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7일

by 이승윤





맞춰놓았던 알람 시간보다 일찍 일어난다. 내일이 쉬어가는 날이어서 그런 것인가. 조급하진 않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조금 갈팡질팡 한다.



2개의 역을 양 쪽으로 끼고 있는 숙소의 위치는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걸음 수만 어느 정도 더해준다면 어디든 가능하다. 오늘은 치바 현 주위를 둘러보러 간다. 노선과 경로 모두 초행길이지만 이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심지로 들어가는 야마노테 선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모두 여유롭게 띄엄띄엄 앉아서 간다. 평균치를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자의 유니폼에는 개성이 그려져 있다. 나의 것은 누가 봐도 관광객의 모습. 기안84의 뉴욕 여행을 떠올린다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서너 정거장을 더 거친 후에 10분 정도 걸어가다 보니 작은 장터의 모습이 나온다. 센소지의 것과 유사한데 딱 세 배 작은 느낌이다. 인터넷에서 보던 것보다 관광지 느낌이 너무 강해서 오래 머물지 않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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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강을 따라 나 있는 공원길을 통해 쭉 가기만 하면 되어서 스마트폰은 한동안 주머니에 봉인해 둔다. 여기가 어디인 지 아예 감이 안 잡히지만 장소가 주는 편안한 분위기만은 또렷하다. 도쿄의 중심지에서 이어폰 볼륨을 80% 가까이 올려야만 음악이 명확하게 들렸던 소름 돋는 경험들이 나를 계속 외곽으로 도망치게 만든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나는 이런 반대편 길 또한 꽤나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목요일인데 토요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연령층들이 함께 한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나열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나이대에 맞는 일반화된 레퍼토리를 장작 쌓듯 올리고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많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취미활동의 경우에서. 그래서 시간이 몇 분 정도 멈춘 듯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공정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동시에 보일 때가 있다. 매우 흥미로운 점 중 하나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여겨지는 피사체를 중간에 발견한다. 덜 번잡스러우니 집중이 훨씬 잘 된다. 구름이 아주 살짝 낀 날씨여서 노출을 잡는 것 또한 수월하다.



육교를 거의 다 건넌 시점에 ‘Welcome to Chiba’라는 푯말이 보인다. 그제야 머리가 위치를 인지한다. 타이밍이 딱 맞아서 근처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한다.



다음 장소까지 거리가 꽤 있는데 대충 훑어보니 주거지역이 대부분이라 반 포기한 채로 걷는다. 그렇다고 시선의 집중을 놓지는 않는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렵다. 그래도 노력한다. 제주도의 한 조각을 떼어다 붙여놓은 듯한 모습일 정도로 판박이다. 이태원에서 연남동까지 봤는데 이제는 제주도까지 나온다. 마지막으로 갔던 게 언제였는 지 기억도 안 나네.



목욕탕이랑 코인빨래방이 붙어있는 게 왜 신기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큰 고민 없이 기록한다. 요즘 이런 모먼트에 집중하고 있다. 계산적이기보다는(물론 은연중에 지속적으로 개입을 하지만서도) 무의식적으로 스파크가 튈 때마다 육체의 행동과 결합하는 것. 다소 아쉬운 점은 ‘1 시선 1 셔터’가 잘 안 된다는 거다. 서너 장이 기본으로 깔린다. 셔터 수는 불안과 큰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명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예상은 했지만 애써 도착한 마지막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지나 사라진 건지, 이름이 잘못 표기된 건지는 모르겠다. 빛이 환한 한창의 시간이지만 조금 일찍 돌아가기로 한다. 이 반경을 넘어서도 뾰족한 게 없어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역 앞 부근마저도 다른 곳들에 비해 규모가 비교적 작은 편이다.



저녁 먹기 직전인 이 시간이 가장 씁쓸하다. 체력적으로는 지쳤는데 막상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 들이닥치면 확신의 레벨이 확 꺾여버리기 때문이다. 그날 적당히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져도 변함없이 따라온다. 편안한 상태가 두렵지만 일부러라도 안 바꿔놓으면 다음 날 시작 자체를 못 할 것 같아서 억지로 돌려놓는 요즘이다. 금방 갈 것 같았던 3월이 내 몸처럼 늘어진 것 같다. 자주 가는 반찬집에서 파는 닭구이로 마음을 달래 본다.(*일본에서 먹는 음식들 중에 가장 덜 짠 메뉴여서 자주 먹곤 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