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8일

by 이승윤




점심을 먹으면서 하루 계획을 통째로 변경한다. 날씨가 너무나 좋다. 돌아가기 전에 일몰을 꼭 보고 싶은데 오늘을 놓치면 장담할 수 없다는 듯이 일기예보가 말하고 있다. 운동은 연이틀 하면 되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1차로 오버된 예산은 덕분에 한번 더 급하게 충전된다. 도쿄 안에서도 수많은 명소들이 있지만 나의 머리는 오다이바 공원만을 떠올리고 있다. 꼬불꼬불 갈아타는데 비용 또한 꽤나 비싸다.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이전에 방문했던 갤러리도 들렀다 가자.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사진집도 하나 살 겸 해서.



적어도 80대 중반은 되어 보이셨던 할머니가 흰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마치 처음 그런 생물을 마주한 듯한 리액션을 목격했을 때 한 번, 좌측에 있는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우측의 공장 안으로 작업하러 가는 사람 중간을 가르면서 걸을 때 한 번, 그리고 오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휠체어를 탄 어르신과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교차되는 걸 뒤에서 바라보는 것까지. 이곳 생활을 하면서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경험은 이렇게 세 가지다.



여기도 오자마자 다 기억이 살아나네. 악기 상점들이 유독 많았었더랬지. 이 내리막길에서 한 사람이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나는 조금 더 가서 한 장 기록했었던 모습까지. 갤러리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는데 오늘은 사모님이 안 계시고 사장님이 반겨주신다. 정말 오랜만에 타인의 눈동자를 보고 압도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두 분 모두 영어가 수준급이셔서 소통은 어렵지 않다. 책만 사서 바로 나올 줄 알았는데 1시간 정도 떠든다. 20년 넘게 운영하신 선생님의 조언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익히 들어온 것들과 비슷하지만 항상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건강 챙기면서 버티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운동을 한다. 하지만 포기하면 끝이다.’ ‘열심히 해라’ ‘너의 것을 찾아라’ ‘자신감은 스스로 만드는 거다. 나는 내가 만든 책들에 자신이 있다.’ 등…



금요일에 전시 오프닝이 있으니 시간 되면 오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헤어진다. 결국 나는 떠나기 직전까지 알차게 보내다 가는구나.



없었던 계획에 말을 많이 한 것까지 더해져서 목이 탄다. 오다이바 역에 내리자마자 스타벅스로. 30분 정도 앉아서 사진집을 본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1차 완독 했지만 다음번에는 아무 감정 없이 한 번 봐야겠다. 철저하게 배운 사람이 유하게 찍은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완벽하게 계산한 느낌이 드네. 물론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다.



5시 조금 넘어서 해변 앞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조금 떨어진, 나무로 우거진 장소까지 걸어가 본다. 인적 드물고, 대교가 앞에서 보이고, 벤치까지 있으니 완벽하다. 구름이 많이 껴서 꿈같은 일몰은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다.



음악을 들으면서 마저 감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눈물을 한바탕 쏟아낼 줄 알았다. 그런데 눈물은커녕 조그마한 이슬도 안 맺힌다. 내가 그만큼 노력을 안 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왜 시원섭섭한 감정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더 드는 거지? 남들에겐 별 것 아닌 5년 차의 역경을 잘 헤쳐 나와서 그런가? 정말 1도 모르겠다.



방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냥 기분이 좋다. 귀국행 비행기를 웃으면서 탈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정말 다행인 일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