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2일

by 이승윤





카마쿠라로 떠난다. 몇 번 더 갈 일이 있을 것 같아 마음은 다른 때보다 여유롭지만 걸음의 속도는 그것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또다시 겪는 지옥철.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질 수가 없다. 아주 가끔 겪는 ‘이벤트’ 로서 이 상황을 마주하는 것에 대해 내 인생이 참 감사하게 여겨지면서도, 불안한 감정 또한 공존한다.



네모칸 안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좌측에서 한 사람이 넘어진다. 이 장면이 소름 돋았던 이유는 2가지인데, 하나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모션과 템포가 드라마 씬에서 보는 것과 매우 똑같아서(처음에는 발목을 삐어서 못 일어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정말 그 누구도 도움의 제스처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가야 정체되지 않고 흐름이 원활히 돌아갔을 것 같다. 그러니 그냥 나의 헤픈 여유 속 오지랖이라고 매듭을 짓는다.



카마쿠라 역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에노시마 역에서 내린 데에는 사람들의 조언이 큰 지분을 차지한다. 중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산속에 자리 잡은 마을을 따라 걷지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는 못한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원래 계획을 바꿔 아예 반대 방향으로 가 본다. 거리가 꽤 돼서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뭔 놈의 바람이 미쳐 날뛰는 수준이다. 해안가 옆으로 나 있는 보행로를 따라 걸어가는 중에 바람 타고 날리는 모래가 노출된 피부를 채찍질하듯 스쳐간다. 보이지 않게 닿아 손과 카메라를 엉망으로 만드는 바닷물까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지만 이럴 때 좋은 사진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기에 힘겹게 뚫고 간다. 8km 정도 되는 이 길을 전부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놀랍게도 이 날 가장 마음에 드는 컷은 이 구간에서 탄생한다. 빛마저 강한 편이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다.



누구한테는 지옥이지만 서퍼들한테는 나름 괜찮은 조건인 듯. 파도와 하나 되려는 무리와 요트의 실루엣들이 중간중간 보인다. 여기 자전거들 대부분에는 옆에 서핑보드를 거치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가, 길도 좁은데 실수로라도 사람을 안 건드리려고 더더욱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는 듯한 느낌이 은연중으로 닿는다.



끝까지 가 보았지만 꽝. 그래도 시도하지 않아 남을 뻔한 후회는 없으니 나쁘지 않은 교환이다. “다음에는 바로 카마쿠라 역으로 가야지” 하며 가까운 역으로. 마을길을 조금 훑고 다시 해안가 쪽으로 나오니 그 유명한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의 모티브가 된 곳이 나온다. 날씨가 해괴망측한데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기서 시간을 쏟기 싫어 5분도 안 되어 벗어난다. 인터넷에 좋은 사진들이 널려 있을 테니 나는 그것으로 대리만족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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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것들이 뒤섞여 찝찝함을 만들어 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6시 전후로 나타난 거뭇거뭇한 모래사장에 제대로 빠져들고 만다. 사람들도 거의 없고 어업용 통통배들과 그물들이 널려있는 이곳이 시각적으로 조금 정신없지만 놓치고 싶지 않다. 화이트 픽셀을 전부 살려내지 못할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알맞은 듯한 조금 어두운 노출을 택한다.



쓸쓸하면서도 따뜻하다.



더하는 것보다 빼는 걸 어려워하고 있는 현재의 나를 보면 그래도 과거보다 조금은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해변가는 그런 면에서 훌륭한 선생님 중 하나다. 마지막 컷은 완벽한 피날레를 장식한다.



다행히도 열차에 올라타자마자 자리를 잡는다. 가장 좋아하는 끄트머리. 환승 없이 1시간 반 정도 앉아있기만 하면 돼서 눈 감고 간다. 바람을 맞는 건 항상 고된 일이다. 정말 ‘파도'와도 같은 하루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