달 이상 연락을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간신히 돈을 받게 되면, 새어머니로부터 하루 수십 통의 전화를 받았고 새어머니는 내게 당장 사라져버리라며 욕을 한바탕 뱉어 내셨다. 이러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양가적이고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나는 점차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짐짝처럼 불편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갔고 스스로를 짐처럼 생각하게 됐다. 더욱 잔혹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함께 살던 아버지가 알고 있었지만 침묵했다는 점이다. 그는 실제로 사업자금 대부분을 나를 버린 친부에게서 빌려오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밝히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도 “짐스럽다”는 말과 함께 억압당했고 공공연히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았다. 이처럼 가족 내 배제와 낙인(labeling)은 아동에게 자존감 손상과 자기 존재 불안을 증폭시킨다. 결국 생존을 위해 ‘성과’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아이로 자라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해내도 돌아오는 건 “다음엔 더 잘해라.”는 냉정한 말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었다. 이는 자기 존재 조건화(self-conditional worth)의 전형적 사례다. 자기 존재가 ‘성과’나 ‘복종’, ‘유용성’에 따라 평가받을 때, 아이는 자신의 본질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잘 해야 만 존재할 수 있다.’는 왜곡된 자기 개념을 형성하게 된다. 그 모든 감정의 바닥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단 하나의 진심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클로버 밭이 가득한 길을 지나게 된다. 어느 날부터 나는 그 클로버 밭에 앉아 네 잎 클로버를 찾아 삼키는 일을 반복했다. 그 순간들마다 속으로 ‘오늘은 행운이 올지도 몰라.’ 라고 되뇌었다. 그건 내게 감정의 해소이자 생존을 위한 의례였다. 작은 행운이라도 삼켜야, 그날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어머니의 기분이 좋아 보였고, 어머니의 기분이 좋아보이는 날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 어머니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등을 돌리며 “넌 너무 싫어서 쳐다보기도 싫다.”라고 말씀하시며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시선에 들고 싶어서 중학교 1학년 내내 책상 위에 엎드려 잠만 자며 공부를 하지 않았다. 성적은 바닥을 쳤고,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다. 내가 세상을 회피하면서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하던 때 어머니도 나를 회피하면서 각자의 시간을 채웠다.


어느 날, 풀을 매고 꽃을 심고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해요?” 그 질문에도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때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일주일, 혹은 한 달 넘게 말을 걸어도 어머니는 완벽한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정서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그의 저서 A Secure Base에서 정서적으로 무 반응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있다고 느끼며,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다.’는 핵심 신념(core belief)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나는 훗날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러한 정서적 단절과 말 없는 거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정서적 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시기, 어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학교생활을 놓아버렸고 이로인해 삶이 무너져 내리는 감정을 경험했다. 그리고 파괴적인 방식의 선택으로 망가진 성적표를 마주한 뒤에서야 '무너지는 모습이 아니라, 회복하는 모습으로 관심을 받아보자.' 라고 방향을 바꿨다. 제프리 영(Jeffrey Young)은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사람은 학업이나 성취를 통해 그 가치를 회복하려는 전략을 택한다.”라고 설명한다. 그때부터 나는 비어버린 1년의 공부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하루 4~5시간만 자며 공부에 몰입했고, 원하는 성적을 받았다. 같이 살던 아버지는 나의 성적을 기뻐했고, 나의 성적과 성취는 대외적으로 그의 트로피가 되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쉬는 시간마다 불러 “공부보다 인생에 더 중요한 것이 많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말이 말로 들리지 않을 만큼,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살아남고 싶었다.


조금 일찍 사춘기를 통과하며, 중학교 1학년의 경험을 통해 한 가지를 깊이 새겼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모든 손해와 책임은 내만 지게 된다. 다시는 내 미래를 걸고,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겠다.' 이 결심은 훗날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해 준 내 삶의 핵심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자기 파괴적으로 놓아버린 시기의 흔적은 ‘수학’이라는 과목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 시간 동안 놓쳤던 개념들이 내내 따라다녔고, 지금까지도 나의 열등감으로 남아 있다. 감정적 외상(emotional trauma)이 남긴 결핍은 때론 숫자와 기호 속에서도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몇 년 전, 어린 시절 한 집에 살았던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게 수험비를 보내주시면서 어머니께 전화 한 통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마침 돈이 급했던 나는 그 용돈이 무척 감사했다. 이 나이가 되고서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절박했던 현실 앞에선 감사함이 먼저였다. 그 후로 아버지는 전화를 자주 걸어 예전처럼 “전화 한 번만 해줘.”, “그냥 걸어만 봐.”라며 어머니에게 연락하라고 반복해서 말하셨다. 나는 “전화해서 뭐라고 해요? 할 말도 없는데요.”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그저 해보기만 하라며 부드럽고 끈질기게 요청하셨다. 결국 나는 돈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기독교적인 시선으로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아닐 거라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지 생각해 보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전화를 받으신 어머니는 마치 펑하고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감정을 봇물처럼 쏟아 내셨다.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는 내가 스무 살 초반이던 때,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갈 당시였다. 그 집은 나에게 고통의 상징이자 어린 시절의 불안과 폭력, 억압이 깃든 장소였다. 그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소식은 내게 해방처럼 느껴졌지만, 아버지는 집을 지키기 위해 내게 사채를 빌려달라고 요청하셨다. 나는 처음엔 별달리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반복해서 전화를 걸었고 “키워준 은혜도 모른다.”,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한다.”는 말들로 나를 압박했다. 결국 나는 사채 사무실까지 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몇 달 후에 오면 4천만 원에서 그 이상으로도 대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에서 벗어났고, 그 과정에서 백 통이 넘는 전화와 친척들까지 동원된 정서적 압박을 견뎌야 했다. 그 시기는 내가 하루 종일 일해도 만 원 남짓 받던 때였고, 대학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겨우 버티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좀 막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단호하게 “내가 왜?”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으셨다. 그게 그녀와 나의 마지막 통화였다.


이 경험은 내가 자주 들어왔던 말,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라는 문장 속 감정과 맞닿아 있다. 이는 가족 내 정서적 착취(emotional exploitation)와 ‘역할 전가(role reversal)’의 전형적 패턴이다. 심리학자 Judith Herman는 『Trauma and Recovery』에서 이러한 형태를 “죄책감과 의무를 이용한 정서적 지배”라고 설명하며, 특히 가족 내에서의 착취는 자녀가 부모의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왜곡된 믿음을 형성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도덕적 정당화(moral justification)는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기제다. “부모니까.”, “키워줬잖아.”, “네가 아니면 누가 하겠니.”와 같은 말은 자녀의 경계와 자율성을 침식하며, 이로 인해 관계의 균형이 무너진다.


나는 사채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와 내 옆에 있던 친구의 쓴소리를 들었다. 그 친구는 내게 “너 지금 멈춰야 해. 지금 안 멈추면 진짜 망가져. 나는 네가 불행하게 사는 걸 볼 수 없어. 그래서 네가 사채 빚을 해 주면 너랑 친구 안 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은 지금도 내 안의 구조를 흔들곤 한다. 그 친구는 내가 생애 처음으로 인생을 다 걸고 싶을 만큼 마음을 준 친구였다. 그 사건으로 나는 스스로 모든 것을 멈추기로 결심했고 20대 초반에 구 가족을 비롯한 모든 친척들과 완전한 절연을 선언했다. 그건 사랑을 거절한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와 착취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 선택은 단순한 거리 두기가 아닌, 심리적 독립(psychological individuation)을 위한 결단이었다. 자아의 경계를 회복하려는 이 선택은 이후 반복되는 정서적 착취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핵심 전략이 되었고, 이를 통해 나는 비로소 감정을 ‘나의 것’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선택 이후 어머니와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다가 전화를 하려고 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어두운 감정들을 모두 쏟아냈다. 마지막 변호사 시험을 두 번 남겼을 때부터, 나는 어머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다시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어머니께서 주신 쌀과 반찬, 때때로 따뜻한 말과 용돈들을 받았다. 나는 그 돈에 내 돈을 보태어 어머니가 필요하시다고 힌트를 주셨던 물건들을 사드렸고,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내가 그녀를 위해 하는 모든 것들을 진심으로 기뻐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그러다 내가 마지막 변호사 시험에서 떨어지고, 건강이 매우 악화됐으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고 느끼던 때가 됐다. 그때도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녀가 내게 의지해주는 것이 사랑받는 것 같아 기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적으로 매우 무겁다고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무렵 아버지는 “엄마가 불쌍하잖아.”라는 말을 하며 내게 감정적으로 큰 상처를 남겼다. 한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이 한국인의 정서에 대해 설명하며 “불쌍하지 않은 것을 불쌍하다고 말하는 문화적 왜곡”을 지적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는 실제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당한 감정’처럼 요구되는 감정에 순응하게 만드는 일종의 정서적 강요다. 받아본 적 없는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심리적 기제, 단지 낳아주고 밥을 먹여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자녀가 노년의 부모를 무조건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은 정서적 채무감(emotional debt)을 구축하며 자녀의 선택권과 주체성을 마비시킨다. “그래도 부모잖아. 그분들은 불쌍하신 분들이야.” 이 말은 도리와 윤리를 내세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녀의 정서를 도외시한 채 의무만을 강요하는 비언어적 억압에 가깝다. 나는 그 억압을 감지하고 있었지만 너무 오래 들어온 말이었기 때문에 그 말 앞에서 나는 늘 긴장했고, 멈칫하며 멈췄다.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불쌍하지 않은 것을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설득에 끌려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말들로 스스로를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그 사람의 몫이다. 그 감정까지 내가 짊어지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은 나의 감정을 왜곡된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내 감정을 글로 남겨 읽고 또 읽는다.


이것은 ‘효(孝)’와 ‘도리’라는 이름으로 감정의 무효화를 강요 받아온 나날들로부터의 탈피이자, 비로소 스스로를 존중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나는 나를 향한 연민 없는 강요를 더 이상 종교의 이름이나 가족 윤리로 포장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을 감싸기 위해 내 고통을 지우고, 나의 감정을 비워내는 방식은 결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은 나를 소진시키고, 내 존재를 지워버리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타인의 아픔을 감당하기 위해 내 상처를 감추는 삶을 살지 않기로 했다.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Nathaniel Branden)은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 중 하나로 ‘자기감정에 대한 책임’과 ‘경계 설정’을 강조한다. 나는 이제 타인의 고통을 나의 몫처럼 짊어지는 무의식적 반응에서 벗어나, 나만의 감정적 울타리를 세우려 한다. 이것은 무심함이 아니라, 자기 존중의 첫 단계다.


정신분석학자 도날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은 ‘충분히 좋은 양육자(good-enough mother)’ 개념을 통해,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때 자아가 건강하게 성장한다고 설명한다. 아이는 보호자에게 감정을 비추는 거울을 기대하며, 그 거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나는 어린 시절 따뜻한 밥 뒤에 돌아오는 차가운 말, 미소 속에 숨겨진 조소, 관심 뒤에 이어지는 비난 속에서 내 감정을 제대로 반영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내 자아는 일관되지 못한 경험과 메시지 속에서 혼란에 휩싸였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살게 되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생존 전략으로 ‘착한 아이’가 되려 한다고 본다. 흔히 ‘착한 아이 콤플렉스(people-pleasing)’라 불리는 이 성향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강화시킨다.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그런 역할을 택했고,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진짜 감정은 뒤로 미뤄졌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결단한 것은 그 왜곡된 거울을 버리는 일이다. 이것은 ‘용서하지 않음’의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호하기 위한 자기 회복의 첫 걸음이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더 이상 부모의 감정과 불안을 떠안으며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타인의 감정을 내 책임으로 삼아 나를 침묵시키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회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정서적으로 안전한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이 결심은 전통적인 가치관이 말하는 ‘효’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상처의 대물림을 막고 새로운 사랑의 방식을 살아가기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이다.


내가 내 감정을 반복해서 글로 적고 읽는 행위는, 나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자기 자비의 실천이자, 치유의 시작이 되었다. “너는 이제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온전한 감정의 주인이다.” 이 말은 내가 매일 스스로에게 건네는 가장 중요한 다짐이다. 사랑은 더 이상 착취와 혼란, 의무와 죄책감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나는 사랑을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어야 함을 배웠기 때문에, 부모가 내게 불러일으킨 감정에 대해 그 진짜 이름을 부르고, 인정하며, 내 감정을 내가 책임지는 존재로 서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타인의 감정과 그들의 행·불행에 대한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 온전히 돌려주기로 했다. 이 태도가 누군가에겐 무심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이 타인을 존중하고 나를 존중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나의 감정을 먼저 책임져 보려고 한다.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온전히 책임지며 살아가기로 이 글을 통해 다시 다짐한다.





참고자료 1부. 4.


1. Ainsworth, Mary D., Patterns of Attachment: A Psychological Study of the Strange Situation, Lawrence Erlbaum Associates, 1978.

→ 사용된 개념: 낯선 상황 실험, 양가애착의 정의와 특성

2. Bowlby, John, Attachment and Loss: Volume 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애착의 안전기반(Secure base), 혼란형 애착(disorganized attachment)

3. Bowlby, John,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1988.

→ 사용된 개념: 정서적 단절, 부모의 무반응성과 핵심 신념 형성

4. Branden, Nathaniel, The Six Pillars of Self-Esteem, Bantam, 1994.

→ 사용된 개념: 자기감정에 대한 책임, 경계 설정

5. Freud, Sigmund,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Norton, 1961.

→ 사용된 개념: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

6. Gilligan, Carol, In a Different Voic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2.

→ 사용된 개념: 여성의 도덕성과 돌봄 윤리

7. Goffman, Erving, Stigma: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 Simon & Schuster, 1963.

→ 사용된 개념: 낙인 이론(labeling theory)

8. Herman, Judith,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과잉각성(hypervigilance), 무감각(numbing), 감정 억압, 정서적 지배 등

9. Hochschild, Arlie Russell, The Second Shift, Viking Penguin, 1989.

→ 사용된 개념: 가사노동 이중부담, 돌봄노동의 불균형 구조

10. hooks, bell, 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 South End Press, 1984.

→ 사용된 개념: 가부장제 비판, 여성의 경험 중심화

11. Lerner, Harriet, The Dance of Anger, Harper & Row, 1985.

→ 사용된 개념: 억눌린 분노의 표출, 여성의 분노의 심리적 맥락

12. Minuchin, Salvador, Families and Family Therapy, Harvard University Press, 1974.

→ 사용된 개념: 삼각관계, 가족 역동, 기능적 역전, 억압 구조

13. Neff, Kristin, Self-Compassion: The Proven Power of Being Kind to Yourself, William Morrow, 2011.

→ 사용된 개념: 자기 자비의 정의

14. Norwood, Robin, Women Who Love Too Much, Pocket Books, 1985.

→ 사용된 개념: 공의존, 자기 희생, 관계 중독, 가스라이팅

15. Oakley, Ann, Housewife, Penguin Books, 1974.

→ 사용된 개념: 전통적 성역할에 따른 가사노동 구조, 여성 억압의 일상화

16. Perel, Esther, The State of Affairs, Harper, 2017.

→ 사용된 개념: 관계 속 감정의 혼란과 반복, 감정 인식과 성찰

17. Satir, Virginia, The New Peoplemaking, Science and Behavior Books, 1988.

→ 사용된 개념: 역할 전치(role reversal), 가족 내 감정의 전이

18.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억압된 감정의 신체화, 외상이 몸에 새겨지는 방식

19. Winnicott, D. W., The Maturational Processes and the Facilitating Environment: Studies in the Theory of Emotional Development,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65.

→ 사용된 개념: ‘충분히 좋은 양육자(good-enough mother)

20. Young, Jeffrey E., Klosko, Janet S., Reinventing Your Life: The Breakthrough Program to End Negative Behavior...and Feel Great Again, Plume, 1994.

→ 사용된 개념: 스키마 치료 이론, 과잉보상 전략(overcompensation), 핵심 신념

21. Main, Mary & Solomon, Judith, “Procedures for identifying infants as disorganized/disoriented during the Ainsworth Strange Situation,” in M.T. Greenberg, D. Cicchetti, & E.M. Cummings (Eds.), Attachment in the Preschool Year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0.

→ 사용된 개념: 혼란형 애착의 특성과 관계의 반복

22. 박지선,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적 강요: 불쌍하지 않은 것을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회적 압력에 대하여”, 정신의학과 사회, 제18권 2호, 2018.

→ 사용된 개념: 정서적 억압의 사회문화적 기제, 문화적 감정 강요

23. Linehan, M. M. (1993). Cognitive-behavioral treatment of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Guilford Press.

→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 개념 관련 이론Herman, J. L. (1992). 24.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 2차 피해(secondary victimization), 트라우마 이후의 사회적 상처 개념

25. Bowlby, J. (1988).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 애착 이론과 안전기반 개념 (이건 위 문단에도 사용됨)

26. van der Kolk, B. (2014).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Viking.

→ 신경계의 과잉 각성 상태(hypervigilance)와 감정 기억의 신체화에 대한 설명

27. Finkelhor, D., & Browne, A. (1985). The traumatic impact of child sexual abuse: A conceptualization. American Journal of Orthopsychiatry, 55(4)

→ 아동기 트라우마의 심리적 영향, 이중 상처 구조

28. Walker, L. E. (1979). The Battered Woman. Harper and Row.

→ 피해자 비난과 감정 억압이 2차 피해로 이어지는 메커니즘 설명

29. Rosenberg, Marshall B., Nonviolent Communication: A Language of Life, PuddleDancer Press, 2003.

→ 사용된 개념: 감정에 대한 책임과 관찰-느낌-욕구-요청의 구분, 자기 감정의 명확한 인식과 표현

30. Herman, Judith, Justice From the Inside Out, in Truth and Repair: How Trauma Survivors Envision Justice, Basic Books, 2023.

→ 사용된 개념: 피해자의 감정과 기억을 부정하지 않는 사회적 회복의 조건, 감정 무효화가 사회적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최신 심리학의 통찰




<알고 가기>


1. 코디펜던트란?


"코디펜던트"라는 용어는 심리학이나 관계에서 "공의존"을 뜻하는 **코디펜던시(Co-dependency)**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관계에서 서로 지나치게 의존하며 감정적, 심리적, 또는 물질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형성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특히 가족 내 중독 문제나 어린 시절의 정서적 학대와 같은 배경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1).


2. 코디펜던트 관계의 특징


가. 코디펜던트 관계의 주된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의존: 자신의 행복이나 자아 존중감을 상대방의 행동, 태도,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4).


2) 자신보다 타인의 필요를 우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합니다(3).


3) 경계선 부족: 자신과 타인의 경계선(boundary)이 불분명하여, 상대방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느끼고 책임지려 합니다(2).


4) 과도한 통제 욕구: 상대방의 삶이나 행동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할 수 있습니다(1).


5) 자아감 상실: 자신만의 목표나 관심사보다 상대방의 삶에 집중하게 되면서 정체성이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5).


나. 코디펜던트 관계의 원인


코디펜던트 관계는 주로 다음과 같은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정서적 학대나 방치(1).

부모의 중독 문제(3).

비 건강한 가족 문화(2).

낮은 자존감과 자기 사랑 부족(5).


다. 해결 방법


1) 자기 인식: 자신의 감정과 행동 패턴을 인식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4).

2) 심리 치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건강한 경계선 설정과 자존감 회복을 연습합니다(3).

3) 경계선 설정: 상대방과 자신 사이의 건강한 선을 설정하고 자신의 필요와 감정을 우선합니다(2).

4) 지원 그룹 참여: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서로 격려를 얻을 수 있는 그룹(CoDA, Co-dependents Anonymous) 참여(3).

5) 자기 돌봄 연습: 자신의 삶과 목표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연습을 합니다(1).


3. 참고문헌


1. Melody Beattie, Codependent No More: How to Stop Controlling Others and Start Caring for Yourself.

2.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 Co-dependency.

3. Co-Dependents Anonymous (CoDA), CoDA 공식 웹사이트.

4. Mental Health America, Codependency and Relationships.

5. John Bradshaw, Healing the Shame That Bind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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