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1화.
“야, 너 불알 한 번 만져봐. 이게… 불알이 있잖어? 다른 데보다 살짝 차가워. 너 이게 왜 그런 줄 알어?”
얼큰하게 술이 오른 명준이 바지 안에 손을 넣으며 내게 물었다.
“뭐래는 겨, 병신이… 손 빼, 새끼야.”
혹시나 누가 볼까 주위를 살피며 일축했다. 그럼에도 그는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어 나갔다.
“불알에 정자가 있잖어? 그게 단백질이잖어? 단백질은 열에 약하단 말여? 그래니까 여기가 살짝 차가운 거여. 그니까 내 말은, 이게 너무 따땃하면 안 된다고. 새끼야… 살짝 추운 게 남자한테 좋은거여.”
편의점만 남기고 모든 불이 꺼진 아우내 장터엔 지나는 개 한 마리 없었다. 대학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명준과 나는 천안에서 공부로 알아주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배웠다는 자식이 아무 근거 없이 입을 나불거리지는 않을 터, 나도 자세를 고쳐 앉아 바지 안에 손을 넣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차가웠다.
“너 몽골 얘덜이 있잖어? 왜 걔덜이 그렇게 쎈 줄 알어? 너 지금 검색해 봐. 걔덜 등치가 장난이 아니잖어? 걔덜이 추운데 살아서 그런 거여. 러시아 얘덜도 글쿠... 시베리아 새끼야. 시베리아… 거 알지? 졸래리 추워 거기… 우리도 따지고 보면 몽골 그짝(그쪽.) 유전자여. 살짝 춥게 살어야 강해지는 거여.”
“야, 대충 뭔 말인지는 알것는데. 손은 왜 주물럭 … 아오, 씨바, 좀! 그러다 터지겄어!”
“마사지여. 새끼야. 마셔.”
명준이 푸시시 웃으며 주무르는 손은 그대로 두고 반대 손으로 맥주캔을 들어 내 앞에 들이 민다. 나도 물방울이 맺힌 맥주캔을 들어 부딪혔다. 낮에 불던 훈풍보다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열대야를 식히지는 못했다. 아무도 지나는 이가 없던 아우내 장터 한구석, 편의점에 앉아 우리는 각자의 불알을 주무르며 맥주를 아니, 추억이 될 순간을 마셨다.
여름이었다.
연신내 원룸에서 보내는 첫날밤이었던 어제, 자리에 눕자 등에 한기가 올라왔다. 그러나 언젠가 명준이 주장했던 대로 ‘추위에 강한 몽골리안의 피가 흐르는 내가 3월이 다 돼가는 늦겨울에 얼어 죽기야 하겠냐!’는 배짱을 부려가며 보일러를 틀지 않았다. 나이 서른에 고작 8평 원룸 데우는 가스비가 무서웠기 때문이라고는 차마 적지 못하겠다.
다시 밝은 아침. 코가 시렸다. 얼어붙은 허리를 겨우 접어 일어나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천안에서 자취할 때 썼던 3만 원짜리 전기장판을 검색했다. 이제껏 구매했던 두 장 다 세 달을 못가 고장이 났었다. 전기장판이 한 철도 버티지 못했던 이유는 싸구려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뽑기 운이 좋지 않아서라는 합리화를 하며 또 같은 것을 주문했다. 나이 서른에 5만 원 더 보태서 고장이 덜 나는 유명 브랜드 전기장판을 주문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는 역시 적지 못하겠다.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시작도 못한 테이블 조립을 서둘렀다. 세상 모든 수컷들이 그러하듯, 설명서 따위는 한구석에 치워두고 여러 종류의 나사를 여기저기 맞춰 보며 뚝딱대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상우 씨 이사는 잘하셨어요?
합격 통보를 받은 후 홍카의 사장님으로부터 걸려 온 두 번째 전화였다.
-다름이 아니라, 그만둔다는 직원 때문에 저희가 또 면접을 진행했거든요. 그런데 합격하신 분이 다행히 바로 출근 가능하다고 하셔서 상우 씨 출근 날짜를 조금 더 미뤄도 될 것 같거든요?
마침 청소도 덜 된 상태였고 이런저런 할 일도 있었기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실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빠르게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지만, 가정이 어지러우면 나라가 어지러운 법이라 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고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했으며 발묘조장이라 함과 동시에 Make haste slowly. 라 했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정리가 아직 하나도 안돼서…”
-아, 그러시구나. 그럼 잘 됐네요. 저희도 사실 두 분을 한 번에 모셔서 교육하기가 조금 벅찰 것 같거든요. 그러면 일단은 한… 이틀에서 길게는 삼일 정도만 출근 날짜를 미룰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이틀에서 삼일 정도 미루는 걸로 해서 스케줄 짜보라고 저희 매니저한테 얘기할게요. 아, 그리고 이거 말씀드려야 하는데…
“어떤 거요?”
-저희 로스팅하는 거 아시죠? 카페에서?
“어? 그거 직원들도 알려주시나요?”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로스팅은 제가 전담해서 하고요. 알려드리거나 하지는 않아요. 저희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로스팅을 하는데 로스팅한 원두 포장 업무를 오픈 근무하는 직원들이 도와주고 가야 하거든요. 근무 마치고 한… 15분 정도?
“아… 예…”
-사실 이게 면접 볼 때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그날 정신이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어요. 괜찮으시죠?
괜찮을 리가 없다. 모집 공고의 담당 업무란에 명시되어 있어야 할 내용을 출근을 앞둔 지금에서야 얘기한다는 것이 영 껄끄러웠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 달 치 수당이 모이면 꽤 두둑할 테니.
“네, 뭐… 알겠습니다.”
-예, 그럼 매니저한테 스케줄 카톡으로 보내라고 전달할게요. 그때 봬요.
“예. 들어가세요.”
사실 사장님이 로스팅 얘기를 꺼냈을 때 꽤나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사장님은 면접 때 보여줬던 그녀의 단호한 성격대로 단칼에 잘랐다. 바리스타를 업으로 한평생 벌어먹을 수 없다는 것은 일찍이 깨우쳤다. 일례로 불과 얼마 전 천안에서 일자리를 구할 때도 서른이라는 나이가 발목을 잡았다. 때문에 언젠가는 꼭 로스팅을 배워두고 싶었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 무시 못 한다 했으니 요령껏 훔쳐보리라.
통화를 마치고 친절히 그것을 동봉해 준 가구업체의 성의를 생각해 방바닥 한편에 치워 뒀던 설명서를 (굳이 보지 않아도 조립할 수 있었지만.) 다시 집어 들었다. 역시나 생각만큼 조립 방법은 간단했다. 인터넷에 자취인들이 올려둔 원룸 인테리어를 참고해 자그마한 아일랜드 식탁을 들일까도 생각했지만 방 컨디션을 봐서는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고 경제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분명한 사치였기에 단념했다. 대신 조립한 테이블을 싱크대 앞에 배치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완성된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영양제, 로션 등을 정리하고 얼마 되지 않는 옷 정리도 마쳤다. 둘러보니 혼자 사는 삼십 대 남자 방 치고는 꽤 그럴싸했다.
전기밥솥에 밥을 안쳐놓고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자주 이용하는 ‘P’로 시작하는 야동 사이트에 접속했다.
면 거짓말이고 집 주변의 헬스장을 검색했다. 호주에서 돌아온 후 병천에서 지낼 땐 인근 대학교의 부속 헬스장을 이용했었다. 학교의 보안을 담당하는 보안 요원들이 병천에서 나고 자란 선, 후배, 그리고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한편으론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제공하는 시설을 보안 요원들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맘대로 드나들어도 되는가 싶었으나, 이미 오래전 대학교 측과 병천리 이장님들이 병천 면민에게 무료 개방하기로 협의했었다는 사실을 듣고 가책을 덜어냈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정액권을 끊어야 했다. 어느 정도 조건이 충족되는 몇 군데를 골라 그중 가장 저렴한 곳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검색해서 나온 헬스장들을 거리 순으로 나열했다. 당장 돌아보고자 했지만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 곳이 꽤 있었기에 에라, 모르겠다. 출근도 밀렸겠다, 방문은 내일부터 하기로 했다.
이사를 마치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라 한다면 응당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발급이라 할 수 있겠다. 천안에서 자취할 때는 임대차 계약서를 들고 직접 주민센터를 찾아가야 했었는데 세상 좋아진 지금은 인터넷 등기소에서 쉽게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쯤에서 독자 여러분들께 감히 한 말씀 올린다면 우리 너무 이성적으로만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 안 그래도 빡빡한 우리네 인생살이, 가슴속 낭만이란 이름의 꽃 한 송이 품고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장 초입부터 불알 얘기를 잔뜩 적어놓고는 이제 와서 뻔뻔하게 낭만을 찾는 네가 사람 새끼냐 하시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적고 싶다. 이사를 마치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걸어서 집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로도 검색되지 않는 ‘공간’들이 있으니, 예를 들면 자취방에서 약 5분 정도 떨어진 골목에 덩굴장미로 지붕을 올린 계단이 그랬다. 이 때는 마른 덩굴에 휘감긴 철사들이 머리 위에 우거져 그저 을씨년스러웠지만 같은 해 여름, 과식으로 잠들지 못한 어떤 날, 소화나 시킬 겸 나간 새벽 산책에서 나는 낮의 열기가 식은 계단에 앉아 흐드러진 덩굴장미를 올려다 보며 가스로 가득 찬 부른 배를 달랜다.
그렇게 30분 정도 정처 없이 동네를 둘러보고 도착한 마트. 이사 첫날이었던 어제,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간 고사를 지내기로 했다. 출근이 연기되어 공짜 시간이 생긴 오늘마저 미룰 수는 없다.
우리에겐 고사라는 민간 신앙이 있다. 현대에 들어서도 차를 샀다던지, 새 집에 이사를 했다던지 혹은 사업 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행해지곤 한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안 어르신들도 종종 큰집에 모여 고사를 지내곤 하셨다. 괴물, 살인의 추억 그리고 기생충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봉준호 님 또한 영화 개봉 전에 고사를 지낸다. 언젠가 연예 프로그램에서 영화 설국열차 팀이 고사 지내는 걸 방영한 적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훗날 개봉한 영화보다 주연배우인 크리스 에반스가 고사상 앞에서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절하는 모습이 더 재미있었다는 사실은 차마 적을 수 없다.
아무튼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내가 이사를 하고도 고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이 씨 가문 조상님들께서 천인공노하실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테니, 조금 귀찮더라도 수고를 자처한 것이다. 절대로 다시 찾은 자유를 만끽하며 그리고 그리던 혼술을 즐기기 위해 술안주를 마련하려고 마트에 들른 것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고사상 메뉴는 삼겹살로 정했다. 내 어머니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남자는 지갑 열 때를 알아야 한다.’고. 그 가르침대로라면 나 잘 되자고 지내는 고사니 지금이 지갑을 열어야 할 그때라 할 수 있겠다. 하여, 통장 잔고는 잠시 외면하고 최대한 좋은 고기를 업어가기로 했다.
삼겹살 상차림을 위한 장을 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병천에서도 천안에서도 몇 번이나 같은 구매 목록으로 장을 봐왔다. 입구에 쌓여있는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집어 들고 곧장 정육코너로 향했다. 한때는 벌집 삼겹살로 불렸던, 칼집이 난 삼겹살 중 가장 두껍게 썰린 것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호주에서 돌아온 내가 자주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가장 그리웠던 한식이 뭐였는지.’였다. 나는 ‘쌈장 찍은 국산 삼겹살’이라 답했다. 호주에도 삼겹살을 팔기는 하지만 국산 삼겹살보다 질기고 오도독뼈도 억새 배부르게 먹어도 뭔가 아쉬운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야채 코너에서 파채, 깻잎, 상추에 깐 마늘까지 야무지게 담았다. 천안에서 자취를 할 때 언젠가 깐 마늘과 통마늘의 가격차이를 보고 통마늘을 구입했던 적이 있다. 직접 까서 냉동 보관하려 했지만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만 자라온 내게 마늘 까는 요령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날, 스물여섯의 상우는 오랜만에 맞은 휴일을 단출한 원룸에서 하루 종일 마늘만 까며 보냈다. 고작 몇천 원 아끼자고 할 짓은 못된다 생각해 이후로 마늘을 살 때면 항상 깐 마늘을 집었다.
주류 코너로 이동하던 중에 쌈장을 하나 담았다. 주류 코너에서는 고민하지 않고 ‘이슬’을 담았다. 술을 배우고 나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지역 별로 마시는 소주가 다르다는 것. 대전, 충남지방은 대체로 ‘린’을 마신다고 한다. 병천 또한 충남에 속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주변 모두는 ‘이슬’을 마셨다. 아버지도 ‘이슬’을 드셨는데 어린 내 눈에 ‘아빠가 드시는 이슬은 좋은 술, 다른 술은 안 좋은 술.’로 비쳤던 기억이 남아있다. 나도 자연스레 ‘이슬’로 술을 시작했고 그 입맛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순식간에 장을 보고 돌아와 상차림을 준비했다. 창문과 베란다 문을 열고 가스레인지 위의 덕트를 켰다. 핸드폰으로 유튜브 영상 하나를 골라 재생해두고 그것을 싱크대 위, 물이 튀지 않을 만한 곳에 비스듬히 기울여 세워뒀다.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작업환경이 완성됐다.
먼저 가스레인지에 팬을 올려두고 불을 켰다. 팬에 열이 충분히 오를 동안 쌈채소를 씻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가정 과목 시험에 채소와 과일을 씻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묻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다. 그 답은 ‘4번. 흐르는 물에 살짝 씻는다.’였다. 공교육의 가르침대로 물을 틀어두고 흐르는 물에 살짝살짝 씻어 나갔다. 그 와중에 팬이 달궈져 물 묻은 손을 옷에 슥슥 문질러 닦고 고기를 올렸다. 손에 물기를 닦아낸 김에 영상 중간에 재생되는 광고도 건너뛰었다. 그리고 다시 쌈채소를 씻었다.
다 씻은 쌈채소를 따로 모아 두고 밥그릇을 하나 꺼내 쌈장을 퍼담았다. 그 위에 마늘을 저며 올렸다. 팬 위의 삼겹살을 뒤집었다. 캐러멜 그 색이 여지없이 황홀하다. 이대로 또 한동안 두어야 할 테니 그 틈에 파절이를 만든다.
사온 파채를 뜯어 위생봉투에 넣고 간장, 식초, 설탕을 각 1:2:1 비율로 넣는다. 레시피랍시고 비율을 적긴 한다만 정작 만들 땐 감으로 때려 넣는다. 그리고 고춧가루로 마무리. 고춧가루는 각자 취향대로 넣는다. 위생봉투 주둥이를 움켜쥐고 마구 흔들어 준다. 정신 놓고 흔들다 보면 먹음직스레 버무려진 파절이가 완성된다.
이 파절이로 말하자면, 내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대대로 전수되어 온 남원 윤 씨 종갓집 비법 파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것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으로 우리 이 씨 가문으로 전해졌더랬다.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무렵, 파절이 비법을 전수해 달라던 내게 어머니는 ‘딸이 아니면 전수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그러나 보름 하고 다시 보름 동안 식음을 전폐하는 나의 고집에 결국 눈물을 흘리시며 ‘절대로 남들 앞에서는 파절이를 만들지 말거라.’라는 말씀과 함께 전수해 주셨다.
면 거짓말이고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옆에 두고 직접 간을 보게 하며 가르치셨다.
소주잔이 없어 머그컵을 꺼냈다. 눈대중으로 소주잔 한잔만큼 따라두고 미리 골라 둔 영화를 틀었다. 술상을 앞에 두곤 어떤 영화라도 좋다.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것도 좋다. 어디에서 웃고 어디에서 우는지 이미 알고 있지만 술에 취하면 뭐든 재미는 있다.
영화를 곁눈질하며 크게 한 쌈 마련한다. 사실 쌈채소로는 상추보다 깻잎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깻잎만 상에 올려두면 타고난 변덕 때문인지 꼭 상추가 아쉬워 언젠가부터 두 가지를 다 준비하게 되었다. 상추와 겹친 깻잎 위에 고기를 두 점 올리고 고기 위에 파절이를 소담스럽게 올린다. 그렇다고 고기를 다 덮지는 않을 만큼만.
그리고 또 그 위에 저며놓은 편 마늘에 쌈장을 듬뿍 찍어 올린다. 다 감싸 지지 않는 쌈을 아슬아슬하게 오른손에 든 채, 왼손으로 머그잔에 따라놓은 소주를 들이켠다. 입에 씁쓰름한 소주 맛이 다 퍼지기 전에 오른손에 들고 있던 쌈을 냅다 입에 쑤셔 넣는다. 처음부터 다시 반복한다.
영화가 중반부에 접어들 때쯤 고기가 동났다. 이슬은 채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했다. 아버지로부터 술과 음식은 남기는 것이라 배웠다. 남은 소주는 냉장고에 넣어뒀다 방바닥이나 책상 따위를 닦을 때 꺼내 쓰면 좋다. 정리는 담배 한 대 태우고 와서 하기로 하고 1층 주차장으로 향했다.
누구들이 이렇게 다녀갔는지 오늘도 뚝배기에 꽂혀있는 담배꽁초가 무수했다. 꺼내 문 담배에 불을 붙여 한껏 빨았다. 그리고 머금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호주에서 돌아와 일하지 못한 지 꼭 네 달이 되었다. 일자리는 구해졌지만 출근 전이어서 그런지 호주에서 느꼈던 초조함이 괜히 도졌다.
호주에서는 급여를 주마다 한 번, 주급으로 받듯이 방세도 매주마다 지불해야 했었다. 도착하자마자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도 그랬다. 직장은 구해지지 않고 방세는 매주 나가고. 돈이 먼저 떨어질지, 직장이 먼저 구해질지... 이 피 말리는 게임을 견디지 못해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귀국하는 한국인들이 굉장히 많다고 들었다. 다행히 나는 후자에 속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이 서른에 부모님께 손 벌려 빌린 보증금과 생활비를 들고 상경했다. 인생사를 뒤돌아보면 나는 순탄히 직장을 잡은 적이 없었다. 매번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가며 입맛에 맞는 직장이 잡힐 때까지 이곳저곳을 전전했더랬다. 혹시나 홍카의 근무조건에 내가 확인하지 못한 치명적인 하자가 있으면 어쩌나. 사장님 말대로 직원들과 마찰이 있으면 어쩌나. 그때 내가 이 악물고, 눈 꼭 감고 버틸 수 있을까. 다년간의 빅데이터로 봤을 때 답은 ‘아니오.’였다. 그러면 월세는 다달이 나갈 것이고 나는 돈이 떨어지기 전에 직장을 잡아야 한다. 호주에서 겪었던 피 말리는 게임이 재현되는 것이다.
에이, 됐다. 첫 출근 전에 힘 빼지 말자. 천안에서도 혼술을 하면 방에서 나와 담배 한 개비 입에 물고 괜한 청승을 떨었더랬다. 이 또한 천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술기운이 부른 막연한 불안감일 테다. 무수한 담배꽁초 사이에 꽁초를 하나 더하고 다시 3층으로 올랐다. 살짝 알딸딸한 서울의 두 번째 밤이 저물었다. 역시 보일러는 틀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