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일자별로 저장해 놓은 사진들을 쭉 훑어봤다. 볼륨과 퀄리티 모두 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이 덕분에 성난 마음이 이전보다 많이 가라앉았지만 한 달이라는 기간은 통째로 날려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양이므로 긴장감만큼은 늦추지 않기로 다짐한다. 아직도 갈 곳이 더 남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계속 걷기로. 슬그머니 떠오르는 그의 말이 나 자신을 스스로 조금 더 보듬게 만들어 준다. “아주 작은 한 스텝,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하늘에 기도를 올린다.”
쿠니타치 역으로 가는 여정이 순탄치 않다. 마지막 환승노선은 처음 타는 라인인데 들리는 역들이 전부 큼지막해서 그런가, 놀러 가는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그들의 종착지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리는 곳은 아니다.
열차 딜레이로 인해서 30분 정도 늦게 도착하니 딱 점심시간이다. 근처에서 대충 해결하면서 4월 일본 광고 아카이빙 영상을 본다.(어플은 지웠지만 구글로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는 기행(?)을 저지른다. 그래도 이전보다 시청시간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일본 생활 내내 시간 관리에 있어서 꽤나 도움이 됐다.) 무인양품과 유니클로 티셔츠 광고를 비교하는 재미도 좋았지만 끄트머리에 나온 포카리스웨트 새 광고가 모든 이목을 사로잡는다. 농담이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눈가에 수분이 나도 모르게 조금 맺혔다. 이들의 퀄리티와 끝이 없는 아이디어는 나에게 있어 부러움을 넘어 이미 동경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최고 25도까지 올라가는 날을 맞이하지만 행동하는 데 있어 불편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역 앞으로 길이 세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일단 좌측으로 먼저 가본다. 음. 역시나 지루하군. 1시간 반 정도 빙빙 돌지만 카메라를 손에 쥐게 만드는 그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선택지로 철로가 놓인 옆 길을 따라 계속 움직여 본다. 인적도, 차량도 드물어서 지금 기분에는 딱 좋은 코스다. 그렇게 15분 정도 걷다가 작은 연결로 앞에 멈춰서 사진 한 장 찍는다. 딱 한 장만. 장면 보다 분위기가 좋아서 찍게 됐다. 공교롭게도 메인 피사체가 STOP 표지판이다. 과다한 의미부여일까, 아니면 하늘의 메시지일까?
상점가를 헤쳐나간다. 나와 반대편 인도에 있는 백인 아저씨 둘만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구름이 해를 가림과 동시에 바람이 강하게 일어난다. 반팔 / 반바지 차림이지만 쌀쌀한 느낌은커녕 볕에 알맞게 구워진 피부 표면들은 좋아라 하며 반긴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1시간 정도 후에는 완전히 어둑해질 기세라 딱 한 정거장까지의 거리만 더 가서 열차를 타기로 한다.
역에 닿기 직전에 오늘의 마지막 사진을 기록한다. 카와고에 여행 때 완벽하게 실패했었는데, 오늘의 것은 어쩌면 그때보다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짜릿한 기분이 드는 사진을 찍지 못한 날에는 항상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시간이 가혹할 정도로 힘들다. 미친 듯한 짜증과 그에 반대되는 낙관이 서로 엉키면 표정 관리마저 쉽지 않다. 매일 기적이 일어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언제 인정하고 수긍하게 되는 수준까지 도달할 지. 내일은 하루 종일 바쁜 날이 될 것이다. 이 여정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