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11월 1일 (2-2)
3. 센텀시티
부산의 유명 관광지 가운데 아직 안 갔던 곳이 있었다.
센텀시티.
부산에서 가장 화려한 현대식 건물들이 모인 곳이다.
벡스코, 롯데와 신세계 백화점, 영화의 전당 등.
이 건물들과 거리는 서울의 잠실 롯데 타워 주변, 그리고 삼성역 코엑스 등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센텀시티 건물들은 바로 옆에 수영강을 내다보고 있다. 수영만으로 흘러드는 수영강은 적당한 크기로 아름답고, 강가산책로도 훌륭하게 개발되었다. 센텀시티 지하철역은 잠실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더 세련됐다.
센텀시티라는 이름부터 색다르다.
이 이름은 라틴어로 100을 뜻하는 ‘센텀’과 ‘시티’의 합성어이다. 그만큼 100% 완벽한 첨단 도시를 의미하고자 건설된 곳이라고 한다. 첨단 기술과 자연이 결합된 미래 복합형 도시, 즉 정보·업무·관광·상업·주거·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복합 기능을 갖춘 도시라는 말이다. 이곳은 첨단 미래 도시로 향하는 부산의 자랑이기도 하다. 서울에 갔던 사람이 잠실 롯데타워도 안 보고 왔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나는 오늘에야 겨우 센텀시티로 가서 신세계백화점 내부를 둘러보고 그 건물들 근처를 걸어 다녔다.
줄곧 서울과 뉴욕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새로운 현대식 건물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것을 좋아하고 즐겼던 것은 어릴 때만으로 족하다. 이제는 그런 데 관심도 가지 않고, 그런 것을 즐기지도 않고, 왠지 나 같은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는 낯선 느낌만 든다.
4. 아미산 전망대에서 보는 일몰
이미 지난주에 갔었던 다대포해수욕장의 일몰 광경이 계속 머리에 남았었다.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다.
해지는 붉은 하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한없이 쓸쓸하고 고독한 감정을 자아낸다.
그렇게 허전하고 외로운 감정을 즐기는 것 또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속할지도 모른다.
원래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오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축제가 있어서, 어쩌면 금요일 저녁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에 날씨가 맑지 않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보고 나는 오늘 오후에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다대포에 간다면, 축제보다는 일몰 광경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으므로.
센텀시티에 갔을 때 우연히 신세계백화점 지하실에 있는 영풍문고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공연히 한 시간이나 보낸 바람에 다대포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시 30분이 되었다. 센텀시티에서 다대포역까지 가는 데만도 한 시간이나 걸렸다. 오늘의 일몰 시간은 5시28분.
나는 약간 갈등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다대포해수욕장으로 가면 그곳에서 작은 반도의 끝에 있는 몰운대까지 걸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몸이 매우 피곤했고, 다대포역에서 그곳까지 30분 정도 걸릴 듯했다. 나는 아미산전망대에도 가보고 싶었다. 일몰을 볼 수 있는 근사한 곳이다. 지난주에는 다대포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일몰 풍경을 보았으므로, 이번에는 아미산전망대에서 다시 일몰을 보고 싶었다.
카카오맵을 보니, 아미산전망대는 다대포해수욕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몰운대를 포기하고 아미산전망대로 가기로 했다. 빨리 올라가서 풍경 사진을 찍고 다시 다대포해수욕장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부드러운 모래를 밟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오늘 이후로 이곳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아미산전망대로 걸어가면서 나는 그곳이 15분 안에 걸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그곳은 산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 전망대였는데!!!
할싹할싹 가뿐 숨을 내쉬면서 나는 비탈을 걸어 올라갔다.
아미산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는 아주 가파른 비탈이 많았다.
마을버스 또는 택시를 탈 것을!
그러나 언덕 정상 가까이 가면서 나의 불평은 잦아들었다. 올라가는 도로 왼편으로 멋진 바닷가 풍경이 보였기 때문이다. 드넓은 낙동강 하구에서 잔잔하게 반짝이는 물 위로 석양 노을이 점차 붉게 번지는 광경이었다. 아미산전망대에는 부산의 지질에 관한 설명이 많았지만 나는 빠르게 걸으면서 훑어보았을 뿐 거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실내 전망대는 3층에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바다 건너 가덕도에 있는 산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전망대에서 시계를 보니 5시15분.
전망대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해지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는 15분 정도 남았다.
전망대 3층, 투명한 유리창 안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던 나는 잠시 갈등했다. 만약 택시를 타면 10분 내로 해수욕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미산전망대를 이미 보았으므로 나는 바닷가로 가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후 약간 조급한 느낌이 들면서 곧바로 전망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전망대로 들어갈까 고심하고 있었는데, 문득 아미산전망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 지붕에 이미 몇 사람이 보였다. 전망대의 지붕 일부에 오르막길을 만들어서 그곳으로 올라가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는 즉시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결국 바다 건너 가덕도에 있는 산 (아마도 응봉산) 너머로 지는 해를 10분 정도 바라볼 수 있었다.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는 마지막 2분 정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태양 색깔이 붉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선홍색으로 변했다. 산에서 약간 떨어져 있을 때는 제법 크고 노랗고 둥근 해가 산에 가까워질수록 노란빛이 빠르게 사라지고 붉은빛만 강해지면서 크기도 갑자기 매우 작아졌다. 그리고는 산에서 빨아들이는 기운이라도 있는 듯 태양의 아랫부분이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기이한 모습이 연출됐다. 순식간에 해는 아래로부터 잿빛으로 어두워지면서 갑자기 산 뒤로 뚝 떨어지는 듯했다. 이어서 주변에 있었던 잿빛이 해가 사라진 공간으로 일순간에 몰려들었다.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은 묘하게 서글픈 감정을 끌어낸다. 나는 갑자기 내가 땅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 태양이 내일 아침에 또다시 환하게 떠오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나의 우울한 감정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해진 바닷가 또는 강 하구.
모래밭들이 둥실둥실 떠올라 있는 낙동강.
해가 진 후에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잔잔히 출렁거리는 물.
그 위로 서서히 짙은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아미산전망대에서 느낀 여운을 오랫동안 버리지 못한 채 나는 터덜터덜 걸어서 산 밑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도 가파르고 긴 길이었지만, 다행히 내 앞에 어떤 여성과 그의 어린 아들과 딸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으므로 나는 저절로 그들을 따라갔다. 어느새 그들이 사라지고, 나는 언덕 아래 어디인가에서 작은 식당을 발견했다. 잊고 있었던 허기가 느껴졌다.
식당에서 떡볶이를 먹고 나서 나는 다대포해수욕장 모래사장까지 가보았다. 아주 잠시 이미 어두워진 다대포해변과 강물을 바라본 후 곧바로 떠났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서면에서 저녁 식사를 마저 할 계획을 세우면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나는 거꾸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