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호주의 내가 오늘 서울의 나에게. -3-
뭐라도 끄적이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까.
그렇게 메모장을 열었다.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불특정 어딘가를 바라보던 중 갑작스레 스친 생각은.
어디 하나 마음 놓을 곳 없고 어느 누구 하나 맘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조금씩 지쳐가고 피로는 쌓여가는 중인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런지.
일 년.
네 달을 보냈고
여덟 달이 남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두렵다.
어딜 가던 맘이 편치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끝낼 날이 아득하다.
우리들의 것과는 다른 낯선 방식의 인간관계가 조금은 서럽다.
순간순간이 너무 빠듯한 일상에서 요 몇칠.
이곳에서 만난 얼마 안 되는 인간관계지만 그 안에서 작은 문제들이 겹치고 겹쳐 정신적으로 편하지 못한 나날을 살았다.
모든 관계의 문제를 나에게서 찾으려는 습관이 언제부터 있었는진 모르겠다만 이 시점에선 예전의 나처럼 모든 문제를 처한 상황에게, 타인에게, 돌릴 수 있는 뻔뻔함이 참 그립고 간절하다.
네 달.
한 가지는 이미 바닥난듯하다.
요즘 나는 고개 숙이는 것에, 미안하다는 말을 뱉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듯하다.
네 달 전만 해도 너스레 떨며 기분 좋게 넘어갈 수 있는 실수에도 지금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더 불쌍해 보일지, 어떤 목소리로 뱉어야 더 가엾을지...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더러운 습관이 남을까 심히 걱정이다.
위로를 바란다. 격려해 줬으면 좋겠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29살 조금 늦은 성장통이라고 얘기해 줬음 좋겠다.
말씀대로.
지금 이렇게 힘든 내 모습이 내 시간이 부디 헛된 것은 아니기를. 이제 지나갈 내 시간들 중 단 한순간이라도. 지금 이곳에 잘 왔다고, 버텨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앞으로 있기를.
18,08,20 밤 11:41
164 Burwood east. Melbourne.
Radiohead-Fake plastic tre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