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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0. 2022

아우내 장터

2장. 3화.

신당역에 도착해 승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잉, 도착핸겨?


“응. 몇 번으로 나가야 되는겨?”


-2출(2번 출구.)로 나와서 잠깐 있어봐.


“오는데 얼마나 걸릴 거 같어?”


-잠깐 짐 놔두러 집 왔어. 금방 나갈겨. 가까워.


나름 빠르게 이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승일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2번 출구를 찾아 역을 빠져나왔다. 출구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입에 담배를 물었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승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시하고 라이터를 켰다. 부는 바람 때문에 라이터에 불이 붙었다가도 담배를 가져다 대면 꺼져버렸다. 부싯돌이 닳도록 라이터를 켜는 내 앞에 승일이 섰다.


“야, 너어는 쌔애끼야.”


그는 검은색 패딩 주머니에서 터보 라이터를 꺼내 내 담배 앞에 갖다 댔다. 스위치를 켜자 토치처럼 불꽃이 타오른다. 담배를 불에 갖다 대어 한 모금 빨았다. 이어서 승일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야… 라이타 좋은거 쓰는 거 봐. 서울에서는 다 그런 거 쓰는거여? 승일이가 제일 잘 나가는 거 같어-”


여러 곳으로 흩어졌던 친구들이 병천으로 돌아오는 명절이면 병천에 남은 친구들은 서울에서 돌아온 친구들에게 으레 이런 농담을 던지곤 했다.


“붕신... 그래서 면접이 뭐, 어쨌대는 거여?”


승일은 피식 웃으며 애정 아니, 우정 어린 비속어를 뱉고 면접에 대해 물었다.


“야, 일단 밥부터 먹자. 아, 배고파 죽겄어.”


승일이 자주 배달시키는 곳이라며 안내한 치킨집, 우리의 앞에 놓인 것은 프라이드치킨 위에 양파 채와 묽은 마요네즈가 올려진 정체모를 음식 한 대접. 그리고 500cc 생맥주 두 잔. ‘이런 건 몰랐겠지. 촌놈 새끼. 서울에서는 이런 걸 먹어.’라고 말하듯 우월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승일. 터보 라이터로 불을 붙여줄 때도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  이 새끼 이거… 치킨 같지도 않은 거 시켜 놓고 표정 봐라?”


“쌔애끼가… 일단 저기 해보구 얘기해. 이거 존나 맛있어.”


한 입 베어 무니 예상과 같았다. 느끼하고 짜고 달다. 맥주와는 잘 어울릴 것 같지만 나는 이 음식을 감히 치킨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고 싶지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한평생 프라이드와 양념만 고집해온 뚝심 있는 30년 치킨 이력에 오점이 생겼다.


“맛은 뭐, 그냥 그런데… 다음부터는 그냥 양념 치킨이나 먹자. 승일아.”


“아, 맛있잖어. 새끼가… 다 처먹을 거면서 괜히 지랄이여. 그래서… 저기 얘기나 해봐.”


나는 승일에게 구두면접부터 트라이얼까지 그리고 좋았던 분위기가 성격 테스트의 결과지 한 장 때문에 반전된 것까지 말했다.


“야. 그게 말이되는 거여? 그리고 그 여자, 재미로 하자고 그랬다매.”


“그니까. 나도 그게 존나 어이가 없다니까?”


“그런데는 차라리 안 가는 게 나아. 뭣 헐라고 그런데 가서 일하냐.”


“씨바꺼, 안가지! 야. 너 딱 봐라. 전화 와도 내가 바로 거절하는 거.”


큭큭큭 웃어대는 승일.


“왜 웃어. 새끼야.”


“아, 그냥 존나 웃기잖어. 그런 데가 진짜 있기는 있네. 나 아는 후배는 면접장에서 사주를 보더랴. 그러더마는 사주가 회사랑 안 맞는다고 채용이 안됐댜. 근데 너는 사주도 아니고 저거 때문에 채용이 안된 거잖어.”


승일은 포크에 치킨을 꽂아 두고도 웃느라 입에 가져가지 못한다. 웃는 그의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승일의 말이 맞았다. 한 집단의 리더가 자신의 통찰력과 판단력을 믿지 못해 성격 테스트 몇 문항에 채용을 의존한다면 그 집단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야. 이거 막잔 하고 저기나 가자.”


“저기가 어딘데 병신아. 아, 말 좀 똑바로 해!”


“저기가 피방(PC 방.) 말고 어딨어 새끼야. 대충 이해했으면 됐지. 왜 소리를 지르구 지랄이여.”


“뭐여, 너 내일 출근 안 해는 겨?”


“새끼야, 인저(이제.) 8시밖에 안뎠어.”


결국 승일의 말대로 치킨이 담겼던 그릇은 설거지한 듯 깨끗했다. 우리는 치킨집을 나왔다. 하루 종일 부던 바람이 잔잔해졌다. 간혹 이런 날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매섭게 부던 바람이 해가 지면 잠잠해진다. 싱거운 농담을 해대며 피시방으로 향하는 승일과 나란히 하고 신당의 거리를 걸었다. 서울 생활이라… 막연하다. 나이 서른에 무직이라… 막막하다. 막연하고 막막하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멎은 바람처럼 나도 아주 잠깐만 멈추기로 했다.




늦은 오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만카에서 잡코리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고집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다 녹았을 무렵, 제육볶음을 해 놓으셨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설레는 맘으로 짐 정리를 시작했다. 나이 서른에도 입맛은 애와 다름이 없어 제육볶음에 눈이 돈다.


“가게?”


손님이 없는 시간, 알바를 퇴근시키고 혼자서 한가롭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만철이가 내게 물었다.


“어. 엄마가 제육볶음 해놨대.”


“아이, 그럼 가야지. 내일도 올 거지? 드가.(들어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만카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아우내 장터를 뒤돌아가는 샛길과 가로지르는 큰길이 있다. 큰길이래 봐야 왕복 2차선 도로지만, 노란색 중앙선이 아직 선명하고 아스팔트 상태가 양호하다면 ‘면’ 단위 촌 동네에서는 큰길로 친다.


큰길로 들어서자마자 후회했다. 고작 6천 명 남짓 거주하는 촌동네에서 교통체증이라니 말도 안 된다. 집에서 나올 때 장이 들어선 것을 보고 돌아갈 때는 샛길로 가야지 했던 것을 급한 마음에 잊었다.


아우내 장터에는 오일장이 들어선다. 오일장이란, 매월 1일과 6일, 11일, 16일. 이런 식으로 5일 단위로 들어서는 장을 말하는데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전통시장을 지원해주는 꼴이라 호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것보다 규모가 더 커졌다.

오일장이 들어선 아우내 장터.


병천 어르신들은 장이 서면 새벽같이 장터로 모이신다. 문제는 아무래도 옛날 분들이셔서 교통 관념이 무딘 탓인지 무단횡단과 신호위반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는 것이다.


혹여 주말에 장이 들어선다면 장터 주변은 말 그대로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아비규환’ 정도는 된다. 타지에서 버스까지 대절해가며 특산물인 순대를 먹으러 병천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장터와 맞닿아 있는 순대 골목에 빼곡하게 줄을 서면 장터로 모인 어르신들은 관광객들의 줄을 피해 차도를 인도 삼아 걸어 다니신다. 때문에 어려서는 장이 들어서면 온 동네 사람 다 모이는 축제 같아 마냥 설레던 내가 운전대를 잡은 지금, 장터는 그저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장터를 마냥 미워할 수 없다. 상투적이지만 나름의 추억을 담고 있는 장소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스무 살, 여자 동창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찌감치 병천을 떠났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자 동창들만이 병천에 남았었다. 장이 들어서면 승일과 성진같이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을 제외하고 대학에 낙방하거나 의도적으로 진학하지 않은 친구들 몇몇이 낮부터 어울렸다. 나와 명준도 후자에 속했다.


그와 함께 장날에만 들어서는 포장마차에서 돼지 껍데기에 막걸리를 기울이다 보면 동네 후배나 친구들 몇몇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럼 그들을 불러 자리에 앉힌다. 물론, 내가 또는 우리가 붙잡혀 앉은 적도 적지 않다.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장이 서는 날, 일단 가면 누구든 있는 것이다.


당시 우리는 백수, 한량들이었기에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못했다. 꼬깃꼬깃한 몇 천 원 혹은 몇 백 원씩 갹출해서 모아 두고 딱 그만큼만 주문해서 먹곤 했는데 지나는 동네 어르신들께서 계산을 대신해 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또 모은 돈만큼 주문을 했다. 그렇게 몇 번이 반복됐고 우리가 모은 돈은 결국 각자의 주머니를 찾아 들어갔다. 계산을 해주시는 어르신들로 말하자면 친구의 부모님들, 누구네 삼촌, 누구네 큰아버지, 누구네 엄마 친구, 아빠 친구 혹은 병천 몇 리 이장님들 되시겠다.


“얼른얼른 취직 해가꾸 장가덜 갈 생각은 안혀구, 이? (충청도 어르신들은 응?을 이?로 발음 하시곤 한다.) 아침부터 술이나 처먹구 앉었구. 증맬루.”


라는 핀잔은 덤이었다. 낮부터 거나하게 취해 친구들과 병천 바닥을 거니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뭐 땜에 이르케 늦어? 아까 출발한다더니.”


제육볶음을 앞에 두고 소맥을 말고 계신 아버지가 물으셨다. 동생은 이미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상을 차려 두시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아, 장 섰잖어요. 아이, 왜 이리덜 길을 막고 그래는지, 진짜.”


“원래 그러는 거 알잖어. 샛길로 돌아오지? 왜.”


“깜빡했어요.”


“앉어. 어여 먹어.”


손도 씻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제육볶음은 양이 꽤 넉넉했더랬다. 금세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조금 부족한듯해서 다시 빈 공기를 채우러 가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아마도 면접을 본 카페 중 한 곳일 테다. 밥통으로 가져가던 밥공기를 싱크대에 넣어두고 패딩을 꺼내 입었다.


“왜? 여기서 받지 그냥.”


굳이 나가서 전화를 받으려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면접 본 곳들을 돌아보면 병신 보존의 법칙을 증명이라도 하듯 분명 정상적이지 않은 곳이 많았다. 패전보를 굳이 육성으로 전하고 면접자의 반응을 살피며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부모님 앞에서 전화기에 대고 보복성 쌍욕을 퍼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버지의 말씀에는 적당히 둘러대고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다가는 전화가 끊길 것 같아 일단 받았다.


“여보세요?”


-네, 상우 씨 맞으시죠? 여기 홍카인데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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