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동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
이 글은 내 고향 대방동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다.
나는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방동에 살면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거기서 교회를 다니면서 기독교를 알게 되었으며 거기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어렸을 적에 가족, 학교, 교회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세 곳이다. 이미 브런치스토리에서 매거진 형식으로 올렸던 [걷거나 타거나 1]이 주로 나의 가족과 내가 자랐던 대방동 동네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번 글은 주로 학교와 교회에 관한 것이다.
지금도 첨탑이 있기는 하지만, 낡고 네모난 건물처럼 보이는 대방교회는 예전에는,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그림엽서에서 흔히 보이는 작은 교회처럼 뾰족한 첨탑이 있고 천장이 세모난 모양으로 높았으며 교회당의 좌우 벽에는 격자 유리창틀을 갖춘 세로로 긴 창문들도 있었다. 양쪽으로 열어젖히는 넓은 짙은 초록색 교회 대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정면에 높게 솟아오른 계단이 있었는데, 그 계단을 올라가야 교회 본당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었다. 그렇게 높은 계단이 있었던 이유는 교회 앞쪽 땅에 비해 뒤쪽 땅이 높았고 본당은 뒤쪽까지 길게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본당 아래에는 그리 넓지 않은 1층 예배당 겸 교육관이 있었고 그 옆에는 여러 개의 교실이 있었다. 예배당 왼쪽에는 아주 작은 마당이, 오른쪽에는 훨씬 더 넓은 마당이 있었으며, 그 마당 한쪽 구석에는 교회를 관리하는 집사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린이 성가대 시절에 성가 연습이 끝난 후 우리는 그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본당으로 올라가는 높은 계단 아래에는 둥그런 아치 모양의 근사한 터널이 있었다. 그 터널 양쪽에는 돌 의자가 길게 놓여 있어서 더운 날이나 비가 오는 날 사람들은 그 터널에 들어가서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개발 붐에 맞춰 그 아담한 교회 건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성냥갑처럼 네모난 콘크리트 건물이 지어졌다. 현재 있는 교회당은 그 후에 또다시 재건된 건물인 듯하다. 대방교회가 있는 골목 남쪽에는 지금도 강남중학교가 있고, 강남중학교 앞에 있는 여의대방로를 건너면 대방시장이 있다.
바로 그 대방시장에서 나는 태어났다. 이후 잠시 왕립리에서도 살았던 우리 가족은 내가 네 살 무렵에 대방교회가 있는 골목으로 돌아왔다. 내가 살던 동네는 지금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도로는 그대로라 옛 모습을 헤아리기에 충분하다. 우리 집은 교회에서 강남중학교 쪽으로 네 번째 집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골목에서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살았으니, 나의 어릴 적 추억은 대부분 대방동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글에 나오는 여러 에피소드는 그곳에서 자라면서 내가 직접 겪은 경험에 기초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그 바탕에 개연성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상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상상은 그때의 경험과 감정을 모두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됐다.
나는 이 성장 기록을 그저 추억담이 아니라 소설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일반적인 소설 형식으로 적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기억의 구체성과 진실성이 떨어지면서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변할 것만 같았고 시간의 연속성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내 글은 전반적으로는 시간의 연속적 흐름을 타고 있지만, 종종 구체적 에피소드는 자체적으로 전개되면서 다른 에피소드와 차별적으로 시간의 연속성을 건너뛰기도 한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삶도 따라서 변화하지만, 그곳에서 쌓은 나의 추억은 거의 잊히지 않고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어떤 친구는 어떻게 그때를 세세하게 기억하는지 놀라기도 하지만, 그 내용은 주로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일기장에서 나온 것이다. 그때 나는 매일 일기를 성실하게 쓴 것은 아니다. 그저 사나흘에 한 번씩 생각나는 대로 썼으며, 어떤 때는 몇 달이나 쓰지 않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일기를 자세히 읽다 보면, 아직도 나는 그때 나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무난히 추적해 나갈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적어도 내가 겪은 다양한 경험을 나는 대체로 기억해 낼 수 있다. 그 일기에다 모두 적지 않았지만 여전히 내 머리에 남은 기억을 더해서 나는 그 흐름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면, 나는 기꺼이 사건이나 상황의 개연성을 존중하면서 나의 상상력을 더했다.
그 감정과 경험을 적는 데 있어서 나는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아무 부담이나 해를 끼치지 않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대체로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다. 그들은 과거의 추억을 부분적으로 나와 함께 공유하고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여 적은 글은 오롯이 나의 책임에 속한다.
이 글에는 아름다움과 어색함과 고난이 뒤섞여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 추억을 그리워하고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이 이미 사라졌음을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지나간 과거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나는 그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제 와서 그 시절을 되짚는 것은 그때가 나의 어린 시절이었고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시기는 내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나의 정체성과 사상이 확립되고 독립된 개인이자 성인이 되어 가던 때다. 어쩌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지나간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바로 그 시절이 내가 지금 스스로 알고 있고 남들도 나로 인정할 수 있는 ‘나’로 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니 그때가 진정한 나의 ‘나 됨’의 초창기였다. 작은 새가 겨우 날개를 파드득거리면서 자기 둥지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려 애쓰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