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5일

by 이승윤





다시 혼자가 되었다고 해서 감정적인 변화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는다. 짧은 휴가 후에 다시 일터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복에 겨운 소리를 해 본다.



몸과 마음 모두 약간 나른한 느낌으로 가볍게 걷는다. 이제 나의 리스트에 저장된 곳이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상당한 만족 수치에 도달한 지 오래여서 나태함이라는 거품이 조금 껴 있지만 2주라는 기간은 또 다른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내기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이걸 잘 알고 있기에 이전에 가본 곳이었다 할지라도 계속 시도해 보기로 한다. 감정 시소의 오르내림은 카메라를 들고나가는 날에 항상 벌어지지만 지금의 경우가 아주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강제된 압박감이 아닌, 과거의 치열했던 분투가 끝난 뒤에 찾아온 평안한 행위 중 하나로써 작용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집 근처 카메이도 역 주변으로 먼저 갔는데 빛이 강해서 출국 직전 저녁시간에 다시 와 보기로 한다. 괜찮은 장면들이 몇 개 있어서 놓치고 싶지 않다. 이어서 지하철을 타고 정말 오랜만에 키치죠지에 도달했지만 이곳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다시 무대뽀 전진. 흐르는 대로 가 본다. 내일부터 주말 내내 마츠리 행사를 가야 해서 발을 아끼려 했지만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점이 하나 있다. 4월 말부터 체감하고 있는 건데, 도쿄 내 아무 지하철역에 내려서 움직여도 계속 걷다 보면 이전에 보았던 장소들을 꼭 한두 번씩은 마주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새로운 것을 찾는 게 더 어려운 수준이다. 진짜 많이 움직이긴 했나 보다.



5시와 6시 사이에 포착한 기록 몇 개가 오늘의 전부지만 이전 사진들과 일련의 연결점이 있어서 좋아 보인다. 이런 사진들 속에서 살리고 싶은 강한 느낌이 있는데 쉽지가 않아 계속 시도하는 중이다. 해가 다 떨어진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간다. 대어가 없어 아쉽지만 이미 마운드에서 내려왔으니 다음을 기약하며 애써 마음을 청소한다.



시부야에서 갈아타고 자리에 앉았는데 내 앞에 나랑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만난다. 서로가 신기한 지 흘끗흘끗 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바로 회피하는 게 여간 웃긴 일이 아니다. 당신도 피부가 상당히 거뭇거뭇한 걸 보니 바깥일을 많이 하나 보구려.



저녁거리와 함께 집으로 들어선다. 주방에서 예고르를 마주친다. 그새 많이 친해지긴 했는데 오늘따라 행동이 조금 다르다. 그냥 착각인가 싶었으나 방에 들어온 직후에 문을 노크하는 그. 갑자기 자기한테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한테 들었냐라고 물어본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니 담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낸다. 알바하는 곳 근처에 자전거를 세웠는데 일이 잘못돼서 벌금도 내고 옮겨진 자전거를 찾으러 갔다 오느라 힘들었단다. 둘 다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은 최대한 들어주고 위로해 주려 노력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의 편에 조금 서 주는 게 심적으로는 도움이 될 테지. 노리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들어줘서 고맙다며 아사히 캔 맥주를 하나 넘겨준다. 전우끼리 이 정도야 뭐.



그 한 모금 덕분에 힘이 풀린다. 요즘 잠을 푹 자서 너무 좋은데 오늘은 더더욱 깊게 들어갈 것 같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