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다녀왔던 기타센주 역으로 다시 향한다. 빛도 너무 강했고 번잡스러웠던 모습이 무서워 도망쳤기에 흐리멍덩한 오늘 다시 도전한다.
늘 그랬듯이 골목들을 누비며 마음에 드는 장면을 담는다. 인물은 최대한 배제한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지만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다. 정확히 내가 원하던 날씨다.
오늘은 무언가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눈을 뜨자마자 느껴졌는데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과거에 찍었던 컷과 매우 유사하지만 이 모멘텀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다. 아슬아슬하게 만족스러운 한 장 얻는다. 너무 추워서 커피 한 잔 하러 움직인다. 옆 골목길에 조그맣게 나열된 벚꽃나무들을 지나 앤틱 한 카페로 들어선다.
지난번의 재즈킷사보다는 편안하다. 공간도 널찍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닮은 바리스타 선생님이 커피를 직접 내리시는데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테이블에 앉는다. 장비들이 어마무시하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듯. '시즈널 메뉴'라는 문구에 홀려 시켰는데 라떼가 나온다. 얼마 만에 라떼를 먹는 건지! 씁쓸하면서도 녹진한 블랙커피를 원했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이 메뉴도 꽤나 괜찮다. 잔이 국그릇 만해서 이걸 어떻게 마셔야 하나 한참 고민했던 것도 오늘의 웃픈 해프닝으로 남는다.
각 서랍들마다 가치 있어 보이는 잔과 그릇들이 놓여있었는데, 이 모습들을 보고서 "근사하다."라는 느낌보다 “지진 나면 이거 다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을 보면 내면의 불안은 아직도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
30분 정도 있다가 일어선다. 귀중한 모멘텀이 사라지기 전에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자 한다. 비가 그쳤다. 이제는 그리 춥지도 않겠다, 집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오늘은 어떤 피사체를 마주해도 잘 담아낼 수 있는 날이다.
오전에 찍었던 것보다 더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획득한다. 정말로 진부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길을 내딛음에도 스카이트리는 항상 변함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는 조금 무서울 정도다.
조금씩 어두운 쪽으로 가까워져 가는 계조의 변화가 무척이나 아쉽다. 가로등에 불이 하나둘 씩 켜질 때 즈음 집 근처에 도착한다. 다행히 비는 이때서부터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친구를 맞이한다. 벨라루스에서 왔다는데 어학원을 다닐 예정이라고. 두 번 경유하고 막 입국해서 그런지 그의 얼굴은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방에 들어와 창문부터 열어젖힌다. 더 많은 비가 쏟아지기 전에 환기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3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않는다. 내일은 밀린 빨래를 해야 한다. 빨래방에 갈 때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