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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저항.

by 상우

출근길.

연서시장 버스 정류장에서 7211번 버스에 올랐다. 오르는 승객들을 기다리느라 정차한 버스 안에서 연서시장을 바라본다. 아침부터 분주하다. 5월에 들어서며 기온이 급작스레 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의 닫혀있는 창문을 연다. 귀에 꽂은 무선이어폰이 빠져 창 밖으로 떨어질까 걱정되지만 출근 전부터 이마에 흐르는 땀으로 길을 내고 싶지 않다.


승객들이 오르길 기다리던 버스가 문을 닫고 출발한다.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창 밖으로 보이는 연신내 원룸촌. 차림새로 보아,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원룸촌 옹기종기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다. 마스크를 썼더래도 그들의 나이대가 내 또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별을 불문하고 마스크 안 표정이 지금의 나와 똑같을 것이라는 것 또한…


회사원 무리의 선두에 선 남자의 몸매는 이미 무너져 내렸다. 바지 안에 구겨 넣은 셔츠가 빠질 틈이 없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삼십대 남성의 평균 몸매.jpeg에 나온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 jpeg.


괜히 또 염세적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내 또래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 사원, 대리급 일 테다. 21년도 중소기업 평균 연봉은 3천만원 초반대. 대기업 직원이 아니라면 차, 과장급이 아니고서야 실수령 300이 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야근까지. 수당은 지급되지 않을 것이다. 이름하야 포괄임금제.


퇴근 후 쌓인 스트레스를 그 나름대로 풀텐데 몸을 봐선 그 수단이 운동은 아닐 것이다. 적으면 주에 2회, 많게는 퇴근 후 매일. 저녁식사와 곁들이는 소주 한 병이 위로일 인생.


'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내 인생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네 인생일 테다. 흡사 쳇바퀴 안의 햄스터. 나는 그의, 나의, 우리의 그런 인생을 응원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말했다.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맞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귀한 자식이니까, 어딜 가서도 귀한 대접을 받아야 돼.”


그래서 나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저항하고 싶다. 반항하고 싶다. 도전하자는 상투적이고 뻔한 얘기가 아니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자는 무책임한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뒷 생각 없이 지르고 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사소한 저항.


매일 똑같을 일상의 쳇바퀴를 벗어나기 위해 하던 것들을 하지 않고 하지 않던 것들을 시작하는 아주 사소한 저항 아니, 어쩌면 반항.


학창 시절에는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간섭이었고 잔소리였지만 지금은 어떤 것 보다 절실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진짜 무서운 것은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일테다. 그래서 에라이, 씨팔. 내가 바뀌기로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적기 시작한 글이 어느덧 60편을 넘어섰고 약 45편가량이 블로그에 업로드되었다. 그러나 블로그 방문자 수는 조금 느는가 싶더니 다시 잠잠하다. 글이 올라가지 않는 날에는 아직도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냥 적는다. 누가 보더라도 상관없고 어떤 평가가 내려지더라도 개의치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아주 짧은 시간의 글쓰기 하나 만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내 머릿속의 난잡했던 것들이 정리 되기 시작했다. 삼십대에 들어서며 매일 같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던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문장씩 적어가며 과거를 담아내고 한문장씩 적어가며 오늘을 담는다. 글에 담아 털어내고 글에 묻는다. 그렇게 나를 아프게 하던 것들은 보내고 좋게 하는 것들만 남긴다.


남은 것들이 요즘의 나를 설레게 만든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일상을 무너뜨릴만한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사소할 지라도 하던 것을 하지 않고 하지 않던 것을 시작함으로써 우리의 인생은 변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대들과 나의 쳇바퀴 도는 인생을 응원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다만, 아주 작고 사소할 테지만, 그대의 하루를 변하게 할 사소한 반항과 저항의 몸부림을 나는 응원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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