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끄 라깡 세미나 XX Encore : 27
(5)-2. 아리스토텔레스와 프로이트 : 다른 만족
'현실(realite)은 주이상스의 구조로써 접근된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제시하는 공식입니다. 여기에 집중해보자면, 언어 외에 다른 구조이란 있을 수 없죠. 주이상스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말존재(l'etre parlant)에게 예비됩니다.
쾌락원칙을 고치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바입니다. 그가 이처럼 말한 것은 프로이트 이전에 이 주제를 논의했던 자들이 있었고, 이런 방식이야말로 프로이트에게 들릴 수 있었기 (이해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착되기도 쉽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프로이트의 결합은 이 포착(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전 이 논지를 좀 더 밀어붙여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있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출발하여 언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주이상스의 구조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제가 말한 바처럼 되려면 주이상스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현실(realite)은 주이상스의 구조로써 접근된다.' 이 문장이 곧 주이상스가 현실에 선행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프로이트는 어떤 점에서는 '발달'을 이야기하면서 (프로이트의 저서 <정신분석 강의>에서) 오해를 일으켰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하길 쾌락자아가 현실자아에 선행합니다. 이는 미끄러짐이자 발전이라 부르는 틀에 박힌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통제의 발달이라는 가설에 불과합니다. 아이는 현실자아, 빈약한 꼬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실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작은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오히려 우리가 아는 사람들, 성인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실재에 위협을 가하는 꿈에서 결코 깨어날 수 없다고 말할 때, 그들을 놀라게 하여 잠에서 깨어날 때조차 잠들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소위 말하는 발전을 느끼기 위해서는 읽고, 조금 존재하고, 보고, 정신분석에서 그 요소들을 갖는 것만으로충분합니다.
만약 이 과정의 순서 따위 말한다면, 이는 환상을 말하는 방식일겁니다. 저로서는 외부의 세계 따위는 없다는 감각을 지닌 아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흥분시키는 것을 쳐다보며, 그리고 세상에, 그는 아직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을 하는 바로 그 순간, 그 이전도 아니고 바로 그 순간에 억압이 있습니다. 쾌락자아의 순서는 아마도 최초의 것일 수 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분명 최초의 것이지만, 그것이 최초는 분명 아닙니다.
발달은 통제의 발달과 일치합니다. 여기서는 음악처럼 약간의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metre”(역자 주: 주인이라는 뜻의 maitre와 동음이의어)입니다. 나는 'metrise'(역자 주: 성숙함, 발달, 통제라는 뜻의 matrise와 동음이의어)에서 진보합니다. 나는 나 자신과 우주의 "“metre”입니다. 이것이 제가 아까 이야기했던 '설득된 사람'입니다. 우주는 하나의 수사적 꽃이며, 이 문학적 메아리가 아마도 자아 또한 수사적 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프로이트가 쾌락원칙(Lustprinzip)이라 부르는 것의 화분에서 자랍니다. 저는 그것을 '웅얼웅얼웅얼 (blablabla)'거리는 행위로부터 얻는 만족이라고 정의합니다.
제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할 때는 바로 이 사실을 말하는겁니다. 이제 저는 보다 확실하게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주 - 제가 특정 단어들, 특히 '전부'와 '일부'를 강조한 방식, 그리고 이 단어들이 남성과 여성 두 성에서 다르게 적용되는 방식을 통해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주란 말하기의 모든 것이 성공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서 윌리엄 제임스를 끌어들일까요? 무엇에 성공한단 말인가요?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여러분을 도달하게 했기를 바라는 지점에서, 저는 답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성관계를 실패하게 만드는, 그것도 남성적인 방식으로 실패하는 지점 말입니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비웃음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아무 반응도 없군요. 비웃음은 아마 이런 뜻이어야 할것입니다. - "아, 이제 잡혔군요, 성관계를 실패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군요.” 이것이 바로 결혼 축가의 음악이 조정되는 방식입니다. 결혼 축가, 그리고 듀엣 - 가지를 구별해야 합니다교차, 그리고 사랑의 편지, 이들은 성관계가 아닙니다. 그들은 성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맴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성적 방식으로 그 주위를 맴도는 방식이 있고, 또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다르게 지칭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올해 제가 탐구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성적인 방식으로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입니다. 이는 전부가 아닌 것에서 형성됩니다. 다만, 지금까지 많이 탐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부가 아닌 부분적 회전은 제게 조금 어렵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여러분을 조금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던 중,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밀라노까지 기차를 타고 가야했습니다. 하루 종일 걸리는 여정이었죠. 어쨌든 저는 밀라노에 갔습니다. 저도 제 위치에서 물러날 수 없는 사람이기에 그 자리에서 '정신분석의 윤리'를 끄집어 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영리했죠. 그들은 그걸 너무 잘 이해한 나머지, 그날 저녁에 바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라깡 박사에게는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이죠, 어쩌겠습니까. 성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여성해방운동(MLF) 회원 중 한 명이 제게 엄청 화나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세요. 제가 무슨 의미인지 설명 해드리겠습니다.’
이 성관계 문제에 대해 만약 분명해질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성들 측에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부가 아닌 것의 형성에서 길을 개척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올해 제가 다루는 진정한 주제이며, 이 '앙코르(Encore)'라는 제목 뒤에 숨어있는 의미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이를 통해 여성의 성에 대해 새로운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전부가 아닌 것(pas-tout)과 관련해 눈부신 증언이 하나 있습니다. 언어 속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미묘한 변화와 진동을 통해, 제가 여러분께 '우리의 여성 분석가 동료들, 여성의 성에 대해 그들이 우리에게.. 다 말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할 때, 전부가 아닌 것이 어떻게 의미가 바뀌는지를 보십시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여성의 성에 대한 문제를 한 걸음도 진전시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내부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며, 주이상스의 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