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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이야기 2
- 태화강국가정원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31일

by memory 최호인

3. 태화강국가정원


한국에는 국가정원이 두 곳에 있다.

하나는 순천에, 다른 하나는 울산에.


정원 앞에 ‘국가’라는 이름은 함부로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다. 국가정원이 되기 위해서는 법률로 규정된 엄격한 기준과 과정이 필요하다. 태화강국가정원 안내센터의 한 직원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정원의 크기와 조건, 정원을 운영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 등까지 이러한 기준에 포함된다. 또한 지방정원으로서 3년(?) 이상 지나야 국가정원으로 승격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15년부터 이 같은 법률에 따라 국가정원 개념이 등장했다. (이름을 잊은 그녀의 성실하고 친절한 설명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2019년 1월 발표된 개정법에 따르면 국가정원은 면적 30만 제곱미터, 녹지면적 40% 이상, 5곳 이상의 주제원 조성 외 관리 담당인력 등 여러 조건이 포함된다. 현재 전국적으로 여러 지자체들이 지방정원을 조성하고 국가정원으로의 승격을 희망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화강국가정원보다 면적이 훨씬 넓은 순천만국가정원이 더 유명하다. 그런데 태화강국가정원 안내센터의 친절한 여성 직원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순천만국가정원은 습지에 인공적으로 꾸민 정원이지만, 태화강국가정원은 강가에 있는 자연을 잘 가꿔서 조성한 공원이다.

태화강국가정원의 총면적은 83만5천 제곱미터에 이른다.


이 정원은 태화강을 가운데 두고 태화지구 (48만5천 제곱미터)와 삼호지구(35만 제곱미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나는 오늘 태화지구 정원을 돌아보았다. 매우 거대한 지역이라서 세세하게 돌아보기는 어렵고 무척 긴 시간이 걸린다. 또한 이렇게 넓은 곳을 다니려면 걷기를 좋아하는 심성과 강력한 체력과 지구력도 필요하다.


나는 아직 순천만국가정원을 가보지 않았지만, 오늘의 경험을 생각할 때 순천으로 가려면, 즉 그곳에서 국가정원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강력한 체력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런 여행은 건강할 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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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국가정원에는 국화, 무궁화, 작약 등 아름다운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난 정원들도 유명하지만, 가장 특이한 정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대나무 숲인 ‘십리대숲’이다. 아름다운 정원의 꽃들은 드넓은 평지에서 무더기로 피어나서 탁 트인 주변 환경과 더불어 장관을 이룬다. 맑은 가을 오후, 정원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꽃들에 파묻혀서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며 사진을 찍기 바쁘다. 어린아이들은 꽃들 사이로 난 길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한다. 연인이나 가족 나들이에 무척 좋은 장소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십리대숲은 그것대로 대나무들이 촘촘하게 밀착하여 자라나서 처음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영화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대나무숲을 본 적은 많지만 내가 직접 울창한 대나무숲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 십리나 되는 긴 길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겠지만, 태화강국가정원의 십리대숲은 매우 넓고 예쁘게 조성된 곳이며 그 안에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여러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또 놀라운 것은 대나무 숲길에서 많은 사람이 맨발로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땅바닥이 안전하다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래도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다. 혹시라도 그들의 발바닥에 어떤 상처가 생겨서 파상풍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처럼 외지에서 온 관광객의 우려일 뿐이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대나무 숲 사이에 난 길에서 맨발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만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여기서 맨발로 걷는 사람은 특이하게도 오로지 여성들 뿐이었다. 다른 시간, 다른 날에 이 숲길을 걷는 남성도 있겠지만, 하여간 오늘 맨발로 숲길을 걷는 사람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에서 중년 남녀를 구별하는, 내가 느끼는 특징이기도 하다. 남성들이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그들은 이렇게 제한된 구역 안에서 걷는 것보다 더 먼 여행, 특히 등산이나 낚시 같은 것을 더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건강을 증진하려는 중년 여성들의 의지와 투지는 정말 대단하다!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좋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농도는 편백나무보다는 낮지만 소나무보다 높다고 한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만들어 살균작용을 하는 휘발성 및 비휘발성 화합물의 총칭이다. 이것이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며, 항염, 항균, 살충, 면역 증진, 스트레스 조절 등 인체에 다양한 건강 증진 효과를 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맨발 걷기가 전국적으로 열풍이라, 십리대숲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맨발로 걷기를 즐기고 있다. 맨발 걷기가 아니라 해도, 이렇게 밀집된 나무들 사이를 다니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대단히 좋을 듯하다. 대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고층 건물과 자동차들을 보면서 걷는 것과 비교할 때 태화강국가정원을 거닐 수 있는 것은 무척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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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국가정원은 매우 넓어서 정원 내부를 돌아다니는 전기관람차도 있다. 나는 어차피 정원을 모두 돌아다니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 관람차를 타고 싶었다. 티켓은 안내센터로 가야 하는데, 내가 들어간 입구부터 안내센터까지 가는 길만 해도 무척 멀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안내센터에 도착했는데, 너무 늦어서 이미 마지막 관람 티켓까지 예매가 끝난 뒤였다.


매우 지치고 허탈해진 나는 그나마 위에 소개한 안내센터 직원으로부터 국가정원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4층 건물인 안내센터는 2층에 안내데스크와 전시실이 있고, 4층 옥상에는 하늘정원도 있다. 이 직원은 나에게 관람차를 탈 수는 없지만 조금 더 기다렸다가 십리대숲의 은하수길을 걷도록 권했다. 그때 시각이 오후 5시 정도였는데, 30분 정도 더 지나면 해가 지고 그때부터 대나무숲에 ‘은하수’가 밝혀진다고 했다.


안내센터 앞에는 마침 예쁘게 꾸민 연못이 있었다. 그곳 분수대에서 물이 시원하게 뿜어져 올라서 보기가 무척 좋았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가을 단풍이 알록달록 아롱졌고, 서쪽 하늘은 점차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분수에서 솟아오르는 우람차고 높은 물줄기에 감탄하여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지르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아이들의 엄마들은 그런 모습을 사진과 비디오로 담기에 바빴다. 모두 늦가을의 정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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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후, 십리대숲은 ‘은하수 길’로 변한다.

대나무 숲길에 인공조명을 설치해서 마치 하늘의 은하수처럼 은은한 작은 불빛이 대나무들에 비치도록 한 것이다. 일몰 시간은 오후 5시 반 정도이므로 나는 주변 정원을 거닐다가 은하수길로 들어섰다. 숲길 여기저기에 빨강노랑초록빛을 발하는 작은 조명기구들을 설치한 것이 보였다. 그곳에서 쏜 조명이 대나무 줄기와 잎사귀들에 은은하게 비쳐서 매우 환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해가 완전히 진 후 어두워졌어도 대나무숲길은 열려 있었고 많은 사람이 은은한 조명 아래 정취를 즐기면서 걸어 다녔다.


태화강국가정원은 여러 곳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밤이 되어도 시민들이 오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공원관리센터는 오후 6시에 닫고, 은하수길도 밤 11시에 조명을 마감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정원 자체는 24시간 내내 무료 개방되어 있다. 이것은 그만큼 이 정원에서 사고나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어서 나는 약간 놀랐다


어두운 밤에 은하수 불빛을 따라 한참 걷다가 나는 결국 대나무숲을 벗어났다. 대나무숲 바깥의 정원에는 군데군데 가로등이 켜져 있어서 길을 찾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다. 정원 바깥으로 아파트 단지도 불빛이 보여서 방향을 분간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정원 내부가 그리 밝은 것은 아니고 너무 넓고 으슥한 곳도 많아서 약간 무섭기는 했다.


태화강은 울주군 두서면에 있는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하여 울산 도심을 지나 울산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총길이는 47.54킬로미터. 이 강은 산업화 시기에 6급수로 전락하여 강에 살던 고기들이 떼죽음 당하고 악취가 진동했었다.


그러나 생태계 복원작업이 진행되면서 강변을 지나치게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고 강물의 자연적인 흐름을 유지하면서 오늘날 1급수로 탈바꿈했다. 나아가 그 강변에 이렇게 훌륭한 국가정원까지 만들어냈다. 울산이 태화강을 두고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대목이다. 강을 이렇게 살려낸 울산 시민에게 박수를 보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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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먼 거리 여행의 조건


어둠이 내려앉은 태화강국가정원에서 바쁜 걸음으로 빠져나온 나는 서면으로 돌아가기 위해 태화강역으로 돌아가서 경전철을 타야 할지, 시외버스를 타야 할지 고민했다. 오후 내내 걷느라 몸은 피곤하고 배까지 고파서 버스를 타는 것은 더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카카오맵에서 버스를 타는 것보다 기차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나왔지만 나는 태화강역으로 갔다. 그나마 익숙한 전철을 타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지만 정말 건강할 때 여행도 재미있게 다닐 일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이렇게 다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시간과 재력이 매우 충분하다면 이런 것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처럼 걷는 것이 많은 여행은 더욱 그렇다. 웬만한 체력으로는 이런 식으로 한 주일 버티기도 힘들 것이다.


비행기나 차를 타고 멀리 가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어떻게 가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멀리 가야 하는 만큼 그것대로 매우 힘든 일이다. 무거운 가방을 가지고 멀리 있는 공항으로 가서 탑승 수속을 거쳐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무척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남미로 여행 가겠다는 사람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올 겨울에 8명을 그룹으로 모아서 남미에 한 달간 도보 여행을 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비용은 1인당 무려 1만 달러 정도.


내가 듣기에는 돈도 돈이지만, 서울에서 남미로 가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든 일이다. 하루를 꼬박 날아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뉴욕에서 서울로 오는 것만 해도 힘들다고 하는데, 하물며 지구 반대편 남반구로 날아가야 한다면 오죽할까. 굳이 걷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그 멀리까지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고 걷기 여행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체력이 뒷받침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제 청사포역 부근 데크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봐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데크 리모델링 때문에 “길 없음”이라는 공지문을 보고 돌아섰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다. 나는 내 뒤에서 오던 그들에게 이쪽으로는 갈 길이 없다고 말해주고 청사포역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단지 나무 데크 길이 좋아서 걷고자 했을 뿐이라, 길이 막혔다면 그냥 열차를 타고 갈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마침 이미 해변 열차 티켓도 가지고 있었다. 대화해 보니, 그들은 삼대에 이르는 세 여성이었다. 할머니, 엄마, 딸. (남성은 한 명도 없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렇게 걷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반면에 고등학생인 딸은 가장 활발했다. 그들을 보면 여행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정도는 나이순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힘들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는데,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고 한다. 겨우 1주일간 한국을 방문하는데, 오는 날과 가는 날은 각각 하루씩 잡아야 한다. 서울에서 사흘 부산에서 사흘을 묵는다고 했다. 그들은 서울까지 오기 위해서 모스크바에서 무거운 가방을 가지고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가서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다. 서울까지 직항으로 오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또다시 낯선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두 번째로 탄 비행기를 또 한참 타고 날아가서 결국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매우 성가시고 고되고 긴장되며 오래 걸리는 공항 입국 수속을 거쳐야 한다. 공항을 나온 후에도 서울에 있는 어느 숙소까지 긴장한 채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여장을 푼다. 모스크바에서 서울까지 오기 위해 그들은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보내야 한다. 서울에서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것은 그 시간을 역으로 돌려서 가는 과정이다. 이미 지친 몸으로 다시 하루를 그렇게 보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여행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돈도 많이 들고 스트레스도 무척 심한 일이다.

그런 고생을 해서라도 여행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먼 거리 여행의 이유를 생각하기 전에 시간과 돈과 체력을 먼저 따질 일이다.

먼 거리 여행의 선행 조건은 시간과 돈과 체력이고, 그중에서도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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