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교회의 추억
6.
초등학교의 마지막 1년.
6학년 내내 나는 교회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고 성가대 활동에 더욱 열심히 참가했다. 그해에 다행스러운 일이 발생했는데, 나의 학교 담임 선생님이 대방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뜻밖의 일이었지만 다행스럽다고 말하는 이유는, 3학년 이후 학교에 흥미를 잃고 선생님을 싫어하게 된 내가 그나마 6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는 교회라는 인연으로 인해 조금 더 친해졌기 때문이다.
늦은 봄 어느 날, 그는 교실에서 나를 불러 앞에 세워두고 말했다.
“너 대방교회 다닌다며?”
“어, 선생님 어떻게 아세요? 맞아요.”
“나도 대방교회에 다녀."
"아 정말이요? 몰랐어요."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왼손을 들어 내 엉덩이를 살짝 쳤다. 아마도 우리는 한 배에 타고 있다,라는 친밀감의 표시였을 것이다. 사실 그가 교회에 온다 해도 일요일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성인 예배 시간에 출석했기 때문에 내가 그와 교회에서 마주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어쩌다 교회 마당에서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나는 반가운 표정을 짓고 그저 인사만 꾸벅했을 뿐이다. 그는 내가 교회에서 어린이 성가대 활동을 하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선생님과 나를 잇는 그런 작은 인연으로도 나는 학교에 다니는 데서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놀랍게도 6월에 그는 대방교회에서 결혼식을 했다. 몇몇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나는 당연히 그 결혼식에 참석했다. 어떻게 구하게 된 것인지 모르지만, 그가 검은색 양복을 입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팔짱을 끼고 함께 서 있는 사진도 본 적이 있다. 교회에서 봤는지 학교에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는 원래부터 우리 교회에 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신부가 대방교회 교인이었다. 그로 인해 그 역시 결혼에 앞서 우리 교회로 오게 된 것인데, 결혼 후에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대방교회로 계속 나왔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러니까 그해 말까지는 그들이 대방교회에 있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담임 선생님은 그해 내내 나에게 비교적 살갑게 대해주었다.
사실 그는 대체로 유쾌한 분이었고, 우리를 심하게 혼내거나 때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해에 결혼했으니까 아마 서른도 안 되었을 텐데, 지금 기억해보면 그가 삼십대 중반은 됐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마 그가 말을 천천히 했고 행동도 빠르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2학년부터 5학년까지 담임 선생님들에 비해 그가 안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어찌 보면 약간 변태스러운 남성이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해마다 신체검사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교실에서 팬티만 입은 채 각종 검사를 했다. 몸무게를 재고 키를 잴 때 우리는 팬티만 입은 채 차례로 담임 선생님 앞으로 가서 섰는데, 그는 그럴 때마다 “어디 보자. 얼마나 큰가.”하면서 손을 뻗어 우리의 작은 성기를 만졌다.
우리 반에 있는 모든 학생이 그런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와 내 앞뒤 아이들이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일로 인해 화를 내거나 부모님에게 이른 학생은 없었을 것이다. 설사 누군가 부모님에게 선생님이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해도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어린 소년들에게 “어디 고추 좀 보자”고 손을 내밀면서 덤벼드는 것은 그 당시 사회 어디에서나 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도 아니 남성 교사들이 어린 남학생들에게 그 정도 변태스러운 짓을 저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였다. 이상하게 여긴다 해도 그런 것으로 하소연할 곳도 고발할 곳도 없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대방교회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가 어디론가 이사 갔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그의 신앙이나 교회 문제에 관해 깊이 생각하거나 거론할 이유는 없다.
수많은 떠나가는 인연들처럼 그는 사라졌고 그저 추억 속에 존재하게 됐을 뿐이다.
7.
그해 가을, 우리는 또다시 크리스마스 음악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영근 지휘자는 이번에는 작년처럼 합창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성가극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강영근 지휘자의 야심 찬 기획이었다고 할 만하다. 가만히 서서 합창만 했던 아이들이 이제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연기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뮤지컬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혹시 교회에서 하는 성극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처럼 대형 교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까짓 성가극이 무슨 대수냐고 말할 것이다. 교회는 대형화되었고, 경제와 사회문화는 선진국 수준으로 변했으며, 교인들 가운데서도 뛰어난 악기 연주자와 성악가 등 예술 실력자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1970년대와 80년대의 교회 모습 또는 그 교회에서의 예술적 수준을 상상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요즘 교회, 특히 대형교회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있고 각종 기술 기계 장치도 좋아져서 매우 색다르고 수준 높은 예술을 공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교인들이지만 실제로 예술 전문가들이 준비하고 출연한다.
그렇다고 해도 교회에서 하는 한, 그 작품의 주제가 기독교적 신앙이나 윤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고, 그래서 어차피 예술적 자유와 상상력은 종교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요즘도 교회에서 하는 성극이나 성가극은 매우 단조롭고 재미없고 예술적 상상력도 낮을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교회에서 하는 가장 흔한 성극이나 성가극은 대체로 예수의 일대기나 하나님의 기적을 주제로 한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예수의 탄생과 기적과 죽음과 부활이 가장 자주 공연된다. 주로 교회에서 공연되고, 성경에 나오는 내용과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 내용으로만 성극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예술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한계가 많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완고한 기독교적 신앙과 개인적 인내심과 교인으로서의 친분관계가 없이 본다면 교회에서 하는 성가극은 대체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큰 후에 나는 그런 성가극을 볼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아, 저렇게밖에 만들 수 없나. 판에 박은 스토리! 아무리 예수 이야기나 성경 내용을 소재와 주제로 한다고 해도 그렇지, 저렇게 예술적 창의성과 상상력이 없을까.
그런데 우리 성가대가 그때 했던 성가극은 당시로 보자면 매우 색다른 내용이었다. 나는 그 같은 내용의 성가극을 어느 교회에서도 본 적이 없다. 강영근 지휘자가 쓰고 공연 준비과정에서 수정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 성가극의 내용은 전래동화인 ‘선녀와 나무꾼’ 같은 내용이었다. 사실 이 전래동화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 몽골 등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내용의 전승 버전이 있다.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러자 사슴은 은혜를 갚겠다고 나무꾼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했는데, 나무꾼은 외로우니까 아내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사슴은 나무꾼에게 선녀와 결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슴은 하늘에서 선녀들이 연못으로 내려와서 목욕을 할 때 날개옷 하나를 감춰 두라고 나무꾼에게 이른다. 드디어 선녀들이 연못에서 목욕을 할 때 나무꾼은 사슴이 말한 대로 날개옷 하나를 감추었고, 날개옷을 찾지 못한 선녀만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 나무꾼은 그 선녀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고 살게 된다. 사슴은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는 절대로 날개옷을 선녀에게 돌려주지 말라고 했지만, 나무꾼은 이미 아이 둘을 낳은 선녀의 간청을 못 이기고 날개옷을 돌려준다. 그러자 선녀는 아이 둘을 양손에 안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강영근 지휘자는 교회에서 공연할 수 있는 뮤지컬로 바꾸었다. 뮤지컬에서도 사냥꾼과 사슴, 나무꾼과 선녀들이 출연한다. 다만, 선녀는 천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용도 확 간추려서, 나무꾼이 산신령으로 변신한 하나님과 천사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지금은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스토리를 가지고 우리는 뮤지컬을 연습했다.
뮤지컬에는 서른 명도 넘는 성가대원들이 참여했는데, 상석과 성원과 나는 나무꾼으로 출연했다. 어린이 성가극이라, 천사가 옷을 벗고 목욕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다는 등의 내용은 모두 빠졌다. 엄청난 각색을 거쳐서, 나무꾼들은 그냥 ‘날개 잃은 천사’를 만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회개하게 됐으며, 천사는 무사히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성가극이 재미는 있었는지, 또는 예술적으로 훌륭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우리는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큰 즐거움 속에서 연습할 수 있었다.
주인공인 날개 잃은 천사 역은,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은희가 맡았다. 그래서 전에도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은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어린 천사’ 같다고. 성가극에서 은희는 정말로 어린 천사가 되었다. 어린 천사가 되어서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나무꾼인 나를 주의 품으로 인도했다.
그 성가극의 세부적인 줄거리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연극을 위해 초가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달도 넘게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합창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험 속에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졌다. 각자의 역할에 따라 독창과 중창과 합창, 그리고 연기를 연습했다. 무대장치와 무대의상, 음향효과와 음악효과까지 준비했다. 다만 교회 단상에서 이른 오후에 하는 것이라 조명은 없었다.
겨우 30분 정도에 불과한 성가극이지만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와 대사도 하는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더욱 연습을 많이 하고 공을 들여야 했다. 해본 사람들은 알지만, 그런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관객들보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더 깊은 우정으로 똘똘 뭉쳐진다. 두 달도 넘는 기간 동안 준비하면서 우리는 전례 없는 결속력을 과시하게 됐다. 그해 겨울은 앞선 해보다 춥지 않았고,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더욱 뜨거워졌다.
결국, 크리스마스 공연은 다행히 잘 끝났다.
날개 잃은 천사는 무사히 하늘로 돌아갔고, 타락했던 나무꾼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종이 되었다.
어린이 성가대는 아쉽지만 그때까지였다.
새해부터 나는 중등부로 올라가게 되었다. 12월 마지막 예배는 유년부 졸업식이었다. 어린이 성가대를 떠나게 되는 것도 슬펐지만 그것보다 나를 더욱 슬프고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은희와 헤어지는 것이었다. 앞으로 일 년 동안은 은희와 함께 있을 수 없게 된다는 것. 은희가 활짝 웃는 모습도 못 보고, 은희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도 못 보게 된다는 것. 은희가 노랑색 원피스를 입고 하얀색 스타킹을 신은 모습도 못 보고, 은희가 부르는 예쁜 노래소리와 신나서 떠드는 목소리도 못 듣게 된다는 것.
크리스마스에 나는 은희에게 카드를 주면서 말했다. 약간 설레고 아쉬웠지만 아주 슬픈 표정으로 말했던 것은 아니다.
“은희야, 내년부터는 너 보기 힘들겠다. 일 년간 잘 지내. 네가 중등부로 올라오면 또 같이 성가대 활동하자.”
은희는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오빠, 내년에도 교회에서 자주 보면 되지.”
그러면 좋긴 하지만 당장 슬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변에 아이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나는 그 슬픔과 아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은희의 작고 하얀 얼굴 위에서 반짝이는 동그랗고 까만 눈과 루돌프 사슴처럼 끝만 솟은 듯한 작은 코와 분홍색 작은 입술을 기억하려고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