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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0. 2022

상경

2장. 4화.

“아, 예. 사장님. 죄송하지만 제가 한… 2,3 분 뒤에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바쁘신가 보다. 네. 알겠습니다.


홍카였다. 사장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분명 승일 앞에서는 합격 통보를 받더라도 매몰차게 거절하리라 단언했지만 막상 연락이 오니 보증금을 내어 주신다던 어머니 얼굴이 아른거렸다. 게다가 그나마 있던 통장 잔고도 면접 비용으로 써버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1층을 눌렀다. 지어진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오늘따라 유난히 느려 터졌다. 마음이 급했다.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상우 씨.


“예. 사장님 통화 가능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같이 일해볼까 해서요. 매니저랑도 얘기가 됐고 저희 남편이랑도 얘기를 다 해봤는데 면접자들 중에서 상우 씨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고 해서…


“아… 예. 감사합니다.”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번졌다.


-사실 저는 아직 걱정이 되거든요. 그… 결과가… 어떻게 그렇게 나와버려서… 그런데 매니저랑 저희 남편이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사장님은 아직도 성격 테스트의 결과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믿고 뽑아주신 만큼 제가 잘 맞춰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릴게요. 그런데 지금 천안에 계시지 않으세요? 일정 조율을 조금 해야 할 것 같은데…


“네. 당장 서울 오가면서 원룸 구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사정이 급해서 시간을 막 한 달씩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정이요? 어떤 사정이 급하신지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상우 씨 면접 후에 직원 한 명이 퇴사 의사를 전해서요.


“아…네. 혹시 그러면 2월 말까지 가능할까요? 2주 정도는 필요할 것 같거든요.


-2월 말이요? 그러면 저희가 직원이랑 퇴사 일자를 다시 얘기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바로 원룸 알아보면 될까요?”


-네. 바로 알아봐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아, 상우 씨! 상우 씨!


사장님은 전화를 끊으려는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우리 연봉! 연봉 얘기해야 돼요!


“아, 연봉… 얘기해야죠.”


가장 불편한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이력서에 희망 연봉이 이천 팔백으로 적혀있는 거 봤어요. 우리 연봉 말고 월급으로 얘기를 해볼게요. 호주 말고 한국에서 일하실 땐 얼마 받으셨어요?


“그때는 이백 받았거든요?"


-세전(세금을 공제받기 전 월급.) 이요?


“아뇨, 세후(세금을 공제받은 후 월급.)로 이백이요."


세전이 맞았으나 살짝 부풀리고자 세후라 답했다. 이 협상이라는 것이 사실상 말이 협상이지, 사장님의 직원 연봉 후려치기에 더 가깝다. 어차피 저쪽에서 후려칠 연봉, 그냥 한 번 찔러나 본 셈이다. 분명 사장님은 내가 입사한 후에 이런저런 서류들을 제출하고 나면 전 직장의 원천 징수 영수증을 확인할 테다. 그런데 자기가 내게 지급할 연봉이 내가 전에 받던 연봉보다 어차피 적다면, 내가 지금 얘기한 월급이 세전이었는지, 세후였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또 일, 이백 정도 적은 범위 내에서 부풀린 연봉은 어련히 ‘아 수당이나, 성과급을 포함해서 말했구나?’라고 생각할 테다. 그러나 크게 부풀릴 경우 채용이 취소될 수 있으니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이점 유의하시길 바란다.


-흠… 우리가 트라이얼 때 본 상우 씨는 사실 아직 배울 것이 좀 있더라고요.


역시. 한 치의 오차를 벗어나지 않는다. 시작됐다. 후려치기. 직장은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라고 엄포를 놓을 때는 언제고 월급 얘기가 나오자마자 배울 것이 있단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 않는다.


-저는 수습 기간 2개월에 세후 180 정도 생각하고 있거든요? 너무 적은가?


자기가 말하고도 민망한지 푸흐흐 하고 웃는다. 당장에라도 찾아가서 면상에 뺨따구를 후려갈기고 싶지만 입사가 아닌 입소를 하게 될 것 같아 참았다.


“수습 기간은 그렇다 쳐도 180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사장님.”


대신 정중히 부정의 뜻을 밝혔다.


-아무래도 그러시겠죠? 그러면 제가 다시 매니저랑 남편이랑 얘기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일단 집은 알아봐 주세요. 어쨌든 맞춰가면 되는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뭔가 개운치 못하다. 정해진 것 없이 기약적으로 통화가 끝나버렸다. 이 사람을 믿고 집부터 구하는 것은 너무 큰 모험이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자.




“연신내는 더 비싸져요. 거기까지는 안 가는 게 맞다니까…”


“아이, 그래도 한 번 보여주시죠. 헤헤”


“하… 참 우리 부동산 관할도 아니에요. 거기는.”


“그래요? 근데 전에 집 구할 때 보니까 다른 부동산이랑 막 연계해서 알아봐 주시던데요? 에이, 그러지 말고 한번 알아봐 주세요. 커피도 드렸는데… 부탁 좀 드릴게요.”


“어휴… 내가 이 커피를 왜 받아먹어서… 잠깐만 있어봐요. 그럼.”


부동산을 방문할 때 사들고 온 아메리카노가 한몫하는 순간이다. 합격 통보를 받은 다음날, 다시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결국 책정된 임금은 세전 195만 원. 2개월간의 수습 기간 동안은 90%의 임금만 지급하며 수습 기간은 매니저나 사장님의 재량에 따라 한 달 더 연장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천안에서 일할 때 받던 임금보다 5만 원이 줄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고 오른 최저 임금을 고려한다면 결코 5만 원만 준 것은 아닐 테다. 당장 몇만 원 더 높은 임금을 바라기보다 일단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 타협했다. 동시에 사장님은 퇴사 예정자와 시간 조율이 잘 됐으니, 2월 말에 상경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월세를 고려한다면 연신내 쪽을 추천한다는 정보도 덧붙이셨다.


전화를 받은 날 오후, 바로 만카로 달려가 부동산 앱을 들여다봤다. 앱에 올라온 수많은 매물 중 실제로 볼 수 있는 매물은 몇 안된다는 것은 천안에서 자취방을 구할 때 겪어 알고 있었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나마 괜찮은 매물들을 많이 올려놓은 부동산 한 곳에 연락을 했다.


그러나 내가 연락한 부동산은 연신내역을 서울 생활의 시작점으로 삼으려는 계획과 다르게 응암역에 있었다. 도착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이왕 온 김에,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응암역 주변으로 벌써 너덧채의 원룸을 봤지만 역시나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열흘 정도 뒤에 출근을 앞두고 있는 나는 이사와 집 정리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오늘 반드시 방을 계약해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중개인과 늦겨울 서울 한복판에서 연신내 매물들을 보네 마네 하며 실랑이를 하게 된 것이다. 핸드폰을 뒤적이던 중개인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기 응암 부동산인데요. 손님이 오셨는데 연신내 쪽으로 가야 한다네? 아이, 그러니까요. 하하. 아, 그래서 그쪽에 매물 좀 있나 해서요. 아, 예… 예, 있어요? 지금 갈게요.”


중개인이 전화를 끊고 주차해놓은 차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매물 하나 있대요. 타시죠.”


연신내에는 마땅한 방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중개인의 차에 올랐다. 가는 내내 중개인은 ‘이러면 안 되는데.’ 혹은 ‘이런 거 원래 안 해줘요.’라며 생색을 내기 바빴다. 아무래도 부동산 뽑기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신내에 도착해 본 집은 역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동시에 응암역에서 본 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은방이었다. 186cm인 내가 똑바로 눕기에도 벅찬 방 안에서 연신내 중개인은 시세 얘기를 들먹이며 나를 설득하기 바빴고 나는 이런 코딱지 방한 방을 위해 월에 오십만 원이나 되는 세를 지불할 수 없었다. 보증금을 걱정했었는데 진짜 문제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월세였다. 그러나 드높은 월세에 비해 방의 컨디션은 굉장히 떨어졌다.


“다른 방은 없나요?”


“아, 이 지역 시세가 다 이래요. 큰 방 가려면 가격도 올라간다는 걸 생각하셔야지.”


연신내 중개인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방에서 나와 연신내 중개인을 돌려보내고 나와 동행한 응암 중개인과 담배를 물었다.


“서울 월세 비싸죠? 천안 월세 생각하시면 안 돼요. 아무리 그래도 서울인데.”


중개인의 의도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방 구하기는 생각대로 되지 않고 시간은 없고. 그런 중에 저런 말을 들으니, 요즘 말로 서울 부심을 부리는 것처럼 들려 기분이 팍 상했다. 촌놈의 알량한 자존심이 괜한 곳에서 불이 붙은 것이다.


담배를 다 태우고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중개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미 천안으로 돌아가기를 마음먹고 있었는데 통화를 마친 중개인은 내게 한 곳 더 보고 가자고 말했다. 방금 자리를 떠난 연신내 중개인이 우리가 연신내에 방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연신내의 부동산에 알렸고 그 부동산에서 응암 중개인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역시 다들 연계하고 있었다.


연신내역 1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경사가 약 40도 이상인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언덕길을 오르면 모텔촌이 보이고 이곳을 지나면 원룸촌이 이어진다. 원룸촌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건물에 내가 봐야 할 방이 있었다. 1998년도에 발매되어 그 후로 10년 동안 흥행이 이어진 게임에 등장하는 건물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건물이었다. 이름부터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응암 중개인에게 연락한 부동산은 건물의 최고층인 6층에 있었다. 6층으로 올라가니 공인 중개사무소라 적혀있는 가정집 현관문이 보였다. 응암 중개인이 문을 두드리자 웬 할머니께서 문을 여셨다.


“안녕하세요. 응암 부동산인데 전화받고 왔거든요?”


“아, 예.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서자 가정집을 구색만 갖춰 개조한 사무실이 나왔다. 중앙에 있는 사무용 책상에는 키가 작고 빼빼 마른 남자가, 구석에 있는 소파에는 할아버지께서 앉아계셨다. 문을 열어주신 할머니께선 할아버지 옆에 앉으셨다. 사무용 책상에 앉아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았고 자신이 연락한 중개인이라 소개했다. 이어서 사무실의 노부부를 자신의 부모님이자, 이 건물의 주인이라고 덧붙였다.


그제야 건물 최고층에, 그마저도 구색만 겨우 갖춘 어설픈 부동산을 차려놓은 것이 이해가 됐다. 부모님이 건물주이기에 부릴 수 있는 배짱이구나 싶었다. 물론, 부럽기도 했고. 인사만 짧게 나누고 노부부를 제외한 우리는 방을 보기 위해 3층으로 이동했다.  


3층에 도착해 들여다본 방은 여덟 평 정도로 널찍했다.

글에 언급된 날 촬영한 실거주 원룸.


싱크대, 세탁기, 냉장고, 옷장 등 제공되는 옵션들은 낡았지만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베란다와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을 가득 머금은 장판 위에는 이미 누군가들이 보고 갔는지 무수한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물을 틀어보고 변기 물도 내려보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 가격을 물었다.


“오백에 삼십칠인데 관리비가 만 원 붙어요. 그래서 월에 삼십팔만 원이에요.”


연신내 중개인이 설명했다. 천안에서 살던 방보다는 삼만 원 정도 비싸지만 오늘 돌아본 방들보다는 십만 원 이상 저렴하다. 심지어 이 정도 방 크기라면 손 발 쭉 펴고 누울 수 있다. 너무 좋은 조건임에도 방을 보고간 그 누구도 이 방을 계약하지 않았다. 마치 방이 나를 들이고자 기다린 것처럼. 오래전 누군가 내게 뱉은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집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집이 사람을 들이는 것이다.’


계약 전까지는 좋아도 좋은 티를 내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로 기어이 티를 내고야 말았다. 응암 중개인도 맘에 든 내색을 숨기지 못하는 나를 보고 처음으로 웃었다.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다시 6층으로 올랐다.


내 앞에 계약서를 두고 두 명의 중개인은 항목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했다. 집주인 할아버지의 신분증과 계약서 상 건물 소유주의 인적사항이 동일함을 확인하고 세 장의 똑같은 계약서에 각각 서명을 했다. 또 그것을 어긋나게 겹쳐두고 서명을 했다. 그 위로 응암 중개인이, 또 그 위로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이어서 서명했다. 두 명의 중개인과 내가 계약서를 한 부씩 챙겼다.

 

그리고 계약서에 적혀있는 집주인 할아버지 계좌로 계약금(통상 보증금의 10%로 친다.) 50만 원을 이체했다. 두 명의 중개인을 통해 방을 구했지만 중개수수료는 나와 동행한 응암 중개인에게 딱 법정 중개수수료([보증금 + (월세 x 100)] x 0.4)만큼만 이체했다. 중개인들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건물주 할아버지와 소파에 앉아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옆에 앉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입을 여셨다.


“천규덕이를 닮았네. 등치도 그렇고.”


“누구요?”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있어요. 옛날 레슬링 선수.”


연신내 중개인과 얘기를 하던 응암 중개인이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피식 웃으며 내게 설명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개인들의 얘기가 마무리되었고 응암 중개인과 나는 밖으로 나왔다. 하루 종일 고생한 응암 중개인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나 홀로 연신내역으로 향했다. 가까웠다. 큰 보폭으로 걸어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강변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천규덕’을 검색했다.

故 천규덕 님. 출처 : 온라인 추모소


배우 천호진 씨의 부친이시자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셨던 분이셨다. 닮았나 싶어 지하철 승객들 몰래 셀카를 찍어 비교해봤지만 영 모르겠다.


집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하며 부모님과 이삿날을 상의했다. 집에 차가 있는데 왜 돈을 써가며 이사를 하냐는 아버지와 아들이 이사하는데 어미 된 입장에서 아들 살 집 한 번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의견이 일치해 이사는 직접 하기로 했다. 2019년 2월 말, 2018년 11월부터 이어진 1년이 넘는 긴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나는 상경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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