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0일

by 이승윤




어제 시부야에 갔다 오고 나서 확실하게 못 박았다. 이번 여정에서 더 이상의 도심지 진입은 없을 것이다. 더 들어갔다가는 정말 정신병 걸린 채로 귀국할 것 같아서.



이런 연유를 포함해 여러 요인들이 뒤섞여 다시 바깥으로 탈출한다. 지불하는 요금과 거리는 카마쿠라에 갈 때와 비슷하다. 30도까지 올라가는 날이어서 구름이 끼는 내일로 미룰까 고민했지만 결국에는 그냥 Go. 남은 일정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진행될 것 같다.



노선의 마지막 역이어서 승객들이 전부 내리는데 그중 젊은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화요일이어서 관광객들마저 씨가 마른 듯. 애써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만 내가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어느 정도 수요가 있는 동네다. 5분도 안 되어서 높은 습도에 피부가 반들반들해진다. 역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별 수가 없어 편의점에서 점심거리를 사 들고 다리 건너 숲 속 공원으로 들어선다.



공원 전체를 나 혼자 전세 낸 듯 조용하다. 바람에 치이는 풀소리만 가득하다. 산책로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지만 강물이 흐르는 곳에는 낚시꾼들과 물놀이하는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그늘이 잘 드는 벤치에 앉는다. 음식 냄새와 인기척에 온갖 벌레들이 달려들지만 그들의 영역에 들어왔으니 내가 감내해야지.



매일 무언가를 찾기 위해 움직이지만 오늘은 조금 게으르고 싶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빛도 강하고, 너무 더워서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누그러질 때까지 이 동네에 눌러앉아 있기로 한다. 너무 일찍 왔나 싶기도 하지만 늦게 와서 허둥지둥 대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



2시간 동안 이 작은 터에서 산책하고 쉬는 것을 반복한다. 몸과 머리가 본능적으로 만들어 낸 힐링 프로세스가 아닐지? 잠을 설쳤는데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이 1도 느껴지지 않았던 걸 보면 분명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자, 다시 이곳을 벗어나 빛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자. 생수 한 통 들고 여기저기 들쑤신다. 하지만 여긴 정말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내가 도출해 낸 결괏값 안에서는 그렇다.



오늘도 이렇게 끝인가. 작은 마트 옆에 붙은 맥도날드에 들어가 셰이크 하나를 받아가지고 테이블에 앉는다. 오늘따라 유독 더 아쉬워서 8시 넘어 열차에 올라타기로 한다. 6시가 약간 지나 다시 거리로 나오니 해가 산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일단은 역 근처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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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호하는 빛의 질감보다는 약간 밝았지만(여기서 30분 뒤가 딱 내가 좋아하는 빛이다.) 5분 정도 걷다 찾아낸 이 장면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하루 종일 기다린 보람이 있었군. 바로 카메라 꺼내서 찍는다. 계속 무언가 나올 것 같아서 조금 심박수가 올라간다. 인공조명들이 주연이 될 때까지 총 6장 정도 담아냈는데 모두 마음에 든다. 진심으로. 7시가 넘어서부터는 완전히 어둑해졌지만 흥에 겨워 8시 이후로도 계속 인도 위에 올라타 있는다.



진짜 별거 아닌 사진들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기록 방식 아니었던가. 캐나다를 잊지 못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네. 도심지에서의 작품들을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선호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니까.



열차 시간이 남아서 화장실을 먼저 들른다. 용모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무릎도 아프다. 그래도 오늘은 정말 괜찮은 하루였어. 아니 어쩌면, 여정의 마지막 페이지가 될 수도 있겠지.



내가 머릿속에 구체화하고 있는 마지막 한 조각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지만, 그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크게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대로 책이 덮여도 충분히 만족한다. 그래도 미래가 궁금하니 한 번 끝까지 가보자고.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