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2화.
2019년 2월 초 어느 일요일. 그렇게 허탕들을 거쳐가며 찾게 된 홍대에 있는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로스터리 카페는 그 모습이 퍽 몽환적이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이 카페를 기억해 두시기 바란다. 나는 이 카페를 ‘홍카’라고 적겠다.
홍카의 바닥은 딱 계단 한 칸만큼 꺼져있었다. 층고가 낮아 186cm의 내가 똑바로 서면 약 10cm 정도 위에 천장이 있었다. 반지하인 듯 반지하가 아닌 카페는 문명의 어떤 것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 있어서는 안 될 낯선 동굴로 들어서는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천장 구석에 설치된 고급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히사이시 조의 음악, 나무로 연출한 인테리어, 그리고 뻥튀기 냄새와 비슷한 로스팅 냄새는 들어서는 이로 하여금, 그들을 기억 저편의 막연한 향수에 젖게 만들었다. 이것은 앞서 말한 낯선 동굴로 들어서는 환상과 잘 어우러져 ‘기분 좋은 기시감’을 증폭시켰다.
입구 왼 편으로는 두 명의 바리스타들이 일하고 있는 바(Bar)가 보였고 오른쪽에는 손님들을 위한 테이블이 있었다. 바와 손님 테이블 사이, 정면에는 커다란 미닫이 중문이 있었는데 그 안쪽에는 로스팅 머신이 있었다. 근무 중인 바리스타 중 한 명이 중문 안으로 들어가 로스팅하고 있는 여자를 불렀고 그녀는 뛰어나와 내게 말했다.
“되게 일찍 오셨네요? 아직 로스팅이 안 끝나서 그런데 하고 있는 것만 좀 마무리해도 될까요?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서… 잠깐만 앉아 계세요.”
급하게 할 말만 하고 다시 중문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여자. 그녀가 사장님인 것 같았다. 낯선 장소에 들어선 이가 무릇 그러하듯, 현관과 제일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사장님을 부르러 갔던 바리스타가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 출력된 이력서를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은 로스팅을 마무리하고 내 앞에 앉았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이 카페 사장이고요. 아까 저 부르러 왔던 지연 씨랑 성호 씨, 기환 씨, 매니저, 이렇게 해서 총 4명이 일하고 있어요. 원래는 5명이 정원인데 직원 한 명이 급하게 그만둬버려서...”
바(Bar)에서 나와 나를 안내한 바리스타의 이름이 지연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장님이 읊어준 직원들의 이름을 듣자 하니, 지연과 사장님을 제외하면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남자인 것 같았다.
“지금 여기가 1호점이고요. 2호점이 이대역 쪽에 있어요. 공고에도 적어 놓기는 했는데 교차 근무를 하셔야 돼요. 알고 오신 것 맞죠?”
“예. 알고 지원했습니다.”
“그걸 조금 힘들어해서 퇴사하신 분들이 있어서요. 이대역 가보셨어요?”
사장님은 이대역에 있는 2호점에 대해 설명해 주고 어떤 식으로 인력이 운용되는지 덧붙였다. 보통 여러 지점을 오픈한 카페들은 지점별로 직원을 채용하는데 이곳은 조금 달랐다. 사장님이 얘기하는 교차 근무란, 매니저가 월초에 짠 근무 스케줄에 따라 매니저를 포함한 바리스타 5인의 근무지가 1호점과 2호점으로 나뉘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10시간이 넘는 영업시간 동안 혼자 근무할 수 없으니, 오픈과 마감 근무로 또 나뉘었다.
사장님에게 카페 소개와 카페 운영 방식에 대해 얘기를 듣고 나서는 여느 카페에서 늘 보던 면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뻔한 구두 면접을 진행했다. 그리고 사장님은 이제껏 봤던 면접(머핀 브레이크를 제외하고.)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실무 테스트를 요청했다. 역시 서울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호주에서도 면접을 보고 나면 ‘트라이얼’이라 명명된 실무 테스트를 통해 면접자가 실무자로서 실력을 갖췄는지 판단한다. 아밋의 ‘머핀 브레이크’에 취직할 때도 면접을 보고 나서 트라이얼을 진행했더랬다. 여담이지만, 보통 3시간씩 3회 정도 트라이얼을 진행한 후에 채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나는 첫 번째 트라이얼을 끝내자마자 아밋에게서 ‘i’ll hire you’라는 말을 들었다. 아, 여담이 아니라 자랑이구나.
사장님은 내게 실무 테스트를 명목으로 드립 커피 한 잔을 내려달라 말했다. 보통 카페에서는 면접을 볼 때 손님이 가장 뜸한 시간에 맞춰 면접자를 부른다. 홍카도 그랬고 한가한 직원들은 내가 드립 커피를 내리는 것을 다가와 보고 있었다. 사장님과 직원들의 주목을 받자 드립포트(주전자)를 쥐고 있는 오른손이 떨렸다.
우여곡절 끝에 내린 커피를 면접 보던 자리에 앉아 사장님과 같이 시음했다. 사장님은 내게 ‘원두 몇 그램을 사용했는지.’ ‘얼마나 뜸을 들였는지.’ ‘얼마나 추출했는지.’ ‘몇 차까지 추출했는지.’ 등을 물었다. 적당히 문답이 오가고 사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문 뒤로 향했다. 카페에 오후 2시 반 정도에 도착했는데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잠깐 사라졌던 사장님은 자리로 돌아와 A4용지 두어 장을 건넸다. ‘성격 테스트’라고 적힌 A4용지는 여러 가지 문항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별건 아니고요. 우리 직원들도 면접 볼 때 다 한 번씩 했거든요? 재밌어요. 이거. 한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재미로요! 재미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심리테스트 혹은 MBTI에 흥미도 있으니 하는 거야 좋다만, 생각보다 길어지는 면접 때문에 햇빛 색이 확연히 주황을 띠는 이 시간까지 천안행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불편했다. 나란 인간이 세상 모든 촌놈들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촌놈들이란 낯선 도회지에 오랫동안 홀로 나와있으면 괜스레 겁을 먹는 법이다. 최대한 빠르게 눈에 띄는 답을 찍어가며 성격 테스트 문항을 풀었고 사장님은 그것을 들고 다시 중문 뒤로 들어갔다가 수 분 뒤, 또 다른 A4용지 한 장을 손에 들고 왔다.
“결과진데요, 제가 먼저 볼게요.”
말하고는 시선을 결과지에 고정했다. 사장님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미세한 움직임이지만 간간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상우 씨도 한번 보실까요?”
결과지를 내게 건네며 물었다. 그것을 받아 읽어 나갔다. 리더십, 문제 해결 능력, 협동성, 사교성. 이렇게 네 가지 항목에 0점부터 15점까지 점수가 매겨졌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리더십 점수는 거의 만점에 가까웠고 문제 해결 능력도 10점이 넘었다. 그러나 협동성과 사교성이 5점 아래로 낮게 나왔다. 특히 가장 낮은 점수로는 사교성 2점.
“어… 제가 여기 직원들이랑 거쳐간 친구들도 다 검사를 해봤는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결과가 나온 사람은 상우 씨가 처음이에요. 그리고 리더십이 이렇게 높게 나온 사람도 상우 씨가 처음이고요. 어떻게 결과가 이렇게 나왔죠?”
사장님은 내가 다 읽고 테이블에 올려둔 결과지를 다시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사실 걱정이 되네요. 리더십 점수가 너무 높으면 우리 매니저랑 마찰이 좀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아, 그런 부분은 제가 배워가...”
“아니요! 배운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장님이 잘랐다.
“여기는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라, 그간 배운 것들을 토대로 일을 해야 하는 곳이에요. 그죠?”
심기를 건드렸는지, 살짝 흥분한 투로 말을 뱉는 사장님.
“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엄연히 회사고 직책이라는 것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구요. 저는 제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고집부리지 않고 습득하겠다는 말이었어요.”
같이 흥분해서 맞불을 놓지 않고 침착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사교성이 너무 낮게 나와서 기존 직원들과도 마찰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히 잘 섞이지 못할 것 같아서요. 스타일 보니 개성도 강한 것 같고요.”
이제는 스타일까지 들먹인다.
“그 부분도 딱히 걱정하실 것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장님. 예전에 천안에서 카페 점장으로 일할 때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랑 아직도 연락하거든요.”
이 사람… 아까는 분명히 ‘재미’로 하는 성격 테스트라 말했다. 사실 실무 테스트까지 끝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미루어 보아 거의 채용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지라 적힌 종이 쪼가리 한 장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면접이라는 수단의 특성상 사람을 완전히 파악하기에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2시간이 넘도록 나눈 대화보다 고작 몇 문항 성격 테스트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매니저랑 상의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사장님은 급작스럽게 면접을 마무리 지었다. 바뀐 태도와 표정을 보아하니 결과가 예상됐다. 성격 테스트도 면접의 일부라면 할 말은 없지만 그전까지의 모든 것들이 종이 한 장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서, 또 나란 사람을 온전히 겪어 보지도 않고 허접한 테스트 하나로 평가를 끝낸 것 같아 억울했다.
“아, 사장님, 혹시 채용이 안되더라도 문자 하나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냥 기다리기가 조금 그래서요.”
“다른 분들은 떨어져도 딱히 연락을 드리지는 않았는데… 예, 뭐, 원하신다면 문자 보내 드릴게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커피요?”
나는 22살부터 6년간(군대에 있던 2년을 제외하고.) 커피를 업으로 삼아왔음에도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그날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거절할까 했지만, 분위기로 봐서 다시 올 일 없을 것 같으니 면접비다 생각하고 챙겨가기로 했다.
“아메리카노로 하겠습니다. 아이스로 연하게요.”
“아이스로요? 가지고 가실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아! 그럼 따뜻한 걸로…”
“지연 씨, 아메리카노 한 잔만 내려줘요. 상우 씨, 저는 로스팅 때문에 먼저 인사드릴게요. 커피 맛있게 드시고 면접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은 로스팅 머신이 있는 중문 안쪽으로 들어갔고 나는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추출되는 커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는데 지연과 눈이 마주쳤다. 면접을 볼 때도 그녀의 시선이 간간이 사장님과 내게 머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녀가 싱긋 웃었다?
커피를 든 손이 겨울바람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되려 짐이 되어 버렸다. 역까지 걸어가는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사정없이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그나마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나머지 손을 빼기가 겁났다. 주머니 안,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버튼을 눌러 벨 소리를 멈췄다. 역에 도착해 남은 커피를 처리하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승일이었다.
“어, 전화했었네?”
-어디여? 나 서울 도착했는디. 오늘 저거 본다매? 벌써 끝나고 내려간겨?
(천안 사람들은 아니, 적어도 나의 천안 지인들은 서울에서 천안으로 돌아오는 것을 내려간다. 고 말한다. 반대로 천안에서 서울로 가는 것을 올라간다. 고 말한다.)
“어. 이제 끝났고 내려갈라고.”
-아이, 뭐 어뜨케… 잘 본 겨, 어떻게 된 겨?
“하… 몰라, 새끼야. 좀 어이없어.”
-왜. 뭐, 맘에 안 들어?
“응. 그쪽에서 내가 맘에 안들어.”
승일이 큭큭큭 하면서 웃는다.
-야. 너 뭐, 오늘 꼭 내려가야 되는 겨? 아니면 저거나 하던가.
“저거가 뭔데. 병신아.”
-오늘 뭐, 저녁이나 먹구. 우리 집에서 자구 가도 되는 거 아녀? 보구 가지 그려?
“그려. 너 어딘데.”
-금방 가. 집 가는 거 탔어. 신당역으로 와.
“알었어.”
나는 승일의 자취방이 있는 신당으로 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