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교회의 추억
1.
즐거웠던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이듬해 1월 말의 어느 토요일 오후.
여전히 겨울방학 중이었고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계절이었다. 전날 내린 눈으로 길거리에는 녹지 않은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두꺼운 구름이 온종일 머물러서 하늘은 무거워 보였고, 언제라도 또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바람은 잔잔했고 그리 춥지도 않았다.
밖으로 나갈 때는 장갑이나 모자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얼마 전에 어디에선가 모자를 잃어버렸고 장갑 한 짝은 끝부분에 구멍이 나서 다른 한 짝만 끼고 다니기도 어려웠다. 여자아이들은 모자도 쓰고 장갑도 끼고 스카프도 하고 다녔지만 남자아이들 중 그렇게 모두 갖추고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형제자매가 많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모자와 장갑과 스카프를 사는 것도 벅찬 시절이었다. 검은 교복과 교모를 쓰고 다니는 나의 형도 장갑만 끼고 다녔을 뿐 코트도 없이 다녔다. 추울 때는 아랫목에 눕든지 난롯가에 있든지 옷을 잔뜩 입는 것이 상책이었다.
온종일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은 채 동화책이나 읽으면서 뒹굴던 나는 점심을 대충 먹고 나서 2시가 조금 넘었을 때 교회로 향했다. 어린이 성가대는 여느 때처럼 합창 연습을 위해 토요일 오후에 교회로 모여들었다. 예배당 안에 있는 네 개의 커다란 난로 중 성가대석에 가까운 한 개의 난로는 뜨겁게 타올랐다. 교회 관리 집사님이 성가대가 연습하는 것을 돕기 위해 낮부터 석탄을 잔뜩 넣어주었던 덕이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일찍부터 교회로 왔으며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았다. 2시 반 정도에는 강영근 지휘자와 피아노 반주자도 예배당에 도착했다. 난로에서 멀리 떨어진 성가대석에 앉으면 약간 추웠지만 합창 연습은 시작됐다.
그렇게 연습 시간이 사십 분 정도 지났을 때 창밖을 보고 누군가 말했다.
“눈 온다.”
아이들은 모두 창밖을 바라보았다. 잔뜩 흐린 하늘에 낮게 깔린 구름들로부터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세로로 긴 창문 밖으로 흰 눈이 날리는 것을 보면서 노래하는 것은 꽤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래서 그런지 성가대원들은 모두 뭔가 설레고 기분이 약간 들뜬 날이었다. 성가 연습이 끝난 후에 교회 마당에서 놀 생각을 하자 우리는 약간 조급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너희 모두 나가서 놀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지? 연습 그만할까?.”
지휘자는 우리가 자꾸만 창밖을 보면서 눈이 온다고 소근거리기도 해서 들뜬 분위기를 파악한 듯 말했다. 다음날 부를 찬송은 비교적 쉬운 곡이라서 오래 연습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네. 그만해요.”
성가대 아이들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크게 외쳤다.
마침내 성가 연습이 끝난 후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교회마당으로 뛰어나갔다. 교회 관리 집사님이 넓은 흙 마당을 싸리비로 열심히 쓸어놓았기 때문에 담과 나무들이 있는 곳에는 하얀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아이들이 서른 명이나 되었으므로 우리는 두 편으로 나뉘어서 눈싸움을 하기로 했다. 숫자가 적은 남자애들이 한 편이 되고 숫자가 훨씬 많은 여자애들이 다른 한 편이 되었다. 눈싸움에 적극적인 남자아이들은 격렬하게 눈을 뭉쳐서 던졌고, 이에 질세라 여자아이들도 숫자를 믿고 눈뭉치를 던졌다. 이윽고 어린 남자아이들은 두 편을 가르는 중간선을 넘어 여자아이들에게 돌진했고, 이어서 아이들은 모두 서로 달려들어 백병전을 하듯이 상대방에게 눈을 던지고 상대방 머리에 눈을 뒤집어 씌우기도 했다. 아이들은 꽥꽥 소리를 지르고 쫓고 쫓기면서 뛰어다녔지만, 약간 붉어진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와 상석은 일부러 상숙과 지향 등 다른 동급생 여자아이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지향은 안경을 끼었으므로 곧 아래층 예배당 안으로 도망갔고, 열성적인 상숙은 성이 나서 더욱 열심히 우리를 향해 눈뭉치를 던졌다. 그래도 우리가 잘 맞지 않자 그녀는 상석에게 다가가서 머리에 눈을 뒤집어 씌웠다. 상석도 안경을 썼기 때문에 도망 다니다가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상숙이 나에게도 그렇게 공격할 것을 바랐지만 감히 나에게 덤벼들지는 않았다. 그랬더라면 나는 일부러 큰 눈뭉치로 그녀의 얼굴을 맞히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눈싸움을 하면서 마당을 어지럽히면 교회 관리 집사님이 안 좋아했지만, 그날은 워낙에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으므로 그 집사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우리를 내버려 두었다. 겨울방학 중이었으므로 우리는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느긋하고 여유가 많은 날이었다.
그렇게 한참 놀다가 춥고 지친 우리는 아래층 예배당으로 들어가서 따뜻한 난로 주위에 모여들었다. 난로의 열기로 인해 우리의 몸이 녹는 듯했고 얼굴에도 따뜻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럴 때는 누가 별로 웃기지 않는 농담을 던지기만 해도 깔깔거리면서 웃었고, 뭔가 더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궁리하기도 했다. 일부 아이들은 앉아서 ‘묵찌빠’를 하면서 깔깔거렸다. 그러나 딱히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일부 아이들은 먼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2.
예배당 안에는 아직 뛰어놀던 열기가 식지 않은 아이들이 아마 스무 명 정도 남았던 듯하다. 일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들떴던 분위기가 갑자기 식어가고 있을 때 난롯가에서 따뜻한 열기로 얼굴이 약간 붉게 상기된 상숙이 갑자기 외쳤다.
“얘들아, 이제 안 춥지? 우리 몸도 녹았는데 미끄럼 타러 갈래? 우리 집 근처에 미끄럼 타기에 근사한 곳이 있어. 낮은 언덕이라서 미끄럼 타기가 아주 좋아.”
갑자기 밖으로 나가자는 상숙의 제안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숙은 원래 토요일 오후에 우리와 어울려 놀기는 해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놀자고 나서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그날은 예사롭지 않게 적극적인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나가자고 재촉했다. 성가대 여학생들 중에서 가장 고참이고 인기가 있는 상숙의 상기된 표정을 보고, 아이들은 덩달아 흥분하면서 같이 가보자고 했다. 성가 연습 후에 언제나 교회 마당에서만 뛰어놀았던 우리가 교회 밖으로 나가서 노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로 인해 어린 여학생들을 생각하면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눈싸움을 하면서 뛰어놀던 흥분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기꺼이 모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강영근 지휘자가 있었다면 어쩌면 반대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이미 예배당을 떠난 후였다.
“그래. 가자. 어딘데 그래?”
아이들이 웅성거리면서 상숙 앞으로 모여들었다.
“모두 나만 믿고 따라와.”
상숙이 앞장서고 나를 포함해서 십여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교회 밖으로 뛰어나갔다. 일부 아이들은 아직도 옷이 젖어서 춥다면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여전히 난롯가에 남았다.
상숙은 성남고등학교 정문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대방동은 언덕이 많은 곳이다. 교회에서 상숙의 집으로 가려면 아주 낮은 경사로 된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데, 그 언덕 내리막길이 눈 때문에 매우 미끄러운 상태였다. 나는 이미 잘 아는 장소였고, 예전에 자전거를 타고 그 내리막길을 빠르게 가다가 전봇대에 부딪혔던 길이었다. 내리막길의 길이는 이십여 미터 정도 되었다. 상숙이 미끄럼을 타겠다고 하는 곳은 그중에서도 마지막 십 미터 정도 길이었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장소라, 아이들이 너무 빠르게 미끄러지거나 뭔가에 부딪힐 만큼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갔으며 그 작은 내리막길에서 신나게 미끄럼을 즐겼다. 서로 손을 잡고 줄지어 미끄러지면서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넘어졌다. 어떤 아이는 쌀 포대 같은 것을 주워서 그 위에 앉아서 미끄럼을 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아무 장비도 없이 눈 위에서 거의 굴러가듯 미끄럼 놀이를 즐겼다. 한동안 놀다 보니, 나를 포함한 일부 아이들은 장갑도 없이 놀았으므로 손이 매우 차가워졌고, 털장갑을 낀 아이들조차 장갑이 모두 젖고 말았다. 눈 위에서 자꾸 넘어지면서 아이들의 바지까지 많이 젖었다.
“오빠, 춥다. 이제 가자.”
나는 줄곧 은희 주변을 맴돌면서 미끄럼을 타고 있었는데 은희가 나에게 말했다. 은희는 스카프로 목과 머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놀다 보니 어느새 긴 머리가 스카프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다.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모두 젖어 있는 듯했다.
“그래. 춥지. 교회로 가는 게 낫겠어. 이러다 감기 들겠다.”
은희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교회로 돌아가자고 말했고,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동의했다. 아이들은 갑자기 춥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다시 교회로 우르르 몰려갔다. 우리는 다시 크고 둥근 난로 옆에 서서 뜨거운 연통을 손으로 감싸 만지기도 하고 몸을 돌려 엉덩이를 말리기도 했다. 그렇게 떠들고 노는 동안 밖은 시나브로 어두워졌다. 난롯가에서 차가운 손과 몸을 따뜻하게 데운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가야 했다. 아이들은 한두 명씩 기도를 하고 예배당을 떠나기 시작했다.
연인이 아니어도, 헤어지기엔 특별히 아쉬움이 남는 날이 있다.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대화를 하다가 또는 신나게 놀이를 하다가 몹시 흥에 겨워서 선뜻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가기 싫어지는 날.
이미 날이 어둑해져서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지만, 놀던 정취에 사로잡혀 서로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은 날.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날 걸 알면서도 오늘 저녁에 더 특별한 감정을 나누고 싶은 날.
아쉬운 마음에 얼굴 한 번 더 보고 말 한마디 더 나누고 싶은 날.
어린 우리들에게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그럴 때 느껴지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한다.
꼭 남녀 사이가 아니라 해도, 또 여러 아이들의 모임이고 성애적 관계가 없다고 해도, 그럴 때 아이들 사이에 사랑이 흐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기된 얼굴로 마주 보고 웃고 떠들면서 좋아하는 사이이고,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사이이지 않겠는가. 그날 오후에는 그런 정취가 우리들 사이에 유난히 풍부하게 흘렀고, 아무도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 깊은 유대감에 사로잡혔다.
그러한 사랑의 흐름 위에 긴 시간까지 쌓이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보다 더한 ‘정’이라고 한다.
무섭게 뜨거워졌다 빠르게 식어버리는 열정적 애정이 아니라 긴 여운을 남기는 느긋하고 뜨뜻미지근한 정.
“은희야, 추운데 조심해서 가. 가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지지 말고.”
은희가 갈 준비를 시작했을 때 맞은편에 있던 나는 은희에게 말했다. 나는 은희와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서글퍼지는 듯했다.
“오빠나 넘어지지 마. 장갑도 없이 놀아서 잘못하면 동상 걸리겠다.”
은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두 손을 모아서 코 앞에 대고 기도를 한 은희는 노란 스카프를 목에 감고 장갑을 낀 후에 단짝 친구인 미연과 함께 교회를 떠났다.
흰 눈이 몹시 많이 내렸던 그날, 어린 우리들 사이에 감미롭게 흘렀던 새하얀 겨울의 정취와 뜨거운 정감을 생각하면 내 입가에는 지금도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해맑고 눈같이 희고 순수했던 날들이었다. 예배당 밖에 어둠이 내려앉았고 아이들은 이별 인사를 나누면서 아쉬움 속에 교회를 떠났다. 그때까지도 하늘에서는 여전히 흰 눈이 조금씩 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