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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길과 해운대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30일 (2)

by memory 최호인

3. 달맞이길 or 문탠로드


달맞이길.


택시운전기사는 나를 달맞이길에 내려주었다. 청사포역에서 우회해서 가라는 와우산의 정상 부근인 듯했다. 바로 앞에 초승달을 표시하는 조각물이 보였는데 해월정인 듯했다. 공원 안에는 이층으로 된 팔각정이 있어서 올라가 보았다. 주변에 나무들이 가리지만 멀리 바다가 보였다. 인적이 드문 곳인데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만 있었다. 괜히 멋쩍어진 나는 달맞이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날이 약간 흐려서 그런지 달은 보이지 않았다. 달맞이길에 왔는데 달을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나저나 여름이 아니어서 그런지 시월말 달맞이길 거리는 매우 쓸쓸해 보였다. 차도에는 차만 쌩쌩 달리고, 나처럼 걷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이지만, 예상에 비해 관광객이 없는 곳이다. 달맞이길에는 벚나무들이 잔뜩 심어져 있어서 봄에 오면 무척 예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맞이길에서 해운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 왼쪽에는 바다로 내려가는 숲이 있다. 오른쪽은 언덕이었고 거기에 카페 등 가게들이 이따금 있었다. 어두운 거리에서 내부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카페 안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이라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은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손님이 없을 때 가게 사람들은 그냥 음악이나 듣고 있을까. 갑자기 의문이 들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달맞이길은 문탠로드라고 불리기도 한다.


달맞이길은 충분히 이해되는 좋은 한글 합성어다. 달빛을 받으면서 걷는 길이라는 것을 초등학생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탠로드’는 뭐란 말인가.


나는 이 단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괴상한 합성어가 무슨 뜻인지 이해는 가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은, 콩글리쉬 신조어다. ‘선탠(Suntan)’이 햇빛에 살갗은 태우는 것이라고 한다면 달빛에도 살갗이 그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 하에 문탠(Moon-Ta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거기에다 로드(Road)를 붙인 것이 문탠로드다.


참 기발한 발상이기는 한데, "글쎄올시다"이다. 굳이 영어로 그런 신조어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다.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보급해야 하는데, 공공기관에서 먼저 괴상한 영어를 남발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문탠로드를 걷는 것은 옆에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어서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호젓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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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했다. 해운대 해변에.

이미 어두워져서 모래사장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대학 남학생들 십여 명이 놀러 온 듯 해운대 입구부터 신나서 크게 소리치며 뛰어다녔다. 모래사장 앞으로는 그저 칠흑 같은 어둠만 펼쳐져 있어서 어디가 바다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할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해운대로 서너 번 와본 셈인데, 하필 올 때마다 늘 어두울 때였다. 10년 전 8월 초에 KTX를 타고 부산으로 왔을 때는 밝은 낮이었지만 먼저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과 용두산공원 전망대까지 갔다가 오느라 해운대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4년 전 여름에 자동차를 타고 왔을 때도 서울에서 낮에 출발했지만 기장에 들렀다가 해운대에 도착하니 어두운 밤이었다. 이번 부산여행에서는 첫째 주에 오륙도부터 해파랑길 1코스를 걸었을 때 밤이 되어서야 해운대에 도착했었다. 그리고 오늘도 또 밤에 해운대를 보았다.


아무래도 해운대와 나의 인연은 어두운가 보다.

그래도 다음엔 꼭 밝은 낮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아무튼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해운대보다 광안리가 더 활기차고 젊은 분위기가 감돌고 현대적이고 신나고 환상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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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운대 전통시장과 버스킹


그러나 해운대역에서 해운대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아주 넓고 멋진 곳이다.

중앙대로는 차가 안 다니도록 꾸며놓아서 좋다.

차들은 원웨이로 양쪽 가에만 겨우 한 차선으로만 천천히 다닌다.


이 대로변에 크지는 않지만 해운대전통시장이 있다. 그간 입구만 보다가 오늘 막상 들어가 보니, 이곳은 시장이라기보다는 골목 하나로 이어진 식당촌처럼 보였다. 이 좁은 골목에는 곰장어와 낙지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곳에 아주 유명한 맛집이 있는데, 이름하여 ‘상국이네’ 김밥 식당이다.


이 식당은 김밥과 떡볶이와 튀김 등이 주된 음식이라 부산에서 너무나 흔하고 특이할 것도 없는데, 하여간 유명 맛집이다. 나는 드디어 이곳에서 김밥을 먹어보았는데, 무엇이 특별하다고 해야 하는지 내 입맛으로는 구별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 골목에 있는 수많은 식당 가운데 이 집만 손님들이 줄을 서서 음식을 포장해 가거나 나처럼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 음식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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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번 유명세를 타면 웬만해선 정상에서 떨어지기 어렵다.

그것이 요즘 비즈니스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한번 일등 자리에 오르면 거기서 롱런하게 되는 것이다. 선두 자리를 차지한 만큼 비즈니스가 잘 되고 브랜드네임은 더 멀리 퍼지고 그 기업은 투자를 늘리면서 판매까지 늘어난다. 한번 고객이 되면 소비자들은 웬만해선 경쟁 브랜드로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매우 충성스러운 고객이 되어서 시제품까지 사용하고 피드백을 주면서 그 기업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그래서 한번 일등은 거의 영원한 일등이 된다.


어묵과 김밥을 먹고 난 후에 다시 해운대 중앙광장으로 나갔다. 마침 버스킹 공연이 벌어지고 있다. 이 구역에서는 제법 유명한 버스킹 가수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가만히 보니, 이 가수는 놀랍게도 충성스러운 ‘아줌마 부대’가 있는 듯했다. 젊은 남성인 그가 다채로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일군의 아줌마들이 그의 앞에 빙 둘러서서 고정 관객인 듯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박자를 맞춰 몸까지 흔든다. 그들은 가수에게 노래를 신청하고, 가수는 주문을 받듯이 노래 신청을 받는다. ‘저 바다에 누워’ 같이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아줌마들이 떼거리로 합창을 하고 춤까지 춤으로써, 월요일 밤인데도 지나가는 외국인들까지 신나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가수 앞에 돈을 넣는 통이 있었는데, 노래가 끝날 때마다 지폐가 들어갔다. 가수에게 더욱 신나는 것은 그의 계좌로 돈을 이채하는 것이다. 5만 원 또는 10만 원 등 고액이 들어가면 그가 보고 있는 핸드폰에 곧바로 알림이 가는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는 신이 나서 깊은 감사를 표시했다.


숙소에 가도 특별히 할 일은 없으므로 나는 이 공연을 30분 정도나 보고 즐겼다. 가수의 노랫소리가 신나고 괜찮기도 했지만 부산 아줌마 관객들의 ‘흥’ 때문이기도 했다. 가수 노래를 듣는 것도 좋았지만, 아줌마 부대를 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주중이라 그런지, 이 광장에서 버스킹은 오후 9시까지만 가능하다. 그저께 광안리에서는 주말이라서 그런지 밤 10시까지 가능했다.


신나는 버스킹을 보면서 생각했다.

또 언제 해운대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또는 언제나 다시 부산에 올 수 있을까.


부산에 온 지 보름이 지나니까 볼 만큼 봤다는 생각이 든다. 오는 토요일 밤에 광안리 해변에서 벌어지는 불꽃 축제까지 보기는 해야 할 듯도 한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런 여행을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내 생애에 또 언제 이곳을 다시 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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