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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라깡 세미나 XX Encore : 9

그의 시론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어의 정의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만약 프로이트에 의해 새롭게 전복되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확증된다면, 야콥슨이 그의 업적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단어들로 대체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것들 랑기스트리(La Linguisterie , 역자 주 : 'linguisterie'는 라캉이 언어학을 의미하는 linguiste를 변용해 만든 단어입니다. 언어를 놀이처럼 다루거나, 말장난을 포함하는 방식을 가리키며, 직접적인 의미를 가리거나 여러 해석 층을 만들 수 있는 언어적 기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나는 너무나 많은 언어학자로부터 여러 번 항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야콥슨은 아니었지만요. 하지만 이건 그가 나를 친밀히 여긴다는 표현의 방식에 불과합니다.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나의 말은 언어학이 아닙니다. 이는 비주기적으로 출판되며 유명한 나의 잡지인"L'Etourdit"(1972년, 라캉 나이 71세에, 세미나 19 Ou pire 다음으로 출간된 글)에 다음 호로 게재될 텍스트에서 논평된 내용을 보게 될 가능성입니다. 다시 말해, 작년에 내가 칠판에 몇 번이나 아무런 전개도 하지 않은 채 썼던 이 문장, '우리가 말하는 것은 들리는 것 뒤에 숨겨진 채로 남아 있습니다'에 대한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말이 결정되는 것은 말해진 것의 결과에 달려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구와 마찬가지로 포위 공격이나 포격을 당하는 순간부터 말로써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년에 다룬 랭보의  시 <하나의 이유 À une Raison>가 있는데, 각 구절을 끝내는 '새로운 사랑'이라는 문장이 구두점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자주 : 아르튀르 랭보는 1854년생 프랑스 시인으로, 라깡이 언급한 작품 <하나의 이유 À une Raison>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드럼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면 모든 소리가 방출되고 새로운 하모니가 시작됩니다.
당신으로부터 한 걸음은 새로운 사람들의 부상과 그들의 행진입니다.

당신의 머리는 돌아갑니다: 새로운 사랑!
당신의 머리가 돌아갑니다 - 새로운 사랑!

“시간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제비를 바꾸고, 재앙을 체로 치십시오.” 이 아이들은 여러분에게 노래합니다. “우리의 행운과 소원의 실체를 어디든 올려주세요”라고 간청합니다.

어디든 갈, 영원의 도착.

지난번에 사랑에 대해서 얘기했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이 수준에서, 언어학에서 '랑기스트리 linguisterie'으로의 거리를 표시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다루면 어떨까요? 이 텍스트에서 사랑은 이성의 변화를 나타내는 표시이며, 이것이 바로 시인이 이 '이유'를 언급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유를 바꾸는데, 다시 말해 담화를 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구별한 네 가지 담론을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네 공간에서 표현되는, 이 정신분석적 담화에 기초한 네 가지 담화만이 있는데, 각각은 어떤 기표 효과를 취하며, 나는 이 배치에서 마지막에 위치합니다. (역자 주 : 네 가지 담화를 역사적 순서에 따라 배치하면 (결국 순환하는 구조이지만) 다음과 같다 : 주인담화 - 대학담화 - 히스테리담화 - 분석가 담화) 이는 결코 일련의 역사적 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오래 존재해 왔다는 것이 여기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이 정신분석적 담화 내에서 한 담화에서 다른 담화로 넘어가는 각 구절마다 항상 어떤 출현이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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