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4일

by 이승윤






분명 눈을 여러 번 깜빡거려 천장을 쳐다본 기억은 나는데 어떻게 지금 시간이 10시가 되어있는지는 통 알 방법이 없다. 어젯밤 했던 다짐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그로 인해 더 침대를 벗어나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약간의 죄책감이 계속 몸을 쿡쿡 찔러 대안을 찾아보게 만든다.



집 근처에 저장해 놓은 두 개의 포인트가 보인다. 그런데 이걸 왜 표시해 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뚜렷한 이름도 없어서 그냥 가보기로 한다.



바람이 약간 강하지만 그런대로 좋은 날씨다. 옷차림이 약간 두꺼운가 싶음에도 일단 후드티 소매만 위로 걷어올린다. 1km 남짓 떨어진 곳에 도착했는데 평범한 골목과 주택들 뿐이다. 잘못 저장했을 리는 없어 사방을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찝찝하지만 일단 큰 길가로 나가 다음 장소를 찾아보기로 한다.



좌회전을 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담벼락이 분명 낯익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본 그 장면이다. 이른 새벽마다 어르신이 바닥을 쓸었던 곳인걸 인지하자마자 다른 골목들을 샅샅이 뒤진다. 스카이트리가 정면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골목의 왼쪽 편. 그렇게 나는 히라야마의 집을 마주한다.



옛날의 나였다면 즉시 두어 장 찍고 이동했겠지만, 2025년 3월의 나는 지금의 빛이 너무나 눈에 거슬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까탈스러워진 면도 있겠지만 일본에 오기 전에 읽었던 필립 퍼키스 교수님의 책들 덕분일지도. 어차피 저녁에 식사 약속이 잡혀있어 멀리 가지 못하니 이따가 다시 오기로 하고서 다음 타깃으로. 이쯤 되니까 여기도 어딘 지 대충 유추가 가능하다.



너무 일러 셔터는 내려가 있지만 그려진 그림이 귀여워 목욕탕은 이 시간에 기록한다. 이 나라는 이상하리만치 평면들이 틀어져있어서 고정적인 사진을 하나 찍는데도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된다. 그 덕에 뷰파인더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대로 끝내긴 아쉬워 자율주행 모드로 돌입한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 지역에는 무엇이 있을까? 햇살은 따갑지만 캘거리만큼은 아니다. 미로 같은 주거지역을 뚫고 가다 보니 한 기찻길이 잠시 나를 가로막는다. 진짜 뻔하디 뻔한 풍경인데 본능적으로 카메라 전원을 켠다. 프레임 안에 인물 하나 없는 이 분위기가 진국이다. 그래서 또 한 장.



1.jpg




철로를 건넌 뒤부터는 양 옆으로 작은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다. 근래들어 많이 익숙해졌지만 조금 전 사진의 영향인 지 유독 이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집중력이 올라온다. 결국 마음에 드는 위치를 찾아내 20분가량 그곳에서만 서성인다. 오랜만에 초점도 수동으로 맞춘다. 결과물들은 아주 근사하다.



어제저녁 과식을 한 탓에 1시가 넘어서야 배가 슬슬 고파온다. 수 차례 들어본 모스버거를 처음 맞이하기 위해 걸어가던 중에 한 중식당 앞에 잠시 정차한다. 메뉴도 다양한데 가격이 말이 안 된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손짓으로 모든 걸 알아채고 한 테이블에 착석. QR코드로 주문해야 하는데 일본어/중국어만 지원해서 바깥에서 찍은 스크린샷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낌새를 보아하니 서빙하시는 분도 중국분이신 듯. 뭐 어쨌거나 식사는 오더대로 나왔고 200% 만족한 채로 마무리한다.



강을 낀 공원을 발견한다. 벚꽃들이 만개한 채로 놓여 있다. 금요일 오후임에도 한산하다.



시간이 너무 남아서 다시 방으로. 1시간 반 정도 어제오늘 찍은 사진들을 작업하고 나서 그의 집을 재방문한다. 빛은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져서 피사체들이 안정적인 밝기로 반사하고 있다.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카메라로 촬영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 또한 기록한다.



마지막 신호등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수많은 자전거들과 함께. 또 하나의 금요일이 저물어 간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