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6일

by 이승윤




늦게 잠에 들어서 오전 10시에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7시 반에 불쑥 깨어난다. 피로감이 상당해서 억지로라도 계속 다시 잠에 들려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 캐나다에서 넘어온 동생을 만나러 나가기 전까지 어제 찍은 사진 작업을 하기로 하며 책상에 앉는다.



당시 상황에서의 심정과는 반대로 생각보다 괜찮은 사진들이 아주 많이 펼쳐져 있다. 이 덕에 지친 몸과는 별개로 집중력은 상당하다. 2시간 동안 3분의 1의 분량을 끝내고 만족감과 안도감 모두를 챙긴 채 옷을 갈아입는다.



비가 많이 오지만 새로 산 우산은 상당히 튼튼하다. 짧은 거리를 걸어 지하철을 타고 긴자 역으로. 짧다면 짧은 2주라는 기간 동안 도쿄에 머물고 있는 동생은 쇼핑하느라 바쁘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많이 늦었지만 충분히 이해하기에 눈감아준다.



놀랍게도 우리는 1년도 안 되어서, 그것도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재회한다. 손짓도, 악수도 아니고 포옹으로 시작하는 이 관계가 나는 내심 그리웠던 듯. 그의 한국어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발전을 이룬 듯하다. 근처에서 점심을 후딱 해결하고 카구라자카에 가서 커피타임을 가진다. 급하게 찾은 장소였지만 우리가 기대하던 아주 이상적인 '로컬 플레이스’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는 들뜬 표정으로 새로 산 중고 라이카가 잘 작동한다고 이야기한다. 매물을 내가 확인하고 연락을 한 거라 내심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한숨 돌린다. 여러 친구들과 함께 만든 인쇄물들을 같이 확인하며 떠들다보니 1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8시 전까지 픽업해야 할 물건이 있어 긴자로 돌아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 내친김에 시모키타자와 까지 넘어간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이곳에. 그때도, 오늘도 날씨는 동일하다. 우산을 쓴 채로 구석구석 돌아보고 나서 이른 저녁으로 피자를 먹기로 한다. 도쿄 생활 처음으로 한국어를 하는 점원을 만난다. 부산에서 2년 동안 일을 했다면서 주문하는 데 계속 도움을 주는데, 여기서 오는 심리적 편안함이 굉장하다. 일본 어디에서 먹어도 피자는 실패한 적이 없는데 이 집은 장작불 화덕 피자를 제공하니 걱정할 필요가 일절 없다. 결과는 예상대로 대성공이다.



제시간에 물건까지 찾고 나서도 무언가 부족하다 느낀 장정 둘은 야키토리 거리를 거닌다. 그중에서 맛집 인증 스티커와 함께 가격이 꽤 나가 보이는 모양의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약간 머뭇거리지만 형 믿고 들어가자고 동생을 밀어붙인다. 메뉴는 오마카세. 시작은 삿포로 쿠로 라벨 맥주로.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엉덩이살과 미트볼이 나온다. 맥주부터 이미 말이 안 되는데 불향 입은 꼬치들도 환상적이다. 그의 표정 또한 제대로다.



안 그런 사람 어디 있겠냐만 술이 들어가니 개인적인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꿈’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는 동생. 하지만 나는 쉽게 대답을 내지 못한다. 혹시라도 신중한 선택이 충동으로 변질될까 봐. 나의 솔직한 마음과 이야기를 건네준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안정적인 배경과 함께 어마어마한 운이 따라서 가능한 것이라고. 노력을 감추지는 않지만 그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 또한 전부 운에서 오는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고. 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으니 조금 더 기다려도 괜찮지 않을까 와 같은, 결국은 시답잖은 문장들로 회피하지만 마음만은 전달됐기를 조심히 바랄 뿐이다.



흩날리는 물방울들과 함께 가까운 역으로. 적당한 시간에 적당히 마무리하기로 한다. 어차피 내일모레 또 볼 건데. 시작과 끝이 모두 짧은 Hug. 참 진득한 이 인연이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



또다시 달아오른 얼굴을 달고 집으로 돌아간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