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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0. 2022

서울의 달

2장. 마무리.


퇴근하고 자취방에서 간간이 즐기던 혼술을 잊지 못한다. 천안과 병천의 거리는 직행 버스로 20 분. 그러나 배차가 한 시간에 한 대였고 그 마저도 저녁 8시면 끊겼다. 편도로 50분 소요되는 시내버스가 있기는 했지만 퇴근 후 병천에 있는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자고 왕복 두 시간을 오가는 것은 영 타산이 맞지 않았다. 대면 대면한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싫었다. 사람 많은 곳이 체질상 맞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안주나 주종을 선택할 때 맘에 없는 배려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혼술이 좋았다.

천안 자취방에서 즐기던 혼술.


마음이 동할 때 마시고 싶은 주종을 골라 그에 어울리는 안주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던 영화나 예능을 틀어두고 나 홀로 즐기는 것이 더 취향에 맞았다.


취하고 나면 보고 있던 영화를 멈추고 기타 치며 노래를 불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가 사주신 기타는 자취를 시작할 때 그리고 다른 자취방으로 이사할 때 항상 동행했더랬다.

아버지께서 사주신 기타.


4인승 SUV에 필요한 것들을 우선으로 싣다 보니 금세 자리가 꽉 찼다. 내가 탈 공간도 마땅히 마련이 안되어 스포츠백 하나를 품에 안아야 했다. 아쉽게도 나의 술주정을 받아줄 기타는 같이 상경할 수 없었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해 얼마 지나지 않아 항상 그랬듯 앙종 맞은 오줌보가 또 말썽을 부렸다. 급하게 졸음 휴게소를 찾았으나 폐쇄되어 있었고 할 수 없이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수풀로 들어가 일을 해결했다. 언젠가 들었다. 고속도로 옆으로 수풀이 있다면 그곳은 똥오줌 밭이라고.


이사 전날인 어제. 나는 차용증을 적었다. 호주에서 돌아와 면접 보러 이리저리 돌아다닌 탓에 수중에 남은 돈이 백만 원도 안됐다. 사실, 놀고먹으며 쓴 돈이 더 많았지만… 아무튼, 홍카에서 첫 월급을 받기 전까지 버틸 생활비가 부족할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어머니에게 기존에 내어주신 보증금 오백만 원과 별개로 생활비 오십만 원을 더 부탁드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차용증을 적어 어머니와 아버지 앞에서 납부 기한과 왜 그 돈이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했다. 차용증은 보신 아버지는 뭘 이런 것 까지 적냐며 시큰둥하셨고 어머니는 꼼꼼히 훑어보시곤 내 통장에 예정에 없던 오십만 원을 더 입금해 주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모님이 내가 호주에 있는 동안 천안 자취방에서 쓰던 살림살이를 보관해 주셨다. 낡았지만 쓰던 것들이라도 있어 없는 사정에 큰 지출은 면했다.


이삿짐을 꾸역꾸역 쑤셔 박은 차 안은 고요했다. 상봉한 지 오래지 않아 또 자식을 떠나보내느라 싱숭생숭하셨을 부모님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시 찾을 자유를 꿈꾸며 무섭게 대들었다만 막상 일이 닥치니 걱정이 앞서는 나.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달렸다.


“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어떻게든 내 돈 뜯어가려는 도둑놈들 같아요.”


침묵을 깨고 말했다. 자취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숨만 쉬어도 청구될 월세와 각종 공과금. 그리고 답답한 마음에 집을 나서면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지출로 이어질 테다.


“어이구, 그걸 이제 알었냐?”


푸후후 웃으시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이고오, 맨날 여기를 오르내려야 되는 거여?”


연신내에 도착해 모텔촌으로 나있는 언덕길을 오르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유~ 젊은 놈한테 이까짓 게 뭐가 힘들어요?”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가 반문하셨다.


원룸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는 방도 들여다보시지 않으시고 차에 있는 짐을 내리기 시작하셨다. 어머니와 나는 3층에 있는 내 방으로 올라왔다.


“괜찮네. 깔끔하고. 천안에서 살 때 보다 훨씬 낫다. 너 근데 뭘 이렇게 많이 시킨 거여?”


현관 앞에는 방을 계약하고 난 후, 병천에서 쿠팡으로 주문한 것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그냥… 청소기, 옷걸이, 밥솥, 조립식 가구 뭐, 이런 거?”


어머니와 방을 둘러보고 원룸 건물 1층으로 내려가 아버지가 차에서 빼둔 짐을 보이는 대로 집어 들어  3층으로 옮겼다. 청소가 안된 방바닥 위에 짐을 풀어둘 수 없어 현관 앞에 쌓아둔 채로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주변 지리를 하나도 모르는 탓에 언덕길을 내려와 처음으로 보이는 백반집으로 들어갔다.


“반찬 나오는 거 보니까 너 어째 여기 자주 오겄다?”


식사를 하시며 어머니는 마치 예언하시 듯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연신내를 떠날 때까지 이 식당을 단 한 번도 다시 찾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은 ‘잘 살어.’ 한마디를 남기고 천안으로 돌아가셨다. 언제나 그랬듯 쿨한 이별이었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부모님이 타고 계신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주차장 한가운데에 테이블과 의자가 보여 그리로 가 앉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뚝배기 안에는 담배꽁초가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누군가 원룸에 입주한 흡연자들을 위해 만들어 둔 것 같았다.


연신내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약 당시 연신내 중개인은 건물 관리는 건물주이자, 아버지로부터 본인이 일임 받아하고 있으니 용무가 생긴다면 본인에게 전화를 달라 말했다.


-네. 연신내 부동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 303호 입주하는…


-네, 네, 네. 이사는 잘하셨어요?


“네, 이사는 다 끝냈고 잔금 입금하려고 하거든요.


-네, 먼저 입금하신 계약금 제외하고 사백오십만 원, 계약서에 명시된 계좌로 입금해 주시면 되고요. 월세는 그때 설명드린 대로 다음 달 8일부터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는 천안과 호주를 아울러 어느 한 곳도 예외 없이 월세를 선입금해왔는데 이곳은 반대로 먼저 한 달을 살고 그 후에 월세를 입금했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 달 8일이요.”


-그리고 혹시 흡연하세요?


“네.”


-아, 그러시면 저희 건물 내에서는 완전 금연이고요. 흡연은 주차장 가보시면 테이블 있어요. 거기에서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재활용 쓰레기는 테이블 뒤쪽으로 보시면 분리수거장 있는데 그쪽에 분리해서 버리시면 됩니다.


연신내 중개인 아니, 이제는 관리인인 그의 말대로 뒤를 돌아보자 조잡한 분리수거장이 보였다. 어쩐지 쓰레기 냄새가 나더라니. 관리인은 문의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해도 좋다는 얘기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다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뚝배기에 꽃아 넣고 방으로 올랐다.


방바닥에 계약서를 꺼내 두고 핸드폰을 켰다. 은행 앱을 찾아 송금 준비를 마치고 계약서에 인쇄되어 있는 계좌 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계약서의 계좌 번호와 내가 핸드폰에 입력한 계좌번호를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세 자리씩 끊어서, 또 다섯 자리씩 끊어서 몇 번이고 번갈아 보며 확인했다.


천안에서 자취하던 3년 동안 두 번의 원룸 계약을 했었다. 그때마다 기백만원이 되는 돈을 집주인에게 송금했었는데 아직도 그 정도 돈을 송금할 일이 있으면 안전 염려증이 도져 한세월이 걸렸다.  핸드폰에 뜬 이체 완료 문구를 보고 관리인에게 송금을 완료했으니 확인을 바란다는 문자를 보냈다. 확인했다는 답장을 받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잔금을 치르고 미리 주문해 둔 청소기 박스를 뜯었다. 일단 청소기로 바닥을 한 번 돌린 후 어머니가 챙겨주신 행주를 적셔 바닥을 닦아 나갔다. 떼를 지운 다기보단 전 세입자와 방문자들의 흔적을 지운다는 생각으로 닦아 냈다. 몇 번을 닦아도 행주에 검은 떼가 묻어 나왔다.


열어둔 창문과 현관으로 늦은 겨울의 서늘한 바람이 들이쳤지만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방 청소를 끝내고 밖에 놓아뒀던 짐들을 안으로 들였다. 잠들기 전까지 일을 마무리 지으려면 쉴 시간 따위는 없다. 싶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싱크대와 화장실을 청소할 때 필요한 도구와 세제가 하나도 없었다. 집을 나섰다.


인근 마트에 도착해 청소용 솔, 수세미, 락스, 주방 세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콜라와 당장 마실 생수도 챙겼다. 세탁세제와 샤워용품은 쿠팡으로 주문하기로 하고 계산대로 향하는 길에 900원짜리 오이 비누를 하나 집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며 차로만 올랐던 언덕길을 처음으로 걸어 올랐다. 이제부터 얼마나 이 언덕길을 더 오르내릴까.


콜라 한 모금으로 당을 충전하고 수세미를 들었다. 싱크볼에 물을 받아 락스를 희석하는 것이 올바른 사용 법이긴 하나 개수대 마개가 없는 관계로 그냥 수세미에 락스 원액을 부었다. 상남자에게 고무장갑은 사치일 뿐. 맨손으로 락스 머금은 수세미를 잡고 대패질하듯 싱크대를 문질렀다. 락스 냄새를 뚫고 쇠 냄새가 올라왔다. 수세미 대패질이 다 끝나고 새 수세미를 꺼내 들었다. 그것으로 싱크대와 선반에 묻었을 락스를 훔쳐 냈다.


싱크대 청소를 끝내고 가져온 그릇들과 주방 도구들을 설거지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어디에 무엇을 넣어야 동선이 편하고 절약될지, 또 정리하고 남는 공간에는 무엇을 넣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그리는 동선과 요리를 할 때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동선은 상당한 차이가 있기에 분명 위치를 또 바꿀 테다. 이런 과정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그랬다. 천안에서 자취할 때도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은 친구들을 불러 늦은 밤까지 음주 가무를 즐기는 것도 아니요, 아무 때나 여자를 불러들여 시도 때도 없이 살색의 밤을 만끽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가구를 수도 없이 재배치해가며 가장 실용적인 동선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내 입맛으로 만들어진 요리를 앞에 두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며 홀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것, 샤워하고 나와 고추를 덜렁거리며 방을 싸돌아다녀도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것. 오히려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나를 설레게 했었다.


잠깐 숨 돌릴 겸 앉은 새 허기가 몰려왔다. 이삿날이니 만큼 중국음식을 시켜볼까 싶어 핸드폰으로 인근 중국집을 검색했지만 이내 맘을 접었다. 천안에서 자취할 때 중국집에 전화해 ‘짬뽕 하나도 배달되나요?’라고 물었다가 전화 너머의 사장님께 된통 혼난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는 차마 적지 못하겠다. 하물며 천안도 그랬는데 서울이라면 더 하면 더 했지 못 하진 않을 것이다.


‘탕수육을 같이 주문한다면… ‘


순간 유혹이 뻗쳤지만 보증금을 이체하고 남은 통장 잔고를 떠올리는 방법으로 쉽게 뿌리칠 수 있었다. 배달앱을 설치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음식값에 더해 배달비를 따로 지불해야 하는 시스템이 아무래도 맘에 안 들어 그만두었다.


결국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막상 나오니 무얼 먹으러,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부모님과 같이 식사했던 식당은 왠지 가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니 길 건너 연신내역 7번 출구 주변에 먹자골목이 있었다. 굳이 먼 길 나서고 싶지 않아 마트 가는 길에 봐 뒀던 편의점을 찾았다.




짐들을 한쪽으로 몰아 공간을 만들어 편의점에서 사 온 저녁거리를 두었다. 청소하느라 흐르던 땀은 이미 식은 지 오래. 열어뒀던 베란다 문과 창문을 닫았다. 수돗물을 끓여 식수를 마련하려고 가져온 무지막지한 10L짜리 주전자에 컵라면 물을 끓였다.

글에 언급된 주전자.


물이 끓을 동안 병천에서 가져온 짐들을 뒤적여 수건과 속옷을 찾아뒀다.


자취방에서의 첫 식사가 차게 식은 방바닥 위에 차려졌다. 차린 꼴이야 두 말할 것 없이 초라했지만 부모님과의 식사를 마지막으로 한 끼도 먹지 않았으니, 그 맛은 실로 대단했다. 걸신들린 듯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청소가 하나도 안된 화장실 꼬락서니를 애써 외면하고 느긋하게 샤워를 즐겼다. 배도 부르겠다, 더운물로 몸도 씻었겠다, 금세 노곤노곤해졌다. 방 한쪽으로 몰아 둔 짐과 싱크대 사이에 가방에 넣어 들고 온 이불을 아무렇게나 펴 두고 하루의 마지막 담배를 태우기 위해 흡연장으로 향했다.


늦겨울 밤바람이 퍽 쌀쌀했다. 흡연장 테이블 위에 가지고 나온 담뱃갑을 무심히 ‘툭’ 던져두고 의자에 앉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리 꺼내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몸속을 한 바퀴 돌아 나가는, 입김 섞여 평소보다 더 풍성한 담배 연기가 잠시 시야를 가렸다.


열 시가 되면 온 동네 불이 다 꺼지는 병천의 밤과 다르게 서울의 그것은 한적함과 거리가 멀었다. 이 밤에도 원룸 앞 골목길에는 오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앞날을 생각하며 잠시 감상에 빠졌다. 몸에서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오이 비누 냄새가 홀로 보내는 겨울밤에 감성을 한 스푼 더했다.


다 태운 담배꽁초를 뚝배기에 박아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테이블 위에 던져뒀던 담뱃갑을 챙겨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 올라타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그 짧은 새.


닫히는 문 사이로, 하늘을 가린 빼곡한 건물들 그 틈에, 미처 가려지지 않은, 밤하늘 한 조각. 드높은 그곳에 한없이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서울의 달이 있었다.


‘이날, 내가 본 달은 천안에서 본 그것보다 더 높았다. 더 멀었다. 그리고 더 흐렸다.'


2장. 마무리.

3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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