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자마자 센소지로 간다. 지하철 타고 가나, 걸어서 가나 시간 차이가 10분 밖에 안 나서 날씨도 괜찮은 김에 뚜벅뚜벅.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나왔을 뿐인데도 거리가 제법 한산하다.
맑음과 흐림을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바람의 세기는 변하지 않는다. 언제 마주쳐도 적응이 안 된다. 어제는 너무 껴입어서, 오늘은 너무 덜 입어서 고생이다.
사방으로 형성된 기다란 노점 구간을 잠깐 둘러만 보고 간다. 그냥 가도 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통 바글바글하다.
9시 전후로 도착.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들 점점 모여든다. 몇 시에 시작하는지,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왔는데 방송국에서만 보던 카메라도 와 있는 걸 보면 나름 스케일이 큰 듯하다. 운세 뽑는 가판대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백인 여자아이가 나를 치고 간다. 아이의 부모는 나에게 ‘스미마셍’을 건넨다. 너무나 당연한 결말이다.
가마의 데코레이션과 사람들의 차림새 모두 전통적이다. 나이 성별 구분 않고 섞여 행사를 준비한다. 운이 좋게도 내 몸 바로 앞에서 가이드라인이 쳐진다. 옆에 줄을 잡고 계신 스님(으로 추정되는) 에게 되게 멋있다는 말을 건네본다. 고개만 끄덕이시다가 얼마 안 가서 나에게 말을 하시는데, 유일하게 알아들었던 ‘3’과 ‘5’라는 단어로 유추해서 이 행사가 홀수 해에만 열린다는 문장으로 해석을 해 냈다. 웹사이트를 찾아보면서 유일하게 기억한 내용이었기에 가능했다.
생각보다 사전 준비가 길어서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햇빛도 안 나와서 다들 벌벌 떤다.
가마를 업고 나와 길을 따라서 행진한다. 이 순간부터 거짓말 안 치고 스마트폰 포함 500여 대의 카메라들과 함께했다. 첫 주 때와 비교해서 보면 현재 나의 뷰파인더 집중력은 많이 올라와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어떠한 제스처를 취해도 이곳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이 계속 세워져 있는 게 영 떨떠름하다. 기술적으로 좋아 보이는 사진을 찍어도 마음에 와닿지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도 5월까지는 끌고 가 볼 것이다.
50mm 화각의 가능성을 미약하게나마 발견한다. 필름 카메라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써 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조금 이른 점심을 맥도날드에서 먹는다. 이 날 최고의 판단이었다. 30분 뒤에는 말 그대로 미어터졌다.
오늘의 계획이 다 끝나서 생각 없이 긴자까지 걸어간다. 중간에 흥미로운 장면 2개를 찾아내 기록한다.
학교 졸업식 날이었는지 많은 가족들이 꽃다발과 상패를 들고 거리를 거닌다. 그중에서 목에 카메라를 건 아버지와 아들이 눈에 띄었는데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이로 남는다. 후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지만 빛이 날카로워 잘 못 담아낼 것 같다는 정말 같잖은 핑계를 남긴다. “물어라도 볼까?” 가 머릿속에 떠오른 때면 이미 늦은 거다.
한국계 캐나다인 동생에게 연락이 온다. 카메라에 관심이 정말 많아서 그와의 메신저 대화와 함께 긴자 부근에 있던 중고 카메라 샵들을 들락거린다. 라이카는 정말 너무할 정도로 비싸다. 요즘 중형 카메라들에 관심이 가지만 지금은 시기가 이르다고 본다. 무엇보다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장비를 눈독 들이는 게 제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쿄 라이카 갤러리 전시를 접한다. 작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전에 거주하던 섬을 담아낸다. 며칠 전 후지필름 팝업스토어 전시도 그렇고 여기 전시 또한 여러 의미로 사진들이 참 좋다. 내가 저렇게 찍으려면 한 30년은 더 걸릴 것 같다. 이유는 알고 있지만 공개하지 않는 걸로.
근처 공원에 잠시 앉는다. 바람이 너무나 강하다. 볕을 받아도 따스운 느낌이 하나 없다. 내 몸이 유독 예민한 건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결국 얼마 안 가 몸을 일으켜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니 계획대로 다시 시부야에 가 봐야겠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