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을 꺼놓고 잠에 들었지만 생각보다 이른 9시에 눈이 떠진다. 운동을 하는 날은 비교적 여유롭지만 그렇다고 아예 긴장의 끈을 놓을 정도는 아니다. 오늘 주어진 일들을 끝내지 못하면 다음 날 스케줄이 답이 없어지니까. 어제 다녀온 치바 현 에가와 해변 사진들을 작업해야 해서 본능적으로 눈이 떠진 게 아닐까 하는 게 나의 추측이다. 지금 축적된 피로의 양이라면 11시 까지는 기절해 있어야 했던 게 정상이다.
이불 개고, 창문 열고, 맥북 뚜껑을 연다. 30장 정도의 사진이 오늘 할당된 작업량이다. 촬영날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나의 작업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어제의 기록 같은 경우는 조금의 조정과 본능(?)에 맡기는 식으로 진행한다.(‘대충 한다’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이다.) 조금 자극적인 사진 몇 장 얻어낸 게 전부고, 나머지는 진부한데 멋지지도 않다. 그렇게 걸어 다녔는데 매우 아쉽군.
점심 먹기 전에 작업을 끝낸다. 좋은 흐름은 아니다. 그만큼 결과물들이 스스로 봤을 때 오래 머물지 않는 수준이라는 거니까. 점심 챙겨 먹고, 방을 나서기 전에 소화시킬 겸 1시간 동안 다시 들여다봐도 영 아니다.
쳐진 몸을 이끌고 체육관을 향해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도전적이지만, 와중에 끝나고 저녁에 시부야에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아쉬우니까 계속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고 그래야만 ‘노력했다.’라고 남들한테 언질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계속 왔다 갔다 하지만 일단은 운동에 집중하기로 한다.
어영부영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말 그대로 ‘적당히’ 운동을 마치고 샤워실에 비치된 온탕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이 맛에 계속 출석한다. 속이 더부룩해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몇 차례 한다. 옛날부터 행해왔던 자가 컨디션(?) 테스트가 있는데 그게 바로 숨 참기다. 안 좋으면 20초도 버겁지만, 관리가 잘 된 상태일 때는 1분 정도야 가뿐하다. 조금 밀어붙혀서 1분 15초까지 버텨낸다. 육체보다 정신이 더 지쳐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밖으로 나왔는데 빛이 예술이다. 어제도 좋았지만 지금 이 시간 또한 죽여준다. 속은 편하고 몸도 나른하다. 시부야? 정말 고민 많이 하지만 내일의 요코스카 투어를 위해 몸을 아끼기로 한다. 이렇게 결정해도 마음이 온전히 편치 않은 게 스스로도 속상하지만 또 이러다 좋은 사진 찍으면 며칠은 도파민에 절여진 상태로 지내게 되므로 계속 다음을 희망하게 된다.
바로 앞의 이야기도 기억 못 한다고, 5월의 마츠리만 보고 넘어온 건데 욕심이 끝이 없어서 자꾸만 더 갈구한다. 근데 또 아예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쁘지만은 않은’ 이 상황이 더 사람 미치게 만든다. 캘거리 때는 몸이 거칠었는데 현재는 마음이 거칠다.
30대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의 가장 큰 강점이 이럴 때 발현된다. 전보다 긍정 / 부정의 균형을 빠르게 잘 되돌려 놓는 것 같은.. 뭐 그런. ‘성격’ 과는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들면 미친개처럼 주체 못 하고 달려드는 건 똑같으니까. 요즘 자주 이런 일을 겪지만 많은 현대인들이 시달리는 문제로 여긴다. 일찍 자야 하니까 저녁은 가볍게 먹는 걸로 한다. 비슷한 메뉴들 사이에서 색다른 조합을 찾아보기로 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