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중앙지(Zentralblatt für Psychoanalyse)」는 정신분석의 진보를 알리고 자체적으로도 짧은 기고문을 발표하는 과제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이미 인식된 것을 명확한 형태로 학습자에게 제시하고, 분석적 치료를 시작하는 초심자에게는 적절한 지침을 통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게 하는 과제 또한 충족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앞으로 이 잡지에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본질적이지 않은, 교설적 성격과 기술적 내용을 가진 글들도 함께 실릴 것이다.
오늘 내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꿈 해석의 기술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논하려는 것은 어떻게 꿈을 해석하고 그것을 활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오직 신경증 환자를 정신분석적으로 치료할 때, 꿈 해석의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이 경우 여러 방식이 가능하지만, 정신분석에서 기술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자명하지 않다. 좋은 길이 하나 이상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나쁜 길은 훨씬 많으며, 다양한 기법들을 비교해보는 일은 특정한 방법을 결정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계몽적이다.
꿈 해석을 출발점으로 하여 분석 치료에 들어온 이는, 꿈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고수하며, 환자가 들려주는 모든 꿈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해석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이 전혀 다른 상황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고, 그러한 의도를 끝까지 실행하려 하면 치료의 가장 긴급한 과제들과 충돌하게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예컨대 환자가 처음 보고한 꿈이, 그에게 최초의 해명을 제공하는 데 탁월하게 유용하다면, 곧이어 등장하는 꿈들은 지나치게 길거나 어두워서 하루의 제한된 분석 시간 안에 해석을 완결할 수 없게 된다. 만일 분석가가 이 해석 작업을 다음 날까지 이어가면, 그 사이에 환자는 새로운 꿈들을 보고하게 되고, 그 꿈들은 분석가가 앞선 꿈을 ‘완료’했다고 판단할 때까지 뒤로 밀려나야 한다.
때때로 꿈 산출이 매우 풍부한데다, 환자의 꿈 이해가 지나치게 지체될 경우, 분석가는 이와 같은 자료 제시 방식이 단지 저항(Widerstand)의 발현일 뿐이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즉, 치료가 제공된 재료를 소화해낼 수 없다는 경험에 저항이 기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치료는 상당히 ‘현재’로부터 뒤처지고, 환자의 ‘현실성’과의 접촉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기술적 난점에 맞서, 반드시 세워야 할 규칙은 다음과 같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환자의 현재 정신적 표면(psychische Oberfläche)을 파악하는 것이다. 즉, 현재 어떤 콤플렉스(Complexe)와 어떤 저항이 그에게서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의식적 반응이 그의 행동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치료적 목표는, 꿈 해석에 대한 흥미를 이유로 거의 결코 양보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규칙을 명심하면서 분석 속에서 꿈 해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대체로 이렇게 하면 된다. 꿈 해석은 매번 한 회기(약 한 시간)안에서 얻을 수 있는 해석의 성과에 만족하고, 꿈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서 손실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다음 날에는 꿈 해석을 당연히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환자에게서 다른 것이 전면으로 떠오르지 않았음을 확인한 경우에만 계속해야 한다. 따라서 “환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취하라”는 규칙에서, 꿈 해석이 중단되었다는 이유로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
앞선 꿈의 해석을 끝마치기 전에 새로운 꿈들이 나타난 경우에는, 이러한 최근의 산물에 주의를 돌리고, 이전 꿈들을 소홀히 했다는 데 대해 스스로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꿈이 지나치게 방대하고 장황하다면, 처음부터 완전한 해결을 포기해야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는 꿈 해석에 특별한 흥미를 드러내거나, 환자로 하여금 꿈을 가져오지 않으면 분석이 정지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저항이 꿈 산출 자체로 향하게 되어, 꿈의 고갈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오히려 분석받는 이는, 자신이 꿈을 보고하든 그렇지 않든, 그리고 그 꿈에 어느 정도 집중하든 상관없이, 분석은 언제나 그 자체를 지속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한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길러져야 한다.
이제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 만약 꿈 해석을 이처럼 방법적 제약속에서만 수행한다면, 무의식을 드러내는 데에 너무 많은 귀중한 자료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그 손실은 사안을 얕게 들여다본 경우에 비해 결코 크지 않다.
한편으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중증 신경증환자의 경우 산출되는 장황한 꿈은 원칙적으로 결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한 꿈은 종종 그 사례 전체의 병인적(material pathogen) 재료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는 아직 의사도 환자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른바 ‘프로그램 꿈(Programmträume)’, ‘전기적 꿈(biographische Träume)’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꿈은 때때로 신경증 전체의 내용을 꿈의 언어로 번역한 것에 상응하기도 한다.
이러한 꿈을 해석하려고 시도할 때는 아직 손대지 않은 모든 저항들이 작용하게 되고, 통찰은 곧 한계에 부딪힌다. 따라서 그러한 꿈의 완전한 해석은, 곧 전체 분석의 완결과 동일한 시점에 도달한다. 만약 이러한 꿈을 분석 초기에 기록했다면, 분석이 끝나는 시점, 즉 수개월 뒤에 가서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개별 증상 ― 이를테면 주요 증상(Hauptsymptom)― 을 이해하는 경우와 같다. 전체 분석은 바로 그 증상의 해명을 위해 봉사한다. 치료 과정에서 분석가는 차례로 어느 때는 이 부분, 어느 때는 저 부분의 의미를 포착해야 하고, 그렇게 모아진 여러 단편들을 종합해야만 한다.
따라서 분석 초기에 발생한 꿈에서도 이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해석 시도에서 당장은 병인적 욕망 충동(pathogene Wunschregung)의 단편 하나를 추측해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따라서, 꿈의 완전한 해석을 의도적으로 포기한다고 해서 도달 가능한 무언가를 실제로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오래된 꿈의 해석을 중단하고 보다 최근의 꿈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보통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우리는 꿈이 완전히 해석된 훌륭한 예들로부터, 같은 꿈 속에서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장면들이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것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한밤중에 일어난 여러 개의 꿈이, 동일한 내용을 서로 다른 표현 방식으로 드러내려는 시도일 뿐일 수도 있음을 배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 오늘 어떤 욕망충동(Wunschregung)이 꿈을 형성했다면, 그것이 이해되고 무의식(Unbewußte)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다른 꿈에서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꿈 해석을 완결하는 가장 좋은 길은, 종종 그 꿈을 잠시 버려두고 새로운 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꿈이 동일한 자료를, 아마도 더 다가가기 쉬운 형태로 다시 취급하기 때문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분석받는 자(der Analysierte)에게만이 아니라, 의사에게도 상당한 부담이다. 즉, 치료 과정에서 의식적인 목표 지향성을 포기하고, 언제나 우리에게 ‘우연적’으로 보이는 어떤 인도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단언할 수 있다. ― 자신이 세운 이론적 전제들을 실제로 신뢰하기로 결심하고, 무의식의 인도를 따라가며 그 연관성을 강제로 지배하지 않으려는 결단을 내릴 때마다, 그것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을.
따라서 나는 주장한다. 꿈 해석은 분석 치료에서 그 자체를 위한 기술로 수행되어서는 안 되며, 치료 수행 전반을 지배하는 기술적 규칙들에 종속되어야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달리 할 수도 있고, 이론적 관심을 따라 한 부분 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는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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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경우가 있다. ― 우리가 꿈 상징학(Traumsymbolik)에 대해 더 큰 신뢰를 갖게 되었고, 환자의 연상에 덜 의존하게 된 이후부터 나타난 경우이다. 특히 숙련된 꿈 해석자는, 환자가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드는 꿈 작업에 나설 필요 없이, 환자의 모든 꿈을 통찰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런 분석가에게는 꿈 해석과 치료 요구 사이의 모든 갈등이 사라진다. 그는 매번 꿈 해석을 철저히 활용하고, 환자의 꿈에서 추측한 모든 것을 환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그는 정규적인 방법과는 상당히 다르게 진행되는 치료 기법을 택한 셈이 되며, 나는 다른 맥락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제시할 것이다.
어쨌든 정신분석적 치료의 초심자에게는,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본보기로 삼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강력히 충고한다.
환자가 정신분석 치료 속에서 처음으로 보고하는 꿈들 ― 그 자신이 아직 꿈 번역(Übersetzung)의 기법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말하는 꿈들 ― 에 대해서는, 모든 분석가가 마치 우리가 가정한 그 ‘탁월한 꿈 해석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초기의 꿈들은 일종의 순진한(naiv)꿈들로서, 듣는 이에게 많은 것을 누설하며, 이 점에서 이른바 정상인의 꿈과 유사하다.
이제 문제가 생긴다. ― 의사는 환자의 꿈에서 자신이 읽어낸 모든 것을 곧바로 환자에게 번역해주어야 하는가? 그러나 이 질문은 여기서 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것은 분명히 더 포괄적인 문제, 즉 치료의 어느 단계에서, 그리고 어떤 속도로 환자를 그의 심리적 가림막 뒤에 숨겨져 있는 것들에 대하여 의사가 인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꿈 해석의 훈련을 통해 더 많이 배울수록, 그의 이후의 꿈들은 더욱 어두워진다. 꿈에 관한 모든 습득된 지식은 꿈 형성 자체에 있어서도 하나의 경고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제 꿈에 관한 이른바 ‘과학적’ 저작들 ― 꿈 해석을 거부하면서도 정신분석 덕분에 새로운 자극을 받은 저작들 ― 을 살펴보면, 언제나 쓸데없이 지나친 주의를 꿈의 텍스트 보존에 기울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꿈의 텍스트는 반드시 다음 날 시간의 왜곡과 소모로부터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정신분석가들조차, 꿈 형성의 조건들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충분히 일관성 있게 활용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환자에게 깨어나자마자 즉시 모든 꿈을 글로 기록하도록 지시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치료에 있어 불필요하다. 오히려 환자들은 이 지시를 기꺼이 이용하여, 잠을 방해하고, 실제로는 무익한 곳에 큰 열정을 쏟는 경우가 많다. 즉, 이런 방식으로 힘들게 꿈의 텍스트 하나를 보존해냈다고 하더라도, 그 텍스트가 망각 속에 사라졌을 경우와 다르지 않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텍스트에 연상(Einfälle)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과는 결국 그 꿈이 보존되지 않았을 때와 동일하다.
물론 의사는 한 경우에는 알 수 있었던 것을, 다른 경우에는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가 아는 것과 환자가 아는 것은 같지 않다. 정신분석 기술에 있어서 이 차이가 가지는 의미는, 다른 기회에 우리가 별도로 다루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오직 정신분석적 치료 속에서만 그 조건에 따라 발생할 수 있으며, 초심자를 당혹스럽게 하거나 오해에 빠뜨릴 수 있는 한 특별한 유형의 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소위 지체된(nachhinkend), 혹은 확인적(bestätigend) 꿈들이다. 이러한 꿈들은 해석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번역의 결과로는 단지 지난 며칠 동안 치료가 낮의 연상(Material der Tageseinfälle)으로부터 추론해낸 것과 동일한 것을 보여줄 뿐이다.
이 경우, 마치 환자가 친절하게도, 바로 직전에 의사가 그에게 “암시(suggeriert)”해 준 것을 꿈의 형식으로 다시 표현해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숙련된 분석가는 환자에게 이런 친절을 곧이곧대로 돌릴 수는 없다. 그는 이런 꿈들을 소망된 확정성으로 받아들이며, 그것들이 다만 치료 과정에서의 일정한 영향 조건 하에서만 관찰된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수의 꿈들은 치료에 앞서 나아가며, 그 결과 이미 알려지고 이해된 것을 제하고 나면, 그 속에서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무언가에 대한 다소 분명한 암시가 드러난다.
「정신분석 중앙지(Zentralblatt für Psychoanalyse)」 제2권 제3호, 1911, 쪽 109–113.— 『저작집(Gesammelte Werke)』 제8권, 쪽 350–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