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6일

by 이승윤





예보대로 우중충하다. 비는 오지 않는다. 스마트폰 화면에 쓰인 온도를 믿고 반바지를 꺼낸다. 바람이 조금 강하지만 강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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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바시 역 출구를 전부 빠져나오기도 전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위에서 들려온다. 조금 늦게 행사장에 들어섰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안착했다. 멋들어진 차들이 통제된 도로 중앙에 정렬되어 있다. 캘거리에서 만났던 친구 제임스가 떠오른다. 올드카에 미친 사람이었는데 최근 사진 보면 잘 지내는 듯. 그이 생각에 폭스바겐 미니버스와 함께 기념사진 한 장 찍는다. 몸이 어느 정도 장소에 적응했으니 이제 다시 카메라 속으로 빠져들어 가보자고.



‘표면’ 이 눈에 자주 아른거리는 요즈음 이만한 기회도 없으니 여러 시도를 해본다. 오늘도 결과물은 나중에 확인하는 걸로. 카메라들이 주위에 여럿 보이는데 전부 다 다르게 다루는 걸 볼 때마다 이 매체의 한계는 보다 멀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중절모를 쓰신 한 어르신이 2m 이내의 거리에서 나를 찍는다. 거리에서 사진을 오래 찍은 사람들이라면 본능적으로 이런 낌새를 캐치해 낼 것이다. 나에게 겨냥된 렌즈를 흘깃 보고서 곧바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바꾸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대부분은 캔디드 한 느낌을 좋아할 테니까. 지금 내 몰골은 말이 아니지만 찍는 사람이 좋으면 그만인 일이다. 카메라가 내려감과 동시에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넨다. 그의 답례 또한 간결하다.



별 재미를 못 봤다면 다른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넘어갔겠지만 빛도 적절하고, 몰입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계속 남기로 한다. 중간중간 빗방울이 떨어짐에도 개의치 않고 머리를 굴린다.



두세 시간 정도는 순식간이다. 내가 유난인 것처럼 들리겠지만 많은 사진가들도 우산을 펼쳐 들기 전까지 같이 자리를 지켰다. 2% 아쉬운 느낌이 들어 말을 걸 준비를 한다. 아까 마주했던 미니버스의 주인들에게 다가간다. 프로세스는 이전과 차이 없이 번역기와 포트폴리오 페이지를 보여주는 식이다. 아버지는 무덤덤하지만 아들의 리액션이 인상적이다. 자식을 설득한 덕에 그들을 찍을 기회를 얻는다. 4월은 여러모로 잘 풀려가는 중이다. 이메일을 건네받고 오전을 가득 채운 장소를 드디어 떠난다.



한국에 돌아가면 배터리부터 새로 구입하는 걸로 하자. 두 개 모두 사용시간이 현저히 떨어져서 쉽지 않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부야를 살짝 찍어먹고 간다. 직사광선이 다시 나를 째려본다. 인파만 가득할 뿐. 빠르게 철수한다.



시간이 남아서 사진들만 맥북에 옮겨놓고 저번에 놓쳤던 식당 촬영을 재도전하러 가기로 한다. 오늘은 사람이 좀 적어야 할 텐데. 위층에 사는 동갑내기 동주 씨를 우연히 마주친다. 오늘 나의 기분이 괜찮아서인지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먼저 던진다. 우에노 공원을 가려했던 그의 루트는 갑자기 바뀌었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센소지까지 걸어가는 그 짤막한 시간에 서로 정말 많이 떠들어댄다. 마치 여태껏 참아왔던 걸 풀어놓는 것처럼. 도쿄에 5년 넘게 살고 있는 그만의 경로를 통해 이동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는 재미도 좋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보는 센소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바로 옆에 무료전망대가 있다고 해서 같이 올라가 본다. 여태껏 보았던 것들 중 제일이다. 정말 고마워요 동주 씨.



내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식당에 도착했지만 운이 좋게도 끄트머리에 딱 두 자리가 남아있어서 착석한다. 이곳에서 고마운 마음을 전할 방법은 밥을 사는 것뿐. 궁금함에 여러 개 시켜 같이 나누어 먹는다. 히라야마 씨, 야키소바와 라멘은 정말 괜찮았어요. 교자는 조금 아쉽군요.



떠들면서 천천히 먹고 있는데 안쪽이 분주하다. 무언가 이상해 물었더니 야키소바 재료가 소진되면 바로 문을 닫는다고. 어떨결에 우리가 이날의 마지막 손님이 된 것이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 가게 사진을 찍으려 했던 나의 목표가 자동적으로 완성된 건데 혹시나 해서 동주 씨에게 허락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흔쾌히 ok 사인을 받아주었는데 나 혼자 왔으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피부에 꽂힌다.



하이볼 기운이 아주 살짝 올라온 상태에서의 기록들은 군더더기가 없다. 힘이 빠져서 그런 걸 수도.



잦아든 바람에 밤거리를 조금 더 둘러본다. 날 잡고 새벽 일찍 나와봐야겠다. 분명 근사할 거야.



커피를 사겠다는 그의 말에 스타벅스로.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날밤을 샐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프라푸치노를 주문한다. 쪽쪽 빨면서 벚꽃 색으로 빛을 뿜고 있는 스카이트리 아래까지 도달하는데 피곤한 실재와 달리 머리와 발걸음의 느낌 모두 가볍게 다가온다.



지금 돌아가도 아쉽지 않을 정도지만 4월의 기세가 심상치 않으니 계속 밀어붙이기로 한다. 그래도 ‘밥’과 ‘잠’ 은 칼같이 챙기기로.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